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 피어난 신기루
네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는 뭐야?
난 사랑이란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순수하고 고귀한 형상일 거야. 하지만 사랑은 단순히 한 두 가지의 모습으로 정의되지 않아. 왜냐하면 깨끗하고 올곧지 않은 형태일지라도 사랑이 될 수 있거든. 반드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설령 뒤틀리고 어긋난 관계일지라도 '사랑'은 존재할 수 있어.
오늘 우리는 '오아시스'라는 신기루를 통해서 사랑을 들여다볼 거야. 아마 사회적 약자들이 하는 사랑 이야기는 들어본 경험이 거의 없을 거야. 보편적인 모습은 아닐지언정, 이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진실된 사랑을 하게 돼. 과연 이 둘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게 될까? 같이 살펴보자.
영화의 첫 씬은 홍종두(설경구)가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으로 시작해. 한겨울에 반팔을 입고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빌려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좀 이상해 보여. 맞아. 그는 이제 막 교도소에서 출소한 전과범(뺑소니)이야.
그 사이 이사를 가버린 가족들을 겨우 찾아가지만 가족들은 귀찮은 내색을 숨기지 않아. 어느 날 별생각 없이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간 종두는 마침 다들 이사 가고 난 낡고 초라한 아파트 거실에 정물처럼 혼자 뎅그러니 남겨진 중증뇌성마비장애인 여자, 한공주(문소리)와 눈이 마주쳐.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종두는 또다시 그녀를 찾아가게 돼.
비루한 살림살이가 널려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종두는 공주를 상대로 혼란스러운 욕정을 느끼지만, 공주는 두려움에 일그러진 몸짓을 해. 종두는 공주가 예쁘다고 생각해서 만져보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이내 자괴감에 빠져서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던 어느 날 밤, 잘못 걸린 듯한 전화가 걸려와. 전화 속 뜻밖의 주인공은 바로, '한공주'였어.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그녀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방안에 걸린 오아시스 그림에 밤마다 어른거리는 그림자였어. 그것은 창 밖 커다란 나무가 흔들리며 가로수에 비치는 것이지만 공주는 그림의 위치를 바꾸지도 나무를 어쩌지도 못해. 결국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종두에게 전화를 하고, 그들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하는 계기가 돼.
이로써,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남자인 종두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여자 공주의 사랑이 시작됐어.'
과연 그들의 사랑은 사람들에게 응원받을 수 있을까?
카센터에서 데이트를 하기 시작하고 짜장면을 먹기도 하면서 둘은 서서히 감정을 교류해 나가. 사랑 안에서 공주는 정상인으로 걷고 웃고 말하며, 종두 또한 사랑하는 한 여자를 가슴에 보듬는 듬직한 남자야. 타인의 시선이 차가울지언정, 그들은 사랑 안에서 떳떳한 모습이야.
무서워요, 그림자가.
걱정하지 마. 내가 이것들 다 없애줄게.
공주가 밤마다 드리우는 그림자가 무섭다고 말하자, 종두는 이렇게 말해.
마술로 그림자를 없애려는 종두, 어쩌면 그림자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종두와 공주의 또 다른 모습 아닐까?
둘은 오아시스 그림 앞에서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는 동화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돼. 현실은 정체된 고속도로 한가운데지만, 그들은 생명이 샘솟는 오아시스에서 그 누구보다도 축복받고 있어. 그들이 냉혹한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야.
종두가 어머니의 칠순잔치에서 가족들에게 공주를 소개해주러 가지만, 가족들은 그녀를 반겨주지 않아. 그녀를 돌려보내라는 큰 형, 동생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종두가 큰형을 대신해서 뻉소니로 누명을 씌었다는 것을 알게 돼. 곧 종두는 막차시간의 전철을 타려고 휠체어와 그녀를 안고 뛰게 되는데 그만 휠체어와 전철 모두 놓쳐버려. 종두의 등에 업혀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공주. 그리고 영화는 휠체어에 앉은 종두와 그런 종두의 손을 잡는 공주의 모습을 보여줘.
둘의 처지와 역할이 바뀌었듯, 우리 또한 마찬가지야. 내가 업신여기고 동정의 눈빛으로만 바라봤던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다는 거. 사회적 약자들과 소수자들을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건 인간이 가진 '오만' 중에 하나야.
사랑의 가치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동등하다는 것.
사랑은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린 그저 사랑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뿐,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어.
이내 종두와 공주는 그녀의 집에서 첫 만남 때의 일방적인 관계 아닌,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서 깊은 사랑을 나누게 돼. 하지만 진실된 사랑은 곧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들로 인해서 범죄의 현장으로 전락하게 되고, 종두는 다시 감옥에 갈 위험에 쳐해.
이별을 앞두고 종두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림자를 없애주는 것이었어. 그는 경찰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에 올라가서 그 많던 나뭇가지들을 다 잘라내. 종두의 마술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야.
자신의 힘으로 방청소를 하는 공주. 그녀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교도소로부터 온 종두의 편지가 낭독되며 영화가 끝이 나게 돼. 나한테 그 모습은 마치 나비로 부화하기 전, 따뜻한 봄이 되길 기다리는 번데기 같아 보였어. 결말은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을 봤어. 다시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될 한 공주겠지만, 그녀는 이제 또 다른 방식으로 그녀만의 오아시스를 찾아갈 거라고 믿어.
너는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어떻게 봤어?
이 둘의 사랑은 그저 신기루였던 걸까?
'자신을 겁탈하려 한 전과자와 사랑을 나누는 장애를 가진 공주는 비도덕적이고 불결한 사랑을 한 것인가'라는 비판과 의문점을 갖기 이전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와 그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되돌아볼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져.
종두와 공주의 가족들에게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장애를 이용하고, 편협한 시선으로써 종두와 공주를 바라봐.
혹시 우리도 그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오만과 편견에 갇혀서 빛바랜 진실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진실된 사랑 또한 마찬가지야.
사랑은 과시하는 것이 아닌,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
꺼내어 확인해보지 않아도 언제나 존재하는 것.
그들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가 없었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아름답다고 해주는 마음.
불가능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
부족한 것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어주는 마음.
이 마음들의 총합이 바로 종수와 공주가 지켜나가고자 했던 '사랑'의 모습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