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도망쳤다.

삶,이야기

by 아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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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수많은 오해와 단절은

소통의 부재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구, 동료, 부모 자식 간에도,

그리고... 부부 사이에도.

나는 타고난 기질과 자라온 환경 탓에

늘 사람들 앞에 웃고, 좋은 모습만 보이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무너질 때면,

타인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이 성향은 내가 누군가와

진솔하게 소통하는 데에 큰 장애가 되어 왔다.

그리고 그 장애가 커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질 때면,

나는 늘…

관계를 끊어내는 것으로 숨통을 틔우며 살아왔다.

그들의 마음, 의리, 사랑…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나와 더 나은 관계를 만들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나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도망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끊어낼 수 없는 관계들과

매일 복작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남편,

그리고 나의 아이들.

마흔넷,

이 고착된 언행과 마음가짐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오랜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

너무 커서,

너무 깊어서…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의 수술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해야 한다.

두려웠지만,

내 안의 연약하고 불쌍한 나를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며 안아주기 시작했다.

그 마흔넷의 ‘어린아이’를

내가 처음으로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나는 수술대로 향할 용기를 얻고 있다.

어두운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마음까지 누르던 아침,

둘째 손을 잡고 등원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날씨와 반대로 신이 나 폴짝이는 아이가 말한다.


"엄마! 구름이 자네?"


응???


"구름이 가까이 내려와서 베개 베고 누웠어! 코 잔다!


그 순수하게 아름다운 아이의 한 마디에,

흐린 먹구름은 내게 보드라운 이불이 되었다.


등원길 바람에 흔들리는 금계국이 아름다워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이들의 마음이 고마워서...

단지 나이기에 사랑해 주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는 오늘 하루도

한 걸음 더 힘을 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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