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야기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가도록
아직 파닉스도 시작하지 못했다.
아이는 나와 하루 종일 종알종알 잘 노는데,
책상 앞에만 앉으면 모든 신경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 예민해진다.
잠시 후, 아이는 짜증이 피어오르고 눈물이 터졌다.
A형 독감으로 학교를 못 간 지 3일째 되는 아침.
하루 종일 유튜브만 보고 있는 딸이 못마땅했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잠갔다.
"오늘은 이거 풀어야 유튜브 볼 수 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의 얼굴이 먹구름처럼 찌푸려졌다.
무척추동물이라도 빙의한 듯
책상 위에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숨을 고르며 나의 분노 게이지를 억누르던 그때,
아이의 손이 피아노 건반 위로 올랐다.
요즘 학원에서 배우는 곡 "인형의 춤"
경쾌한 멜로디가 거실을 채웠다.
순간,
나는 팔과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이는 깔깔 웃기 시작했다.
피아노 선율과 아이의 웃음,
그리고 나의 정신나간 춤사위가
거실을 들썩이게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재빨리 칠판에 수학문제를 썼다.
풀이 과정을 보여주자
아이가 웃으며 따라왔다.
"오! 정답이야! 얼쑤~!"
나는 탈춤을 췄다.
아이는 웃다 쓰러졌다.
"엄마 너무 웃겨! 하하하! 나 더 어려운 거 해줘 봐!"
그 말에 나는 엄지를 번쩍 들어 올리고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썼다.
그리고… 아이는 문어입술을 한 채 풀어냈다.
"이야아아~ 예솔이 이것도 풀었네~ 덩실덩실~ 엄마 신난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
나의 허리와 체력은 이미 방전.
하지만, 드디어 문제집 첫 페이지를 시작했다.
매일같이 싸우던 그 문제집이
오늘은 춤과 웃음으로 열렸다.
물론 매일 이럴 순 없겠지.
그래도 오늘만큼은 깨달았다.
이제 나는
눈에 힘을 주는 엄마가 아니라,
춤에 힘을 주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