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열여덟 번째 이야기–‘평범함’은 가장 이루기 힘든 ‘비범함'
같은 수영장을 오래 다니면 알려고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러 집 가족 사항을 알게 된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접근성이 쉬운 운동이기 때문인지 연인, 부부도 많고 어린 자녀에서부터 나이 드신 부모님까지 함께하는 가족도 꽤 많다. 우리 반 1번 주자가 알고 보면 마스터반 누구의 남편이고, 사우나에서 수다 떨던 분이 알고 보면 내 앞 순번의 어머니고, 뭐 그런 식이다. 누구는 애가 셋이라 등교 전 밥해주러 강습 마치기 십 분 전에 나가고, 누구는 남편과 두 아이 온 가족이 다녀 등록할 때마다 출혈이 심하다 하고, 누구는 아홉 살 아들이 수력 4년 차로 본인보다 접영을 더 잘한다 하고, 샤워하면서도 자녀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가 쏟아지기에 저절로 호구조사가 이루어진다.
매일 새벽, 이렇게 다양한 가족군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수영장을 간다. 팔짱 끼고 걷는 부부, 부인 수영용품까지 들어주는 남편, 친구처럼 수다 떠는 모녀, 좌청룡 우백호처럼 엄마 아빠를 양쪽에 끼고 걷는 아들 등등. 참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나에겐 참으로 특별해 보이는 모습이다. 적어도 부모가 살아있고 함께하는 배우자와 자녀가 있고 수영할 수 있을 정도의 정서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연출할 수 있는 모습이기에. 물론 모든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서면 크고 작은 고민 덩어리들이 눈에 띌 수도 있겠지만.
철없을 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가족을 일구는 것은 극히 평범하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라 여겼다. 소망하거나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는 소소하고 자연스러운 일. 일단 인생이란 배만 타면 파도에 출렁이다 도착하는 곳.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나서야 이것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망과 운과 노력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일생일대의 난제였음을. 흔하게 본 대가족 사진은 숱한 허들을 넘은 사람만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부모의 생존, 책임감 있는 배우자, 원만한 부부 사이, 건강한 아이들,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력 등등이 다 해결된 순정의 화합 유기물 같은 것임을.
하여, 가족과 함께 수영 다니는 건 간단히 디폴트로 치부할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이다. 함께 일어나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걷는 일,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샤워하며 수다 떠는 일, 서로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훈수 두는 일 등이 가벼운 일상이 아닌, 행복의 결정체인 것이다. 행복이라는 게 얼마나 소소하고 얼마나 평범한 데에서 오는 것인지 알아버린 후에는 그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지난날을 되새김질해 보아도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은 시시콜콜한 것도 사무치게 그립다.
늘 ‘지금의 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젠가 올 나’를 기다리며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반성도 인다. 깨달음은 항상 한발 늦게 도착한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야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식이다. 지금은 버벅대며 수영하는 비루한 몸뚱이를 타박하지만, 또 언젠가 수영하기 힘겨운 시기가 오면, 지금이 더없이 그리워질 것이다. 곰방대를 문 호랑이 모습으로, ‘옛날 옛적엔 나도 새벽마다 한창 수영했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그러니, 매일 새벽 가족과 함께 수영장에 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목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즐겁게 팔과 다리를 저어야겠다. 그리고 내 가족과 함께 수영은 못할지라도 울긋불긋한 단풍을 즐기러 뒷산이라도 가야겠다. 여느 평범한 가족처럼 김밥과 커피가 든 배낭을 둘러메고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행복을 만끽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