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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연솔 Jun 03. 2021

지나고 보면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일상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미화된다는 말이 있다. 지나고 보면 나쁜 기억도 세월의 두께 앞에서 그냥 흐릿하게 먼지 쌓인 추억이 될 뿐이다. 잊지 못할 아픔도 용서 못할 감정도 점점 희석되는 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망각이라는 축복 덕분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면 감사하면서도, 흐려지고 옅어지는 것이 때로는 잔인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굳이 슬픈 일을 주머니 속 동전을 헤집듯 힘을 주어 꺼내어보는 걸 추천하진 않지만, 어떤 일들과 어떤 사건들은 언제나 생생하게 아프고 생생하게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마저 시간에 흐름에 따라 희석되는 기억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것은 정말이지 잔인한 일이다.


가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가장 쉽게 행하라고 채찍질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열정이라 하고 또 욕심이라 하고 더 나아가 독기라고 부른다.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더 많은 광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부르짖는 수많은 성공담들. 그런 성공담은 때로는 강력한 자극제가 되어주므로 말랑한 뇌를 깨워주는 카페인과 같이 때때로 즐겨 찾아 마실만 한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어딘가엔 반드시 존재한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알 수 없이 여전히 남아있는 일들. 그냥 또렷하게 살아 숨 쉬면서 계속해서 숨결을 느끼게 되는 일. 그런 일들을 없는 일로 무르고 더 독하게 마음먹고 나아가라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일종의 죄책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채의식을 모두가 갖고 살아간다. 그것은 역사적인 문제일 수도, 사회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가장 많은 경우에는 자신의 삶 자체에 대한 후회와 절망이다.


때때로 잘 못됐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더 잘할걸,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걸, 다른 선택을 해볼 걸, 만나지 말 것을, 하지 말았어야 해, 태어나지 말 것을...


그러나 어떤 일들은 필연적으로 그 자리에 남아서 살아 숨 쉬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사실상 잘못된 선택을 했을 확률은 굉장히 낮아지게 된다.


트롤리 딜레마라는 이론이 있다. 트롤리(열차)가 선로를 따라 달려간다. 1번은 트롤리 앞에 다섯 사람이 있다. 나는 선로 밖에 서있고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레버를 당기면 된다. 그러나 레버를 당기면 다른 선로에 있는 1명이 죽게 된다. 2번은 역시 다섯 사람이 서있고 나는 선로 밖에 서있다. 그리고 이번엔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옆에 서있는 사람을 밀쳐서 그 무게로 트롤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역시 밀쳐진 그 한 사람은 죽게 된다. 과연 둘 중 더 도덕적으로 허용될 문제는 어떤 것인가? 둘 사이의 도덕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트롤리 딜레마라 부른다.


각자의 도덕적 판단으로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대략적으로 1번을 선택하는 비중이 더 많다고 하는데, 이는 죽음 앞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지 여부에 따른 심리적인 문제라고 한다. 1번이 레버를 당김으로써 좀 더 간접적으로 문제에 관여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선택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트롤리 딜레마가 시사하는 것은  모두  명의 희생자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같은 결론을 도출하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판단하고 생각하여 본인이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한다.


타인과의 비교,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 성공에 대한 욕구 모두 인생에서 필요한 자극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그러한 선택들 중 몇 개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하여도 결국 그 선택은 옳은 선택일 것이다. 적어도 그 시절에, 그 순간에는 본인이 옳다고 믿은 것일 테니. 물론 시간이 지난 후 타인으로부터 재평가받게 될 도덕성과 비난을 피하지 못할 선택들은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맞는 판단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니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어떤 트롤리를 선택하든 한 가지의 실패와 고통 그리고 후회는 남는다.


지나고 보면 결국 모든 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오늘의 할 일을 묵묵하게 해낸다. 할 수 있는 한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출근을 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과 맘껏 이야기하고 웃는다. 나이가 들 수록해야 할 일은 오로지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날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르게 어지럽히는 흐름 속에서 그저 내가 할 일을 묵묵하게 하며 중심을 잡는 것.


언제나 종횡무진으로 세상을 탐구하고 싶다. 대신 성장은 종의 방향으로만. 타인과 비교하는 횡의 방향은 최대한 걷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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