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스무 번째 이야기 – 매일이 기적이다!
아침 6시 수영을 위해선 적어도 새벽 5시 전후에 기상을 해야 하므로 밤 10시쯤 자야 한다. 아침 6시 수영을 다닌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조삼모사다. 밤이 없는 일상에 7시간 수면을 챙기니, 그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뿐, 그리 시간활용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아침도 수영하고 샤워하고 출근하면 기껏해야 30분 정도 독서가 가능하고, 퇴근한 후에 저녁을 먹고 뭔가 작업을 하려 하면 금방 잘 시간이 된다. 누구보다도 먼저 하루를 마감하는 도시인.
2024년 12월 3일도 그랬다. 동거인은 천안에 있었고, 난 10시에 잤다. 그리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12월 4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영을 갔다. 수영장은 한산했다. 자유 수영 날이라 사람이 없나? 별 이상한 기미를 감지하지 못한 채, 50분을 꽉 채웠다. 나름 보람을 느끼며 샤워할 때 비로소 간밤에 엄청난 일들이 있었음을 알았다. 내가 자는 동안 윤의 비상계엄 선포와 계엄사령관의 포고령 발표가 있었고,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군인들과 국민 사이 충돌이 있었으며, 국회에서 계엄 해제 협의안이 가결된 후, 윤이 계엄 해제를 공식 선언하는 일련의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샤워하고 나와 핸드폰을 켜보니 100개 넘는 문자가 와 있었다. 밤사이에 여러 카톡방엔 불이 나 있었고, 지인 다수의 카톡 문자가 ‘1’이 지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모르고 숙면한 사람들만 수영장에 왔나 보다. 너무도 현실감 없는 일이 타올랐다 사그라졌다는 걸 까맣게 몰랐다는 게,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그 엄청난 일들이 다 일어났을 수 있었을까? 평소처럼 잠든 7시간 안에 역사적인 사건이 태풍처럼 휘몰아치다 커다란 생채기를 내고 사라져 버렸다니. 지인들을 만날수록 사건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계엄 선포 후로 모두 불안과 두려움에 마음을 졸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한다. 누구는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한밤중에 국회까지 달려갔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오롯이 잠만 잤다는 게, 뭔가 역사 밖으로 비켜나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반복되는 뉴스를 통해 계엄 상황이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무사히 해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직접 체험한 사람들과 달리 긴장되진 않았다. 그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늘 하던 수영인데, 12월 4일 새벽 수영은 특별해졌다. 계엄도 모르고 간 수영 이어서라기보다, 어쩌면 마지막 수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매일 수영한다는 게 참으로 기적이었구나, 새벽잠을 딛고 갈까 말까 망설이는 게 얼마나 하잘것없는 고민이었는지, 새삼 일상이 켜켜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쥐고 있는 것엔 별 가치를 매기지 않는 습성 때문에 현재 이 순간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졌는데. 계엄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 나라가 계엄 상태였다면 수영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마저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되새김질했다.
별일 없이 산다는 게 참으로 귀하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서 벗어나 있고, 개인이 감내할 큰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 숱한 기적이 더해져야 ‘별일 없이’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심심하다’와 같은 권태 섞인 감정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 나의 생존이 담보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며칠 전, 가벼운 안부를 물으려 지인에게 전화했는데, 연락이 뜸했던 계절 사이에 암이 발견되어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느라 고생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운동을 꽤 좋아하던 지인이었는데, 이젠 산책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목소리가 씩씩하고 밝았는데도, 애잔함과 씁쓸함이 훅 치고 올라와 코끝이 시큰해졌다. 정말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제 수영은 나에겐 ‘별일’이 되었다. 지금처럼 ‘별일 없이’ 살 수 있어서 할 수 있는 ‘별일’. 계엄이 해제되고 나라가 큰 위기를 넘겨 내일도 할 수 있는 ‘별일’. 수영할 수 있을 만큼의 건강과 체력을 가지고 있어 가능한 ‘별일’
비록 중요한 역사적 사건 등 뒤에서 잠만 잔 꼴이 되었지만, 또다시 피어오를 촛불집회라도 부지런히 참여하기 위해, 나의 ‘별일’인 수영으로 체력을 비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