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비대, 자아상실
세상에 남아있는 건 철저히 파편화된 '나' 뿐, 요즘 시대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나'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자아적 궁금증이 더 높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 대한 관심도 식고, 서로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줄어든 게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나르시시스트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만 관심이 있고, 타인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 보였다. 나에게서도 물론 그런 모습을 보았을 때가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다소 혐오스러웠다. 예술을 한다는 인간이기에 자아가 부푸는 현상을 아예 배척할 수도 없었지만, 나에게만 너무 빠져있는 내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몇 번이나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해 보았다.
답은 너무 쉬웠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학교에 들어간 후로부터, 경쟁은 늘 좋고 옳은 것이라 배웠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TV를 켜면 각종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다. '독하지 않으면', '갓생을 살지 않으면', '열정적이지 않으면' 그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극대화된 신자유주의 체계 속에서,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 그 자체다.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올리지 않으면, 쉽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럴싸한 감투들을 만들어냈다. 학교, 직장, 사는 곳, 연봉, 직업 등의 이름이 마치 그 사람 전체를 대변해 주는 듯. 그러나 아주 깊은 내면에서는 알고 있다. 그럴싸한 숫자들과 물질들이 결코 인간의 마음을 모두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루에 수없이 마주하는 광고들과 쇼츠, 콘텐츠들에 우리의 정신을 맡기고, 우리들의 생각 체계를 넘겨버린다. 늘 그래왔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 시대에 우리는 타인을 잃었다. 타인의 존재와 촉감과 인식과 생각과 마음을 잃었다. 우리는 자신 속으로 더 깊게 빠지며, 자기 자신조차 잃어버리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아는지, 요즘 보면 이것에 정답을 아는 것처럼 구는 인간들이 많다. 마치 자신의 말만 들으면 모든 실마리가 해결될 것처럼 떠드는 인간들 말이다. 그들 중 정말 자신이 그 정답을 알아냈다고 생각하는 인간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으면, 어떻게 아직까지 인류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했는가? 기아와 빈곤, 환경오염, 생로병사, 각종 혐오와 차별들. 여전하지 않나? 뭐든 간에 심하게 확언하는 인간들의 말은 믿지 못하겠다.
특히 그런 거 있잖아, 왜. 시크릿이랑 R=vd 이런 거. 나도 중학교 때 그거 많이 보고 해봤던 입장으로서, 그건 정신적 자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생생하게 꿈꾸고 매일 그것을 위해 달려간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의식하니까 그와 관련된 행동을 할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그렇게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구상에 시크릿과 R=vd 등을 하는 모든 인간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무질서, 카오스, 엔트로피. 그 자체 아닐까?
아무쪼록,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살기가 쉽지가 않다. '관계'라는 것이 모두 소멸되어 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혹여나 이 글이 닿았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과 같은 사람이 여기 있다고.
우린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생산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이 소멸돼가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