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스물두번째 이야기 – 그만 보고, 직접 해라!
요즘은 인스타를 보나 유튜브를 보나 수영 동영상이 많아도 너무 많다. 내가 미처 수영에 빠져들기도 전에 몇 번 검색했다는 걸 빌미로, 이들은 날 무자비하게 수영 어장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나 역시 별 반항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것저것 찾아보고 구독을 누르다 보니, 어느덧 온통 수영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영상. 하나같이 우러러보이는 돌고래 사람들과 합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같은 영상을 보고 보고 또 봤다. 그렇게 하염없이 영상을 보노라면 나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정작 같은 조건으로 내 몸을 밀어 넣으면, 난 그제와 어제와도 다를 바 없는 민망한 영법을 되새김질하고 만다. 그토록 많은 랜선 선생님 지도를 받고, 그토록 많은 프로의 몸짓을 눈에 담았는데도, 이를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영상은 창세기 족보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요셉을 낳는 것처럼, 힐*수영은 신**를 낳고 신**는 러**스위머를 낳고 러**스위머는 *파*파를 낳는 식으로 점점 번져갔다. 자못 이렇게 수영 인구가 많았나, 이렇게 수영 관련 유튜버들이 많았나 신기해하면서, 그들만의 변별적인 지도 방법을 살피며 꾸준히 볼만한 것을 솎아냈다. 아무리 그래도 사이트는 바퀴벌레처럼 늘어난다. 놀라운 속도로. 이미 숏츠까지 점령당해, 새벽 수영을 위해 일찍 누워도 비엔나소시지처럼 엮어져 나오는 영상을 보느라 뒤늦게 잠이 들곤 한다. 차라리 일찍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한 번 더 직접 저어보는 게 나을 텐데도.
도움이나 위안을 얻고 도전 의식까지 갖게 한다는 정당성을 쥐고, 시청하는 영상들은 수영에서 멈추지 않았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새벽형 사람들의 시간 사용을 염탐하기도 하고, ‘갓생 브이로그’로 자신 일상의 행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상까지 목도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루틴을 내세우며 새벽 운동, 독서, 기록 등을 강조하고 하루를 얼마나 짜임새 있게 마무리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놀랍게도, 열심히 잘 살기 위해서 중독되기 쉬운 동영상 시청과 결별하고 좀 더 급하고 중요한, 생산성 있는 일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내세운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시청하며 각오를 다지는 나 자신을 떨어뜨려 놓고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유 수영을 가서 수친들과 영상 정보를 나누거나 좀 더 알찬 하루하루를 갖겠다는 핑계로 남의 알찬 하루를 탐닉하는 시간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갑진년 푸른 용의 해를 보내버리고,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았다. 새해 벽두부터 바다에서 일출을 보며 작년과 달라질 올해는 무엇이 있을까를 곱씹다가 좀 더 직접적인 체험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처음 가본 50m 수영장을 왕복했을 때나, 자유형 10바퀴를 돌았을 때의 쾌감은 그 어떤 영상 시청과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
간접 체험으로 안일하고 평이한, 남의 발전에 손뼉 치면서 나의 발전에는 냉대한, 그런 일상과 절연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 것이다. 요즘 수많은 사람이 핸드폰이나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얼마나 우울해하는가? 모두 문제점을 알아채고 지적해대지만, 이 문제점을 극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오히려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또다시 핸드폰이나 태블릿을 드는, 무한반복에 잠식당하기 일쑤다.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못하더라도 영상을 보는 시간에 직접 수영장으로 달려가 두어 번 더 저어봐야겠다. 일단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을 드는 결단이, 내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지, 타인의 결단을 수백 번 들여다본다고 바뀔 일은 아니니 말이다. 하여, 내친김에 1월 1일부터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열린책들) 1,500페이지를 다시 읽으려고 펼쳤다. 오래간만에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의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다. 마치 의구심을 품고 50m를 헤엄쳐 갔을 때 터졌던 도파민처럼, 커다란 희열이 풍요로움과 지혜 상징인 푸른 뱀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