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친구는 각자의 세계 속 전부인 존재였다. 소풍 때 같이 도시락도 먹어야 하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기도 해야 하고, 같이 학원도 가야만 했다. 그렇게 타인과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밀접하며 보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창 시절을 좀 더 특별하게 여기는 걸 지도 모르겠다. 나도 세계를 공유하던 친구들이 있다. 어떤 친구들은 그 학창 시절부터 인연이 이어져 지금까지 나와 세계를 공유하고 있고, 또 다른 어떤 친구들은 공유가 끊긴 뿐만 아니라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멀어진 친구들도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밀접하게 교류하던 ‘우리’가 ‘너와 나’가 되는 과정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끔 서글프다.
주인공인 선이는 오랫동안 ‘우리’의 세계를 갈망했다. ‘너와 나’의 세계에서 서로 비밀도 만들고 추억을 공유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학교폭력과 같이 선이는 알게 모르게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밉보인 이유는 영화에서 따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맘대로 추측할 뿐이다. 어쩌면 감독은 그것을 의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애가 소심해서 좀 그런 거 아니야? 집안이 좀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닌가? 무리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 이유를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졸렬하고 비겁한 짓이란 걸 우리는 너무 잘 알면서도 어딘지 음울한 선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여기서 생각해 볼 첫 번째 포인트가 나온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이유로 선을 그리며, 어떠한 이유로 선 밖으로 감히 한 사람을 몰아낼 수 있는가. 어째서 그런 것들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이토록 외로웠던 선이는 우연히 이사를 온 지아를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변한다. 둘은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져 여름방학 내내 붙어 다니며 소위 말해 둘도 없는 절친이 된다. 그 시절 간질간질하게 싹트는 우정. 봄비를 맞으면 푸릇하게 피어나는 이파리들처럼 둘의 장난과 비밀 사이에 우정이라는 이름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우정팔찌도 맞추고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둘은 개학 후 완전히 바뀌게 된다. 선이가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못마땅한 반 아이들이 일부러 이간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선이도 끼워주려고 노력하던 지아도 점점 선이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선이는 다시 혼자가 되고 만다.
하지만 지아 역시 따돌림을 주동하던 보라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고 만다. 우리였던 세계들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각자 작은 조각으로 깨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중요한 장면인 피구를 하는 장면에서 지아는 선을 밟지 않았는데도 밟았다고 우기는 친구들의 말에 따라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때 유일하게 ‘선 안 밟았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바로 선이였다. 선이가 먼저 말을 하자 모든 친구들이 그래 안 밟은 거 나도 봤어라며 하나 둘 동조하기 시작한다.
누구라도 이 장면이 참 좋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정점을 찍는 장면이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시 우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면 난 우리들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줄 것이다. 여기서 두 번째 포인트는 선이의 행동이다. 선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용기와 착한 마음이 부럽다. 표현이 서투르더라도 내가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것. 내가 정해 놓은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면 혼자서 마음의 문을 닫고 상처를 끌어안고서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먼저 우정팔찌를 만들어 친구에게 다시 건네려 하는 마음과 용기를 가진 아이. 선이는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이다. 그렇기에 구애 받지 않는다. 구애 받지 않으며 단단해진다. 오랫동안 그것을 동경해왔지만 선이 보다 한참 어른인 나도 아직 온전히 가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시련은 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먼저 손 내밀어준 소중한 친구들이 나에게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선이 만큼 용기 있고 멋진 친구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상대가 늘 ‘선’을 넘진 않을까. 내가 주는 것만큼 날 고맙게 생각할까? 하며 따져 묻기 바빴다. 하지만 조건 없이 그저 같이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싶다는 윤(선의 동생)이의 말처럼, 싸워도 그저 다시 놀면 그만일 뿐. 세상의 모든 즐거움만을 같이 순수하게 찾는 게 모든 관계 맺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이제는 선이처럼 내가 나의‘선’을 넘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항상 그어놨던 한계점이 있다. 튀지 말고, 수수하게. 집단에서는 무조건 대세를 따라가자. 내가 맞다고 생각해도 다수가 아니라면 나를 바꾸는. 그 한계를 넘어서서 가끔은 선이처럼 밟지 않은 선에 대하여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를 위해 아닐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함이 필요하다. 어른이 될수록 이 단순한 규칙을 지키기 왜 이렇게 힘든지.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선(한계)을’ 넘어야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매사에 비관적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변에 있어주는 내 친구들을 보면 아직 살만하다는 걸 느낀다. 나를 받아 줄 누군가는 반드시 어딘가에 있다. 그렇기에 아직 이 세계는 선을 넘어도 안전하다. 충분히 우리가 될 수 있다.
ps. 영화를 보면 알 텐데. 윤이는 반칙이다. 너무 귀여워서 반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