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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Apr 29. 2021

그녀(  ) 구원자A

1.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누가 보아도 그녀는 초조해보였을 것이다.

감색 주름치마를 말아 쥐는 손이, 자꾸만 주위를 살피는 흡사 소의 눈 같은 눈망울이,

아직 봄기운이 만연한 한낮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땀방울들이.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처리하고 싶다면 낮 12시. 점심시간에 연락해 주세요.’

 

지난달 받아온 명함을 앞에 두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겨우 용기를 내어 집 앞 공중전화로 나온 참이었다.

이게 과연 맞는 일일까.

하도 만지작거려 귀퉁이가 다 닳은 명함이 그녀의 손바닥 땀에 젖어 눅진해져 가고 있었다.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회사의 종무식이며 다음해에 시작할 새로운 프로젝트며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쁘던 남편이 안쓰럽게만 느껴지던 그녀였다.

그녀는 마트대신 길가에 좌판에서 봄나물이며 더덕이며 반찬거리를 사들였다.

그리고 폴더폰을 열어 ‘오늘도 고생이 많아요. 아무리 바빠도 꼭 밥은 챙겨먹어요. 오늘 저녁은 좋아하는 더덕 무침 해둘게요’ 라고 보냈었다.

신도시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길거리 좌판에서 장을 보고, 아직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 요금제를 쓰는 사람은 그 아파트에서 그녀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기다리던 남편대신에 한통의 전화가 오게 된다.

‘말씀을 드릴까말까 망설이다가, 도저히 그냥 두고 보기가 그래서요….’

남편이 회사에서 어린 여직원과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봐도 티가 나는 행동과 어린 여직원이 바람을 피는 주제에 너무 당당해서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있다고. 사모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았다고.

 

달달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수화기를 내려놓고선 윤기 없이 부스스하게 뻗친 곱슬머리를 이마 뒤로 넘기며 그녀는 생각했다. 어린 여직원만 왜 바람 피는 ‘주제’가 되는 걸까.

남편은? 같은 주제니까 회사에서도 티가 났겠지. 여자가 꼬리를 쳤다는 표현이 이 와중에 거슬린다면 나도 참 미련한 주제겠지.

그날 저녁 남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나 생각하던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남편은 외박을 했다.

 

그래. 이로써 명확해졌다. 남편은 바람을 핀다.

 

바람.

외도.

불륜.

난잡함.

이혼.

수많은 단어들이 어두운 밤을 힘차게 가로지르는 지하철처럼 내렸다가 다시 올라탔다.

새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행복했던가.

지하철역이 근처에 있어 출 퇴근이 더 편해졌다며 웃던 남편이었다.

집근처를 가로지르는 4호선 역을 따라 오이도역에 내려 칼국수와 조개구이를 먹기도 했다.

서해안도 나름 바다라고 조금 쌀쌀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몰을 바라볼 땐 그래도 행복하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역시나 행복은 깨지라고 있는 걸까.

손에 꽉 쥔다고 쥐었는데 언제쯤 놓쳐버린 걸까.

 

남편에게 탓을 돌리기 무서워 그녀가 스스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문진표를 작성하듯 하나하나 꼼꼼하게.

거울을 바라보니 동네 미용실에서 대충 볶은 머리가 이미 풀릴 대로 풀려 늘어져 있었다.

남편의 직장동료의 말로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도 티를 냈다는데,

그녀에게 핸드폰은 시계, 문자, 전화로의 기능만을 다할 뿐.

카카오톡을 비롯한 어플의 기능은 알지도 못했다.

 

사느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최선이 엉뚱한 방향이었을까?

어느새 모든 것에 뒤쳐져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밀린 일기를 아무리 써내도 도저히 다 써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처럼.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세계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막막함.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해도 다시 아이가 될 수 있구나.

 

그렇게 그녀는 길을 잃었다.

 

지독히도 힘들었던 한해를 넘기고 또 다시 떡국을 끓여 둘이 먹으면서, 떡이 너무 알록달록 한게 색감도 이쁘고 못하는 요리가 뭐냐며 치켜세우는 남편을 앞에 두고 그녀가 생각했다.

 

지금 당장 이 떡국을 뒤통수에 갈기고 싶다고.

 

처음으로 그렇게나 크게 차오른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 갔다.

역시 거울을 보니 엉망이었다.

이번에는 풀릴 대로 풀려 늘어진 머리에 한껏 일그러져 울먹이는 난생 처음 보는 표정까지

더해져 더 비참해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겁쟁이였다.

 

그래도 저녁이 되면 이제는 좌판이 아닌 마트로 가서 장을 보았고.

품종개량을 한 과일도 막 사들였다.

샤인 머스캣이며 블랙 사파이어 포도라든지 만년설 딸기라든지.

눈으로만 보고 신기해하던 것들을 망설임 없이 사들였다.

남편도 주지 않고 혼자서 다먹어버렸다.

그럴 때면 깔깔깔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술에 취해 잠드는 밤이 늘어만 갔다.

저 멀리 가보지 못한 알지도 못하는 바닷가가 그리워 졌다.

그녀는 수영을 못하는데도 머리끝까지 잠수를 했다. 그렇게 해도 코가 맵지 않았다.

해초나 불가사리처럼 둥실둥실 떠다녔다. 의식은 자꾸만 아득하게 번져갔다.

 

그리고 다시 아침이 오면 술 냄새와 눈물 콧물이 찌든 여자가 배를 벅벅 긁으며 오줌을 쌌다.

 

남편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장을 넘겨, 봄과 겨울사이 아직은 애매한 2월.

 

그녀는 한 소녀인지 여자로 불러야 할지 아무튼 또 다른 그녀 A를 만난다.

 

A와의 만남은 못하는 술을 억지로 마시는 대신에 죽은 시체처럼 티비를 돌려보다

마주하게 된 음악방송에서 한 아이돌 그룹에 빠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처음으로 더듬더듬 그들의 영상을 보기위해 유튜브 영상도 검색해보았다.

학창시절엔 해보지도 않았던 팬 카페도 가입했다.

그러다 그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공개방송에 가려면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팬 카페 게시판에 적혀있었다.

그녀는 게시물을 읽어가며 앨범을 사고 응원봉도 구매했다.

그리고 스트리밍 사이트 마다 음원을 사야한다는 걸 보고 아예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핸드폰을 바꾸는 김에 자주 들르던 동네 미용실이 아닌 새로 생긴 1인 미용실에 들려

처음으로 차를 마시며 파마를 했다.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했다.

 

이제 곧 봄이 오겠구나 생각이 될 만큼 따스한 봄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얼마 되지 않는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하나하나 입력하고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카카오톡 어플을 깔아볼까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어플 설치하는 걸로 요즘 세상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깔깔 웃으며 방법을 알려줬다. 고맙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근데 너 갑자기 스마트폰은 왜 산거야? 내가 그렇게 사라고 해도 필요 없다고 했잖아. 너 혹시..아니다...하다가 모르면 또 물어봐’ 친구의 알 수 없는 얼버무림에 찝찝한 기분이 든 그녀는 얼른 카카오톡을 깔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프로필사진은 그녀가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누군가가 찍어준 듯한 사진이었다.

 

아주 활짝 웃고 있는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A를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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