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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Dec 07. 2023

아버지의 뒷모습-4

꺾여버린 꿈



공장을 시작하면서 청년은 한 가지 결심했던 일이 있다.

함께하는 직원들을  내 형제자매 같은 마음으로 대할 것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공장을 일굴 것

자신이 힘들게 살아왔던 시간이 떠 오를 때면 겹쳐지는 그들의 얼굴이다.

응원해주고 싶은 그들과 함께 하는 사업장을 꿈꾸며 한 장 한 장 블록을 쌓아 올렸다.



그들에게 청년의 진심이 얼마나 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청년은 진심을 다해 그들과의 관계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랬기에 노동운동이 온 나라를 휘감던 80년대 말,  청년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감당하기 버거운 시간들이었다.

어제 함께 회사문제를 얘기하던 직원들이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청년을 향해 비난의 말을 퍼부어 대는 데 배신감도 느꼈지만

시대의 흐름은 모든 것이 그럴 수도 있음을 용인하고 있었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서 그들은 참지 않았고

좀 더 나은 처우 개선을 위해 청년과 대립각을 세웠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보다 시대정신이 우위에 서있던 시대였다.


몇 년간 그런 시간 속에서 청년은 지쳐갔고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며 사업을 이어가는 게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일개 공원으로 시작해 기술자의 길을 걸으며 부장의 자리에 까지 오르고,

신발업에 대한 자신감으로 시작한 사업은 사회분위기에 따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공장 문을 닫는 날 회한의 눈물을 삼키며 빗장을 잠갔다.

사회에서 처음 맛보는 실패의 쓴 맛이었다.

자신의 인생철학인 정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도 시대 앞에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데 좌절하면서 육중한 쇠문을 걸어 잠갔다.


그럼에도  함께 했던 직원 다수가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명절  인사를 오고,  

사무실 여직원은 결혼 주례를 부탁하기도 한 걸 보면

청년이 인생을 헛살지만은 않았음에 위로를 받는다.



이 시기에 높은 인건비를 견디지 못한  많은 사업장들이  저임금의 중국과 베트남으로 많이 이주했었다.

청년도 생각하지 않았던 바는 아니지만  사업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또 다른 삶을 계획하게 되었다.




1995년은 지방자치제가 태동되던 시기였다.

그전부터 ****당원으로 활동하고 로터리 클럽, 민족평화통일 협회 자문위원 등

지역 사회기반으로 활동하던 그는  공장을 그만두면서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1대 구의원을 시작으로  사업할 때보다 더 열성적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했던 청년은

제2의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주민 정착촌인 청년이 사는 지역은 좁은 골목과 도로상황으로 날이 갈수록  도로정비필요했었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끝장을 보고자 하는 의지는 여기서도 드러나,

정책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후 도로 정비 인허가를 받아 공사 착공까지 일을 진행시켰다.

일을  추진하기까지의  긴 조율과 고성이 수고롭지 않게 느껴지는 결과다.


좁고 복잡해 늘어나는 차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도로가 개통되니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했었다.


지금도 그 도로를 지날 때마다  반듯해진 도로를 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보수도 명예도 크지 않은 명예직인 구의원이지만 지역의 일원으로

지역민들의 요구를 실현했다는 생각은  사업할 때와는 다른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아침은  청년의 통화로 시작되었다.

7시부터 식사 전까지 거의 2시간여를 매일 고성이 오고 가다, 달래며 으르기도 하고

다시 고성이 나오다가 침착해지는 등

정치는 청년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청년을 아내는 못마땅해하며 돈도 안 되는 그런 일 뭣하려 하냐고 나무랐지만

사업 후 의기소침해진 청년을 보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매일매일 새롭지도 않은 이슈들로 하루를 여는 청년과 당원들과의 대화는 그렇게 수년 동안 이어졌다.


2대 구의원 선거는 첫 해보다 경쟁이 심해져 공천 전부터 치열한 설전이 이어졌었다.

서로 헐뜯고 , 지역 어르신 모신 식사 대접에 ,

당원들 달래주는 회식 자리까지.

우리가 흔히 보는 선거의 축소판이  지역마다  바쁘게 펼쳐지고 있었다.

투표 시간이 끝나고 전국의 투표결과가 밤새 보도되는 와중에 청년도 지지자들과 함께 사무실에서 밤을 밝히며 초조히 결과를 기다렸다.


부산지역은 보수당이 우세여서 그 밤을 넘기기 전에 판세는 드러났고 청년은 2대 구의원에도 당선이 되었다.

첫 해보다 많은 지지자들, 당원들에 둘러싸여 축하의 꽃다발을 받은 저녁

청년은 자신의 인생이 매일 지금만 같기를 소망했다.


의회에 입성하기 전 청년은 욕심을 내고 있었다.

두 번째 당선이라 경험치도 상승했고 말주변이 좋았던 터라 의회 의장자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느니..

의장의 자리에는 청년의 명판이 놓이고  높은 단상은 청년의 차지가 되었다.



의전차량이 제공되고 평의원일 때와는 대접도 사뭇 달라졌다.

청년의 의장실에 가족들이 방문하던 날

손주 둘과 딸, 사위들 앞에서  힘들게 부산 땅을 헤매던 지난 시간이 생각난 청년은 코끝이 시렸다.

부모 형제, 그리고 장차 나의 가족들에게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가난의 굴레는 ,

이제는 옛이야기로만 남게 되었다.

모든 것이   청년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듯해 청년은 행복했다.


이제 구청장이다!!!


당에서 공천은 약속되어 있었고 청년은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가고자 했다.

거리낄 것이 없었고 주변에서 그를 응원해 주는 동료들도 많았다.

호인으로 통하는 그를 반대하는 정적들도 많지 않았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좋은 일이 많으면  언제든 경계를 멈추지 않았어야 했는데 청년은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의심하지 못했었다.


인생 최대의 자리에서 축포를 터트린 청년은

물밑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승리에 취해 있었다.

주변엔 그를 칭찬하고 응원해 주는 이들로 가득하다고 믿었으니까.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살았다 생각했고

자신의 소신을 지금껏 꺾으며 살지 않았으니까.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을 도모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그였다.

`내가 구청장에 입문을 하면 그를  내 차기 구의원 자리에 올려 세우리라` 생각했던 후배였다.


눈이 부신 어느 날,

청년은 가깝다고 여긴 지인의 고변으로 사건에 휘말렸다.

믿었던 후배와 셋째 매제의 잘못된 모의로

청년은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매제의 행동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실이었고

후배와 매제는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며  삶의 나락을 보여주는 일등공신이었다.


힘들게 공부할 때도, 떠돌이 생활하며 버텨내던 시기에도 청년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인생의 최고자리에서 끌어내려지는 일이 지인들과 친인척 때문이라는 사실에

청년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남을 속이거나 해하며 그 자리까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이지만 일은 꼬일 대로 꼬여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다.

의장직과 의원직을 내려놓고서 청년은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을 너무 믿었던가,안일한 마음으로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던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자신의 인생 앞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일이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야  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나의 무고가 밝혀지리라.

모든 걸 내려놓은 뒤 남은 적막은 산전수전 다 겪은 청년에게도 큰 시련이었다.

변호사를 찾아 의논도 해보고 매제를 찾아가 다그쳐도 봤지만

이미 어긋난 일을 바로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 오점이 된 그날의 일로 인해 다시 정치계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해지자 모든 게 무의미했다.

칩거하며 서예와 글쓰기로 하루하루 버티는 시간이 길어졌다.


시간이 약이라,  억울한 마음도 시간 속에 묻어두며

믿어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있어  오래 걸렸지만  상처는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자신이 꿈꿔왔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청년에게 길이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

다른 샛길로 들어섰으나 원망은 접기로 했다.

포기라고 말할 수도 있는 체념이었지만 청년에게 남은 인생은 그것보다 중요했다.


아직 난  포기할 수 없다.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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