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하나의 안부

by 서담

한 달에 한 번, 민서와 함께 독거노인 어르신들 댁을 찾아가 빨래 봉사를 한다. 우리가 맡은 다섯 댁을 돌며 이불, 커튼, 옷가지 등을 수거하고, 빨래방에서 세탁·건조 후 다시 가져다 드리는 일이다.


언덕 위 집들이 많아 땀이 나긴 하지만, 마음은 늘 따뜻해진다.


그 중에 한 할아버지가 계신다. 다세대주택의 좁은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분. 문 앞에는 종이박스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 박스들은 아마도 할아버지의 하루하루를 이어주는 생계의 끈일 것이다.


벨을 눌러도, 아무리 불러도 잘 들리지 않으신다. 한참을 기다려야 문이 열리고, 그때마다 밝게 꾸벅 인사해주시는 얼굴이 오래 남는다.


처음 그 댁에 갔을 때, 베개를 맡기셨다. 세탁을 위해 커버를 벗기자,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했다.


베개라는 건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내일을 꿈꾸는 자리인데, 그 베개는 마치 “쉴 수 없는 삶”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세탁한 커버를 씌워 돌려드렸지만,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며칠 뒤, 내 옷장을 뒤져 쓰지 않던 베개 두 개를 꺼냈다.

그건 내가 결혼할 때 친정엄마가 해주신 혼수 베개였다.


엄마는 돌도 안 된 나를 업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다. 시장 이불집 아주머니가 자주 내게 새 이불을 펴 눕혀 재워주셨다는데, 그 고마운 마음에 엄마는 결혼할 때 그 집에서 혼수를 마련하셨다. 더 싸고 좋은 이불은 많지만, 마음을 따라 결정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받은 베개였지만 내게 맞지 않아 옷장에 고이 넣어두었던 그것을, 이번엔 마음을 담아 할아버지께 드렸다.


“베개가 좀 낡으신 것 같아서요.”

할아버지는 꼭 쥔 손으로 베개를 받으시며 정말 기뻐하셨다. 그 순간, 이 베개가 할아버지께 하루를 온전히 내려놓는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 중이시라고 들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신다. 사회복지사님은 아마 다시 뵙기 어려울 거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마음이 참 먹먹했다.


할아버지,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매일 밤 편히 쉬시고, 좋은 꿈 꾸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 봉사를 시작할 때 친정엄마가 내게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아이한테는 좋은 것만 보여줘야지, 왜 굳이 힘들게 사는 사람을 보여주냐”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자랄 때도, 엄마는 날 지키기 위해 힘든 현실을 많이 감추셨다. 하지만 나는 민서에게 조금 다르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가진 이 따뜻한 이불, 깨끗한 베개, 고단한 하루를 쉬어갈 수 있는 삶은 누군가에겐 너무 멀고 희미한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세상을 바꿀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공부하는 거야.”

“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기 위해 돈을 버는 거야.”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의 베개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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