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가는 것보다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봐야
우연히 발견한 신정수 작가님의 현명함이 가득 담긴 글을 읽고, 지난 시간 빠르게만 달려왔던 날들이 왜 노력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는지 생각하는 계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신정수 작가님의 글에서 받은 영감, 그리고 지난 삶을 통찰하며 얻은 깨달음을 공유합니다.
저는 항상 성공한 미래를 꿈꾸어 왔어요.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나이가 들어 갊에 따라 내 성공의 기준은 바뀌어 갔죠. 나 혼자만을 위한 성공이 아니라 내 가족이 추후 누릴 수 있는 성공으로.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실패할 수 없었고, 현재 가진 "안정적인" 직업을 유지하면서 성공하는 삶을 위해 남들 보다 빨리, 그리고 더 나은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회사에서 저는 남들이 내는 결과의 10배(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 정도의 양)의 결과를 내고, 빨리 일을 하는 것에서 올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스스로의 업무 프로세스도 개선하고, 팀워크에 대한 지적을 듣기 싫어서 먼저 다가가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도움을 주고 최대한 팀이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잊고 있는 게 있었더군요. 바로 내가 속해 있는 곳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말이죠.
지나서 생각해 보면, 내가 아무리 경험이 많고 기술적으로 좋다고 하더라도 남들 10명 이상의 일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내 존재가 불편함 그 자체가 되었을 때에서야 저는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죠.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지? 몇 번 피드백이 있긴 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조금 더 부드럽게 해라, 너무 지적을 많이 하지 마라, 토론이 길어지면 이해가 가지 않아도 적당하게 끊어라, 등등...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다 보니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속하게 태도를 바꾸고 최대한 책잡히는 일 없이 하는 것도 한계가 오고, 이제는 일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다들 너와 일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와 같은 추상적인 피드백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뭐냐, 불편해 한다면 그건 왜 그러냐, 하고 매니저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다들 그렇게 말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냐, 스스로 알아 봐라와 같은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답변이었죠.
성공을 위해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것이 불편해지는 회사, 그게 제가 속했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팀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저는 철저하게 일만 잘하는 재수없는 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무엇 하나라도 원래 생각했던 것처럼 동작하지 않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니가 한 일이 잘 안된다며 물어뜯기 시작했죠.
화가 나는 것도 잠시, 어이가 없는 것도 넘어 이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순진하게 실력과 노력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제 인생에는 무언가 빠진 곳이 있었던 겁니다. 어떤 분은 저의 잘못이 아니고 단지 잘못된 곳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저는 도무지 그 실패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악한 사람들은 분명히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떤 요소가 저를 그런 상황으로 밀어 넣었던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하는 리더십 프로그램, 다른 분들의 글들, 그리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매니저와 끝장토론을 벌이기도 하면서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잘못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법을 위반하면 잘못한 것인가요? 도덕적이지 못한 일을 한 것이 잘못인가요?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근본적으로 "잘못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요?
사전적으로 보자면, 올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올바르게 되어야 할" 것이라는 건 무엇이 기준일까요? 바로 그 행위가 이루어 진 장소나 모임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정한 것 입니다.
만일 "법"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그 법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적혀져 있지도 않고, 정해져 있지도 않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잘" 과 "잘못"을 구분해야 할까요?
어떤 조직에 들어가면 "분위기 파악"을 먼저 하라고들 합니다. 소설 등을 보면 주인공이 조직을 흔들어 놓는 일도 종종 있는데, 사실 개인이 조직을 상대한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힘든 일입니다. 만일 가능하다고 해도 알지 못하고 싸울 수는 없는 일이지요. 싸움을 하기 위해서도 그런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적어도 "무엇"을 조심해야 할 지는 알아야 하겠죠?
그리고 이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혹은 "불문율"에 대해 알지 못하고 나대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응징"을 가합니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너의 잘못은 이것이야"라고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런 운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저와 같이 비싼 수업료를 내고서야 간신히 실마리를 잡기도 하고, 아예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분노를 늘어 놓을 수도 있겠지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다들 모나지 못해 안달인 것 같기도 합니다. 조금 모가 나야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겪어보고 나니, 저 말에 숨어있는 다른 뜻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생존"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이도 "생존"이라는 전제 없이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성공하고자 한다면 위험을 감수하라는 말도, 수 많은 "생존"의 가능성을 뚫어 낸 말일 뿐입니다.
물론 "생존"자체에 집중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더 나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애초에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움직이기 위한 동기를 얻기 힘들다는 것 또한 맞습니다. 사람은 생존이 보장된 상황에 놓이면 쉽게 나태해 지고, 자신의 발전을 진정으로 추구하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그 이전에 어떻게 생존하는 지 모르는 사람이 그 "생존"의 위기를 헤쳐나가 더 나아갈 수 있기는 할까요?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어디엔가 속해서 살아갑니다. 혼자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수입이라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모험을 딛고 만든 회사에 속해 쥐꼬리만한 봉급이라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는 선택을 하는 거지요. 누군가는 "자발적 노예"가 되는 거라고 거칠게 말하기도 합니다만,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윈/윈"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나는 고용주가 주는 돈을 받고, 고용주가 원하는 만큼 내 노동력을 제공한다."
그게 그 고용 계약의 전부입니다. 거기에는 고용주가 고용인의 자아실현을 도와준다는 조항도 없고, 고용인이 고용주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조항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계약에 의해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상황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정당한 계약에 의해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생긴다? 이건 두말 할 것 없는 위협입니다. 지금까지 서로 만족했던 계약이 마치 "불공정 계약"인 것 처럼 보이게 됩니다.
"어라? 똑같은 돈을 주는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애도 있네? 그럼 다른 애들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고용주는 많이 않을 겁니다. 정말 작은 회사라서 직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일이 볼 수 있지 않은 이상에는 말이죠. 매니저가 내가 잘 하는 걸 보고하면 된다고요? 아니, 누구 좋으라고요? 자기도 현재 생황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요. 절대로 자기 밥그릇 뺏길 짓은 하면 안되죠.
결국 내가 만들어 낸 남들의 10배가 넘는 성과는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하고, 그저 팀 전체의 성과가 되고, 나는 미세하게나마 팀의 기대치를 높여버린 "눈치 없는 놈"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응징의 시간이 찾아 옵니다.
내가 하는 일에는 이유없는 공격이 시작 되고, 누구도 따르지 않는 불공정한 업무 프로세스가 추가됩니다. 한번 토론이라도 있으면 불필요한 충돌이라는 이름으로 그 충돌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사실이던 아니던, 증거가 있던 없던 상관 없습니다. 법정도 아닌데 증거를 찾아 누명을 벗겨 줄 사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억울하지 않냐고요? 억울 하지요. 그런데 애초에 그런 일을 만들 지 않을 수 있었는데 자초한 것도 사실이지요.
결과도 내지 않고 조용한 사람, 남을 끌어내리는 사람, 뒤에서 수근대는 사람, 하는 것도 없으면서 자기 어필만 하는 사람들을 저는 내심 깎아 내렸습니다. 너희들이 그럴 시간에 공부를 더 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을 그렇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을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던 말던 간에 나만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늦춘다면 결국 내 미래도 그들의 미래와 비슷한 미래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그저 두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어쩌면 정말로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알 수는 없는 일인 이상, 내 안에서 결론 내리고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건 올바른 자세가 아니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기준이 있고, 스스로의 기준이 무시를 당하면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니까요. 내가 건강을 위해서 매일 30분 씩 걷기를 하면서 매일 하는 루틴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 말을 듣고 자기는 매일 5시간씩 걷는다며 그것도 운동이냐고 무시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요?
지나서 생각해 보면, 굳이 드러내지 않고 남들 보다 약간만 더 나은 결과를 보였어도 회사에서 충분히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겁니다. 굳이 남들의 10배의 결과를 내면서 그들이 내는 결과를 폄하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어느 정도 약점도 보여 주고, 충분히 함께 갈 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게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았을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남는 시간은 개인 프로젝트나 학습을 위해 사용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그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 안에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오히려 돋보였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전체를 눌러버릴 정도의 결과를 낸 이유에 대해 곰곰히 분석해 보자면, 어쩌면 저 역시 조금 다른 시점에서 보았을 뿐, 시대에 뒤처지고 은퇴 전까지 이루어야 할 목표에서 뒤처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매몰되어 남들의 두려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그들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면 나 스스로가 느려질 것이라는 공포는 어쩌면 다른 길을 보지 못하는 좁은 시각에서 왔을 지도 모릅니다.
아직 제목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이렇게 정했었죠.
"흐름에 대하여: 당신은 왜 빨리 갈 수 없나?"
이유는 당신이 빨리 가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주변의 저항에 부딛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그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급한 당신에게 교통 체증과 같이 느릿 느릿한 흐름을 따라 가는 건 영 성미에 맞지 않으니까요. 물론 모두 다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간다면 평균적으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죠. 현실적으로는 이득의 분배는 어떻게 하면 빨리 가고자 하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분배 되었습니다. 과속을 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 처럼, 누구는 실패하고 누구는 성공합니다. "야! 나는 과속해서 더 빨리 와서 한정상품 샀다. 너희도 과속 해 봐! 좋아!" 라고 말해 봤자, 누구는 아예 빨리 운전하는 것을 겁내고, 누구는 몇 번 사고 낸 경험에 주저하고, 누구는 큰 사고를 내고 아예 고속도로 바깥으로 퇴장합니다.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이 그 도박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사고를 몇 번 낸 사람들은 그 도박이 마냥 핑그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포기하면 편해. 그냥 흐름을 따라 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죠. 틀렸다고 하기 힘듭니다. "생존"의 역사는 "흐름에 따르는" 것을 "순리"라는 이름으로, 가장 좋은 생존 전략이라 말합니다.
그렇게 글을 끝맺어도 전혀 나쁘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순리"에 따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의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빨리 가고 싶어? 그렇게 가면 뭐가 좋아? 그깟 한정 상품,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속도의 세상, 뒤쳐지면 지는 것 같은 느낌, 남들도 다 빨리 가는 것 같은 조바심.
이런 것들이 이유라면 단언컨대, 그냥 순리에 따르는 것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리더가 되지 않으려 하면 패배자처럼 보이는 시선을 이겨내야 하겠지만요. 중요한 건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만일 위의 물음에 전부 내가 빨리 가고 싶다. 내가 그 한정 상품을 얻고 싶다고 한 점 의심 없이 답할 수 없다면 다음에 물어야 할 건 이게 될 겁니다.
거기서 뭐해?
앞에서도 말 했지만, 내가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조금 힘들어도, 남들이 나를 패배자라고 생각하고 내가 남들보다 느리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흐름을 따라 가야 합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나 일론머스크 처럼 반골에 흐름을 만드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말은 바로 해야죠. 당신은 높은 확률로 그런 정도의 천재는 아닐 겁니다. 물론 저도 아니구요. 제 말에 동의하신다면, 그래서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도 된다면, 기존의 흐름에 아주 약간의 변경을 해 주는 것으로도 내가 원하는 결과에 갈 확률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1차선이 느린 것을 알고 있다면 2차선으로 옮겨서 더 빠른 흐름을 따라가면 됩니다. 미친듯이 레이싱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교통 체증은 풀려 있을 겁니다. 당신이 천재라면 한정상품을 사기 위한 레이싱에 참여하기 보다 그 지역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할 겁니다. 가서 그것 하나 사 달라구요. 모두들 레이싱을 하느라 잊고 있겠지만, 그 레이싱의 목적이 한정상품을 사는 것이라는 목적을 잊지 않은 거죠.
원래 세상이 그렇습니다. 누군가 남들이 생각치 못한 일을 하면 나도 할 수 있었다며 쉽게 생각하지만, 아주 일부의 사람만이 그러한 인식의 전환으로 인한 이득을 얻죠.
하지만 여러분이 아예 그 차에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왜 차가 빨리 안가냐며 손톱을 잘근 잘근 씹던 때와 달리 자기도 전화를 걸어 한정상품을 사려 할 겁니다. 여기에 "어디에 속해 있느냐"가 왜 중요한 지가 나옵니다.
저는 성공하는 회사에 들어가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올바른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것 또한 그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회사 생활을 지속하면서, 남는 시간동안 준비 한, 혹은 그 곳에서 얻은 지식을 이용하여 스스로 1인 회사를 차려 볼 수도 있겠죠. 요즘 같은 시대에 수많은 영세기업 지원 제품이 존재하고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위험은 극단적으로 줄이면서 창업을 시도해 볼 수도 있고,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리거나 무언가 자신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것을 추가로 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에게 "흐름의 힘"을 느끼게 해 줄 올바른 모임을 찾으세요.
주변의 시선이나 기대는 때로는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게 나의 의지와 배치되는 지 살펴야 합니다.
느리게 가는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흐름이 나에게 너무 빠르다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는 것 처럼 한 걸음 떨어져서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만일 그 휴게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거기 머무르기로 결정했다면 그걸로도 좋습니다. 빨리 가고 싶다면 현재의 흐름에 속해서 억지로 거스르기보다 다른 길을 찾아 보거나 완전히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속한 곳이 나의 목표와 맞는지, 양립이 가능한 지, 혹은 더 좋은 곳이 있는지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 보세요. 완벽한 답은 없습니다.
단지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을 잊는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