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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현 Nov 22. 2023

2. 알로카시아가 물러 죽어요

내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다.


Q : 알로카시아가 잎이 축 처진 것 같아서 물을 줬는데, 갑자기 잎이 노랗게 되면서 떨어져요.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A : 알로카시아는 과습에 매우 취약한 식물이예요. 흙의 물 빠짐이 잘 되지 않을 경우에는 쉽게 과습이 올 수 있어요. 우선 지금 화분 속의 수분을 최대한 빨리 날려 주셔야 해요. 화분과 바닥 사이의 공간을 띄워 주시고, 화분 위에 나무젓가락 등으로 뽕뽕 구멍을 내어 화분 속까지 통풍이 잘 되도록 도와주세요. 그래도 흙이 안 마른다면, 굵은 알갱이가 많이 섞인 흙으로 분갈이를 하는 것도 고려해보셔야 해요.




알로카시아는 오랜 시간 동안 가드너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식물이다. 얘는 대체 왜 죽는가. 잎은 또 왜 이렇게 자주 노랗게 변하는가. 물을 좋아하는 건가 아닌 건가. 현재로서는 ‘화분은 작게, 물 빠짐이 좋은 흙에 심어 놓고, 물이 마르는 대로 준다’가 거의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예 세라미스등에 심고 반 수경으로 키우는 분도 본 적 있다. 


나는 알로카시아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얼마나 응애가 잘 생기는지, 과습도 잘 오는지 알고 있었기에 ‘음 평생 안 키워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키우고 있다. 인생,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초보 시절, 우연히 받은 알로카시아 마크로리자 바리에가타를 두고, 나는 기왕 키우기 시작한 이상 이 식물을 대품까지 완벽하게 키워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고, 모든 책과 커뮤니티를 섭렵하며 정보를 모았다. 

참 이상했다. 어떤 가드너는 식물을 애지중지 돌보며 어마어마한 연구를 거듭하고, 어떤 가드너는 무심하게 식물을 두고 대충 물을 주며 키우고 있었다. 식물은 똑같이 푸르렀다.


물을 주는 방법, 흙을 섞는 방법, 바람을 쐬어주는 방법, 약을 치는 방법. 식물을 키우는 것에 있어 정답의 수는 가드너의 수만큼이나 존재한다. 누구는 토분이 정답이라 하고, 누구는 슬릿분이 정답이라 한다. 누구는 저면관수가 제일 좋다고 하고, 누구는 그냥 물을 주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사실 그 모든 것이 정답이다. 모든 가드너의 정답은, 각자의 환경에서 만들어내는 '개인화된 정답'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남향 아파트에 살고, 누구는 서향 빌라에 살고, 누구는 원룸에 살고, 누구는 반지하에 살고, 누구는 테라스가 있는 전원주택에 산다. 해가 드는 시간, 평균 온도, 평균 습도, 이 모든 환경이 다 다르니, 각자의 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가드너의 성향 또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물주는 것을 좋아해 매일 물을 주고,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몰아서 물을 준다. 어떤 사람은 아침 일찍 물을 주고, 어떤 사람은 퇴근하고 물을 준다. 이랬는데 식물이 잘 자란다면, 매일 물을 주는 사람은 매일 물을 주어서 잘 자랐다고 할 것이고, 일주일에 한번 물을 주는 사람은 물을 아껴서 잘 자란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의 조언을 따르기 전, 그 사람의 환경이나 사진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자의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그 사람의 환경에 최적화 되어있다. 그가 효과를 본 것은 내게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그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을 수 있다. 베테랑 가드너들은 이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남의 경험을 폄훼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쉽게 ‘당신이 틀렸다’ 고 말하지 않는다.


식물이 살아가는 세계가 다양한 것처럼, 타인의 세계는 타인의 수만큼이나 존재한다. 

나와 다른 지역, 금전적 배경, 쌓아온 지식의 편향, 가족 간의 관계, 그 외에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른 세계. 각자의 세계만큼이나 존재하는 다양한 '정답'들을, 우리는 '나와는 다르지만 또 다른 정답'으로서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래야 내가 더 완전해질 수 있다. 어른이 되기 전에는 몰랐다. 동네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다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었고, SNS등의 매체도 없어 나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의 일상을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어른이 되고, 나와 다른 삶의 출발선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일이 많아지고 나서야 알았다.

이 세계는 수많은 ‘다름’의 집합이었다. 


자연계와 같다. 어떤 식물은 몇십미터까지 자라고, 어떤 식물들은 높이가 낮은 대신 뿌리가 깊게 자라고, 어떤 식물들은 지표면을 겨우 덮을 정도로 작고 여리며 뿌리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어떤 식물들은 생명력이 아주 강하고, 어떤 식물들은 조금만 환경이 달라져도 죽어버린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숲이 된다. 생존경쟁은 있지만, 결국은 빛과 양분을 나누어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언제쯤 그 사실을 깨닫게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주변 사람을 돕지 않으면 내 세계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이 찾아온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베푼 친절은 다른 친절로 이어진다는 사실. 배려하지 않고, 선의를 가지지 않고, 타인에 공감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 곧 자신에게도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잎이 빽빽하고, 특유의 탄닌 성분으로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는 소나무는 햇빛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식물들 과의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어린 나무들도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든다. 잎이 빽빽해 비가 내려도 흙이 제대로 젖지 않아 주변의 토양을 건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생존경쟁에서 승리해 같은 종류의 식물만 자라게 된 환경에서는, 그 식물에 유효한 병이나 해충이 돌면 그 인근의 나무가 연쇄적으로 고사해버린다. 한 때 푸르르던 삼림이 순식간에 갈색으로 물드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들고, 다양한 국가와 기관들은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생물다양성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고, 다양한 전략을 수립하며 행동하고 있다. 너무 많은 생물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이 식물들도 몇 십년 후에는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단순히 동물, 식물뿐만 아니라 농산물 품종과 유전자까지. 단순히 식물을 좋아하던 나조차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멸종은 턱밑까지 다가와 있다. 대한민국의 인류 또한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 동물, 식물, 나의 세계에 밀접하게 연관된 모든 생명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먹고 살기 바빠도, 내가 가장 우선이라 할지라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옳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내가 살아오지 않은 세계에서, 각자의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나와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의 정원을 있는 힘껏 가꾸어 가는 사람들. 내가 아직 모르는, 나의 삶의 끝까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 

내가 다가가는 법은 늘 같다. 당신과 나의 걸음을 좁히는 아주 작은 한 걸음, 하나의 질문.


 “식물 어디에서 어떻게 키우세요?”





오늘의 식물 용어 알아보기 : 


세라미스 : 점토 알갱이로 구성된 대체용토. 흙보다는 돌에 가깝다. 물빠짐이 좋고 가벼워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한다.

반 수경 : 하이드로볼, 펄라이트, 세라미스 등 대체용토에 식물을 심고, 물과 비료를 탄 양액으로 식물을 키워내는 방법. 

토분 : 흙을 구워 만든 화분. 

슬릿 분 : 가장자리에 슬릿이 들어가 통기를 도와주는 플라스틱 화분.

저면 관수 : 물을 담은 용기에 화분을 넣어 천천히 흡수시키는 물주기법.

고사: 식물이 말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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