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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28. 2022

욕심과 야망이 없어 고민이신가요...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바야흐로...'자기 홍보'의 시대다. 주변 30~40대는 대략 두 가지 고민을 하는 부류로 나뉜다. 어떻게 하면 내 경력을 더 풍성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과연 이대로 하루하루 닥친 일만 하며 살아도 될 것인가.


나는 후자다. 단출하기 그지없는 이력서를 보고 깨달았다. 전 직장과 지금 직장. 그것도 둘 다 같은 업종으로 끝. 언제부턴가 이력서가 길면 길수록 인정받는 분위기가 됐다. 이직을 자주 할수록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인식이 많아졌다. 지위고하 나이를 불문하고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더 좋은(?) 곳으로 회사를 옮길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미국에 1년 동안 연수를 간다고 하니 '빡세게 공부해서 학위를 따야 한다' 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소한 석사 정도는 있어야 이력서에도 한 줄 더 적고, 나중에 이직을 하든 강연을 하든 '자격'이 된 다는 거다. 흠...맞는 말 같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직 구상을 해 보라'고 조언했다. 이대로 같은 직장에 계속 있으면 '죽어라 일만하다 끝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내 친구는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석사학위를 따고, 유명한 재단에 글을 기고하고, 재테크 공부를 하고,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 참가하는 모임에 나가서 인맥을 넓히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값'(좋은 의미다)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이력에 도움이 되는' 일을 못 하겠다는 거다. 그런 일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럴 힘과 의욕이 도통 나지 않아서다. 민망한 말이지만 20년 가깝게 나에게 주어진 일을 (내 기준에서) 열과 성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다. 지치고 탈진한 느낌이 들어서 학위를 따고 다른 일을 시작할 에너지가 없다.

나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걸까. 왜 남들처럼 이력서에 자랑스럽게 적을 일을 하지 않나. 왜 이렇게 나태하게 퍼질러 있는가. 왜 유튜브는커녕 그 흔한 SNS조차 하고 있지 않나. 미국에 와서 이 질문을 던지며 괴로운 적이 많았다.

가장 아픈 질문은 따로 있다. '니가 돌봐야 할 애가 있니 시댁이 있니. 세상 편한 싱글이면서 왜 더 이력을 쌓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야?'. 100% 맞는 말이다.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난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지금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것에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썼다. 테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주말이나 공휴일 쉬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일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쉬었을 뿐이다. (그래도 더 노력하고 시간을 쪼개면 더 많은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면 반박할 수는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는 '매일매일 주어진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사람'을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을 가꾸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하게 됐을까. 돈을 더 벌고, 명함에 더 높은 타이틀을 붙이고, 여기저기서 찾는 인물이 되려는 욕심과 야망이 없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인 걸까. 타자를 치는 지금 이 순간도 궁금하고 고민스럽다.


고백하건대 나는 본인의 일을 하면서 가치를 더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부럽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의 에너지는 정해져 있고 한 가지 일에 100%를 쏟는 사람과 두 가지 일에 50%씩, 세 가지 일에 30%씩, 네 가지 일에 25%씩 분배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 차이가 날 거라는 생각도 한다. 한 가지 일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 무조건 폄훼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게 회사 일이든, 사업이든,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든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사람을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기는 건 맞지 않다.


석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만행'을 저지르다 다다른 결론이 있다. 스스로 정말 '지금 이건 해야겠다!!' 란 생각에 자다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면 그 일은 당장 하는 게 맞다. 예전에 아는 선배가 '이대로 가다간 내 아이들에게 땡전 한 푼 물려줄 게 없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해 그날로 재테크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없는 동기가 일었을 때, 갑자기 그 일에 대한 의욕이 솟구쳤을 때는 해야 하는 거다.

(안 하고 어떻게 배기겠는가!)


그게 아니라 아는 사람들이 한다니까, 요즘 시대엔 그렇게 하는 게 대세라고 하니까 뭔가 의무감 때문이라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싶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결국 오래갈 수도, 제대로 해낼 수도, 무엇보다 내가 만족하지 못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쓸 뭔가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마치 덜 익은 과일처럼, 그리고 그런 과일을 수확한 농부처럼 의미 있는 결실로 이어지진 않을 것 같아서다. 심지어 나중에 '내가 그때 그 일을 함께 하느라 굳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있었을까' 후회할지도 모른다.


주어진 한 가지 일을 하며 성실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 유명세나 더 많은 돈벌이, 성공에 관심이 덜한 사람들. 나와 같은 그들에게 '우리가 정답은 아니지만 오답도 아니다' 라고 하고 싶다. 훗날 우리가 주변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열심히 살았다'고 만족해 할 순간이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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