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소 이야기

by 윤종현


이제는, 옛날의 대장간처럼..

작은 목공소들이 99% 이상 사라져 가고 있다..


아빠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건물의 대부분이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었고, 지금의 동네마다 있는 작은 인테리어 가게의 일들도 목공소에서 대부분을 하였다고 한다.


20세에 작은 목공소를 차린 아빠는..

당시만 하더라도 나무로 된 집을 포함하여 온갖

일들을 다 하셨다고 말씀하셨었다.

주종목인 나무문과 ‘창호’를 포함하여..


지금도 우리 간판은 "유진 목공소"라는 이름을 쓴다. 얼마나 정겹지 않은가.

'서울'이라는 콘크리트 더미 속, 가구를 만드는 공방은 너무나 많지만 이제 더 이상 '작은 목공소'는 사라져 가고 전국에 1%도 남지 않았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게, 대도시의 한편에

자리한 '작은 목공소'..

지금도 주로, 그나마 마진이 좋은 나무로 된

'원목문'과 '창호'를 전문으로 하긴 하지만..


일이 한가하거나 찾아온 손님들이 '조르기'를 시전 하시면,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손님이 원하는 대로..

망치, 대패, 톱 등의 연장들과 작은 기계들로

뚝딱뚝딱 만들어 드린다..


대체로 '나무 문'을 제외한 그런 주문들은 화려하거나 고급스럽지 않은, 소박하거나 우리네 서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물건들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우리도 최대한 저렴한 나무들을 사용해서 최소한의 인건비를 들여 가성비 있게 손님들이 원하시는 금액대에 맞추어해 준다.

바로 그 점이 오래전부터 작은 동네마다 살아 숨 쉬어오던 '목공소'들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시대의 뒤안길로 잊혀가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나지만, 아빠의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부분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예술'을 할 수 있게 돈을 벌어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 서민들의 삶과 마주 보며 함께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닳아 해진 커다란 '나무 도마'를 깎아 달라는

동네 생선장수 할머니.


각자의 용도에 맞게 작은 나무나 조그만 합판을

잘라 달라는 이름 모를 이들..


고추 농사에 필요한 나무 고춧대를 얻으러 온

이웃 주민들..


때로 귀찮게도 느껴지는 작은 나무토막 한 개를

얻으러 꾸준히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


귀여운 애완용 햄스터에게 깔아줄 톱밥을

얻으러 오는 이들..


간단한 가구를 직접 짜는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 재단만 된 나무를 사 가는 수많은 가장들..


큰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이웃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목공소'..

...


어디를 좀 다녀왔더니..

그새 아빠가 찍어놓은 흐릿하고 귀여운 사진 속엔 어느 우물에 쓰일 '나무 뚜껑'과 우물물을 퍼 줄 '나무바가지'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나무로 된 모든 우리네 물건들은 정겹고 따뜻하다..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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