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열아홉 번째 이야기 – 무서운 습관의 힘
새벽에 일어나니, 첫눈이 오지게 내렸다. 내렸다가 아니라 내리고 있었다. 반가웠지만 수영장 갈 생각에 아득해졌다. 어쩐담. 수요일은 개인 레슨이라 빠질 수도 없고,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 여느 연말 카드 못지않게 펼쳐진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탄복해도 모자랄 시간에, 수영복 가방을 들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냥 가자. 습관 되어 일찍 일어난 게 아깝지 않냐?’ ‘제설작업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텐데, 운전해도 괜찮을까?’ 시계추처럼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폭설을 뚫고 가서 하는 수영은 더 맛날 것 같은, 뿌듯해서 더 신날 것 같은, 수영 후 밟는 눈은 더 푹신할 것 같은 상상의 이미지가 휘몰아쳐 차에 시동을 걸고 말았다.
차를 끌고 나간 세상은 집에서 내다보던 것보다 더 하얗고 더 위험했다. 혹여 차가 미끄러질까 속도를 늦추는데도 긴장이 됐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한껏 낭만적인 추억을 끄집어내면서 누구보다 일찍 하얀 세상을 보게 된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몇 년 전 2월 삿포로, 눈 속에서 노천 온천을 즐기던 기억이 와이퍼 리듬과 더불어 몽글몽글 떠올랐다. 뜨거운 물속에서 흰 눈을 맞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던 그때,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 생각났다. 흰 눈은 강력하다. 모든 풍경과 서사와 추억을 보다 강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 나오길 잘했어. 눈 내리는 모습을 통창으로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뽀드득뽀드득 발자국 내며 눈 밟고 가서 수영하고, 발그래진 얼굴을 찬 바람으로 식히며 하얀 세상으로 복귀하는 것도 충분히 행복할 거야.’
폭설이 내린 자유 수영 일인데도 이미 몇몇 사람들이 레인을 돌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역시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 너무도 많다. 전투복처럼 수영복, 수모, 수경, 귀마개까지 꼼꼼하게 장착하고 입수를 하려던 찰나, 강사님이 눈에 갇혀 못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레슨이니 빠질 수 없다는 고지식함에서 밀어붙인 출석이 무색해졌다. 그래도 더 이상 고민은 없었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무사히 풀 안에 도착했으니. 50분을 발로 밟듯 꽉꽉 채워 수영했다. 가능했던 무수한 변명을 팽개치고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루틴을 지키고 있다는 뿌듯함에 팔과 다리가 더 여유로워지는 착각마저 일었다.
수영을 마친 후 눈을 밟으며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기대만큼이나 행복했다. 터지기 직전 풍선처럼 부풀었다. 해도 뜨지 않은 아침, 제 세상이라도 되는 듯 함박눈이 정신없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침입을 엿보는 게 좋았다. 아직 많은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들이 만들어놓은 하얀 세상을 한껏 누리는 은밀함이 좋았다. 매일 아침, 일찍 수영하는 습관을 갖게 된 이후로는 계절과 날씨로 변하는 세상 풍경을 보다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새벽이란 시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차이를 맑은 날씨, 흐린 날씨, 비나 눈이 오는 날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했다. 마치 나와 계절과 날씨만이 마주 보고 있는 시간처럼.
비교적 루틴을 잘 완수하는 성실함이 탑재되어 있지만, 여전히 일어나기 전 혹은 운동 오기 전 망설이는 때가 있다. 그럴듯한 변명이 들러붙을 때. 오늘처럼 폭설이 내려 운전이 위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들어갈 때. 그리고 그런 망설임을 뚫고 운동을 완수하면 여지없이 자신이 기특해진다. 수영한 지 7년 된 수친도 똑같다 한다. 이 유혹은 마침표 없이 수시로 들러붙나 보다.
오늘도 레슨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리에 가까운 책임감 말고는 그 누구도 다그치지 않았는데, 무서운 습관의 힘으로 5시 언저리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움직임으로 수영장을 갔다. 누구도 습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체크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데도, 평가자는 유일하게 내 자신인데도 그런 루틴을 지켜내려 노력하는 게 의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나’라는 평가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모든 악천후를 뚫고 습관대로 임무를 완수한 ‘나’를 오늘은 특별히 칭찬해주련다. 습관이 인생이 된다는 믿음을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