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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수영 에세이 스물세 번째 이야기 – 수영은 불면증 특효약!

by 소문난 이작가


수영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불면증’ 때문이었다. 침대에 눕기 시작하여 기상하기 전에 습관적으로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는데, 화장실을 갔다 오면 다시 잠을 이루는데 세 시간에서 네 시간이 족히 걸렸다. 양을 백 마리 이백 마리 세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무리해서 잠을 부르는 요가를 하거나 반신욕을 하기도 했다. 가상한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소용이 없었다. 새벽 두 시에도, 새벽 세 시에도 머리는 멍한데, 눈은 말똥말똥했다. 대상 없이 야속하고 속상했다. 새벽 네다섯 시쯤 되면 겨우겨우 잠이 드는데, 두세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했다. 물론 피곤이 누적되어 간혹 푹 자는 기적이 일어나곤 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삶의 질이 훅 떨어졌다. 나이 탓일 수도 있고 예민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체력 탓일 수도 있지만, 원인은 차치하고,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오는 시간을 견디는 건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매번 괴로웠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는 심경으로 묘책을 찾으러 사방팔방을 뒤졌다.



나의 고민을 들은 직장 동료는 단번에 수영을 권했다. 동료는 수영하면 피곤해서 잠이 잘 올 거라는 지극히 단순한 원리를 내세웠다. 당시 동료는 4년 차 수영인이었고, 나 또한 오래전에 1년 가까이 수영한 경험이 있었기에, 솔깃했다. 하지만 걸리는 게 많았다. 새벽 수영을 다닌다면 내가 매일 5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을 버틸 수 있을까, 저녁 수영을 다닌다면 퇴근 이후에 다른 일에 발목이 잡히는 게 아닐까, 헬스나 요가처럼 덜 번거로운 운동도 있는데 굳이 매번 샤워하고 수영복을 갖춰 입어야 하는 운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벌거벗은 모습을 동료에게 보여주는 게 겸연쩍진 않을까, 고민은 수개월 반복되었다.



같은 고민, 같은 질문을 반복하자, 동료는 다닐 결심을 해도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간다는 비보를 날렸다. 수영장은 별로 없고, 수영하려는 인구는 많아, 일단 자리를 꿰차면 여간해서 나가지 않는다고. 계산에도 없던 난관에 봉착하니, 괜히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수영장에 자리나 있나 궁금하여 전화로 문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데스크에선 모든 시간대가 매진이고, 아침 6시 수영에 한 자리가 났다고, 하지만 이것도 빨리 등록하지 않으면 금방 매진될 거라고. 오랜 시간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다급해져, 당장 가서 등록할 테니, 자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럴 순 없다고 직접 오셔서 등록하는 신규회원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무리해서 차를 몰았다. 수영장 주차장도 찾지 못해 대충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 달려갔다. 그리고 다행히 등록했다. 흔치 않은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흥분되고 벅차올랐다. 수영을 하기도 전에 수영장을 등록했다는 사실 하나로, 광클릭에 성공하여 콘서트 티켓을 얻은 십대 소녀처럼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벽 수영은 기대보다 효과가 좋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영하고 출근하고 퇴근하면 저녁 9시부터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하였다. 10시나 11시에 자도 기절할 때가 대부분이고,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와도, 쉽게 다시 잠이 이어졌다. 수면통치약을 먹은 듯 신기했다. 그래도 처음엔 새로운 미라클 모닝 루틴에 적응하느라 몸이 고단해서 그런 거라 여겼다. 일시적 현상에 탄복하여, 언제 도질지 모르는 불면증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순 없었다. 그렇지만 경이롭게도 불면증은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도 잘 자고, 염려보다 잘 일어났다. 출석률도 훌륭했다. 동료도 권하긴 했어도 이렇게 열심히 다닐 줄은 몰랐다며 칭찬했다. 칭찬이 날 고래처럼 춤추게 했다. 개인 레슨까지 등록하고, 점점 수영장의 고인 물이 되어갔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 불면으로 괴로운 숱한 날을 보내면서도 정기적으로 운동한다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다. 직장도 다녀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운동까지 한다는 건 사치이자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 멍청하게 불면증으로 새벽 시간을 의미 없이 날리고, 온 촉수를 긁어모아 낮을 버티면서 버리는 시간은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이젠 비록 수영으로 혹은 헬스로 일정 시간을 사용해도 전혀 아깝지 않다. 그로 인해 잠을 얻으니, 머리도 일상도 개운해졌다. 그래서 간혹 나와 비슷한 경험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운동을 권한다. 동료에게 전도받아 수영을 시작한 것같이, 나도 누군가를 전도하는 운동인이 된 것이다. 직접 체험해서 더 열렬해진 광신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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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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