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첫 알바

어려운 재테크

by 별빛

올봄, 아빠가 공장 감시감독 단기알바를 시작했다.

처음 일한 곳은 대구에 있는 제조업 공장이었다. 매주 금요일, 아빠는 일주일치 짐을 싸서 비싼 KTX 대신 시간이 두 배 걸리지만 표값이 반인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거기서 일하면 건물 위에서 철근이 떨어지거나 사다리차에서 떨어질 위험이 있지 않아?” 하고 물으니, 항시 헬멧을 쓰고 있고 안전점검도 해서 그럴 걱정은 없다며 공장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정돈된 곳이었다.


아빠 말로는 외국인 친구들이 아주 순수하고 착하다고 했다. 또 김치찌개를 놀랍도록 잘 먹는다고 했다. 다들 아이폰을 쓰고 에어팟을 귀에 꽂고 일한다면서, 세대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도 했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서 일해 본 적이 없다. 평생 장사를 해왔고, 아마 고용주 아래서 일해 보는 건 (큰아빠네 공장에서 아주 잠깐 일한 걸 제외하면) 처음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빠야말로 군말 없이 시키는 일 다 해내는 ‘성실함의 끝판왕’이라 회사 생활에 딱 맞는 사람인데, 장사가 체질인 진취적인 엄마 덕에 가게를 건물주가 쫓아낼 때까지 삼십 년간 잘 키워왔다.


다시 돌아와서, 아빠의 성실함은 그곳에서도 빛을 바랐다. 다들 농땡이 피우고 3시에 퇴근할 때도 아빠는 끝까지 일했다. 어느 날은 동료가 아빠에게 “천천히 좀 하라, 그렇게 열심히 하면 나는 뭐가 되냐”라며 한소리 했단다. 머지않아 그 동료는 잘렸고, 아빠는 고용주의 부탁으로 다른 프로젝트까지 참여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몇 달을 더 일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는 강남에 있는 페인트 칠하는 곳에서 감시감독 일을 했다. 아빠 말로는 “페인트칠하는 사람들 너무 대충 한다, 내가 더 잘할 것 같다”며 이참에 페인트칠을 배워볼까 한다고 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앞으론 기술력이 있는 자가 살아남을 것 같다고. 예전에 우리 집 주택 외관도 아빠가 직접 업체 끼고 페인트칠을 했었는데 꽤 잘했었다.

며칠 뒤 아빠는 페인트 감시감독 업무는 어렵지 않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매일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하고 다닌다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지쳐했다. ”사회생활 해보니 어때 아빠? “ 라며 놀렸다.

한 2주 정도 지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아빠는 고용주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더는 일을 못 하겠다”라고 말했다. 고용주는 많이 아쉬워했다.

그리고 아빠는 처음 했던 일과 비슷한 일을 다시 찾았다.


통장에 돈이 쌓이자 아빠는 육십 인생 처음으로 본인 혼자 번 돈이라며 굉장히 신나서는 나보고 맛있는 걸 사 먹으라며 용돈을 줬다. 됐고 아빠 신발이나 사러 가자며 아울렛 몰에 갔다. 여름에 운동화 신으니 발에서 땀난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가죽 샌들을 골라주니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어느 날 아빠가 주변에서 돈은 그냥 은행에 쌓아 두면 안 되고 재테크를 해야 되는 거라고 했다면서 주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매번 나랑 엄마만 떠들던 주식 얘기에 아빠는 누가 이거 좋다 했다며 툭툭 얹기 시작했다. 평생 정치채널만 보던 아빠가 갑자기 주식 채널을 보기 시작했고 (유튜브 계정을 공유하는 터라 아빠가 뭘 보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들어보는 잡주를 누가 기회라고 했다며 사기도 했다. (그래도 딸이 뉴욕 은행에서 재무분석•예측 일 했고 주식투자도 십 년째 하는데 듣지도 않는 게 쪼금 섭섭했다?) 엄마도 나도 좀 잃게 두자며 대부분은 삼성사고 소액으로 사고 싶은 거 사라고 했다.

그렇게 가을, 아빠는 돈을 잃어 슬프다며 전화를 했다. 그냥 십만 전자에 넣어둘걸 이번 기회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위로해 줬다. 나도 십 년 전에 원유세배 레버러지 샀다가 잃고 그쪽은 쳐다도 안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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