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 칭찬은 누구나 춤추게 한다!
‘수영’이라는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니, 자괴감이 시도 때도 없이 출렁댔다. 나름 성찰한답시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깜빡이도 없이 들어오는 비교와 자책과 실망을 죄다 무시하긴 쉽지 않다. 높은 힐이나 착시 의상에 기댈 수 없는 수영복 착장에서부터 번번이 속상해진다. 왜 이리 키가 작지? 팔다리는 또 왜 이리 짧아? 샤워 타올로 팔다리를 문지르며 떨쳐지지 않는 실망감을 삭히길 수십 번, 수백 번, 무의미한 체형 타박 질을 해댄다. 물속에 들어가면 쉽게 지치는 체력으로 비교와 질투가 난무해 대고, 쓸데없이 늙음에 대한 회한이 피어오르다, 급기야 좀 더 젊을 때 수영하지 않은 날 자책하기도 한다. 빈도가 줄긴 했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피곤하고 한심한 감정 소모가 건강하고 행복한 운동 생활을 갉아먹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상급반으로 올라가지 못한 중급반 수친들이 ‘우리가 뭐 수영 선수 할 것도 아니고, 생활체육인데, 매일 운동하는 데 의미를 두면 되지, 안 그래?’ 하며 토닥인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노력 대비 실력이 늘지 않는 현실을 직면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더욱이 개인레슨을 시작하면서 4가지 영법 중 단 하나도 건질만한 게 없다는 진단은 여지없이 날 더 좌절시켰다.
그런 내가 그나마 비장의 무기로 달랑 하나 가지고 있는 건. ‘스타트’다. 스타트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초급반일 땐, 왼쪽 발만 무릎 꿇고 오른쪽 발을 편 상태에서 스타트를 시작했다. 당시 강사님은 물속에 들어갈 때,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는 말을 염불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그 쉬운 지시를 지키는 이는 많지 않았다. 두려움 때문인지 고개를 숙이지 않아 그대로 배치기를 해댔다. 배 전체가 수면에 닿아 철퍼덕철퍼덕 소리가 이어졌다. 답답한 강사님은 왜 자꾸 고개를 드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헛수고. 출발, 슈웅, 철퍼덕, 출발, 슈웅, 철퍼덕.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난 처음부터 단 한 번도 배치기를 한 적이 없다. 얼음낚시를 위해 뚫어놓은 구멍에 들어가듯 전혀 물보라를 일으키지 않고 들어갔다. 사람들도 신기해하고, 강사도 신기해하긴 마찬가지. 그리곤 중급반에 올라와, 선 자세에 양발을 펴 스타트를 할 때도, 오른발을 내밀고 왼발을 뒤에 두고 할 때도, 족제비처럼 날았다. 중급반 수친들도 신기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스타트를 잘해요?’ ‘몰라요. 저도 놀랐어요.’ 그렇다. 나도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했는데 됐다. 되어버렸다. 물론 다른 영법들도 나름 시키는 대로 한다곤 했지만, 전혀 ‘스타트’ 같지 않았다.
스타트를 하는 날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이 날아들었다. 어떤 강사님은 좀 더 어려운 자세로 단계를 높여주기도 했고, 어떤 강사님은 중급반에서 스타트를 제일 잘한다고, 수영 영법 중에 스타트가 제일 낫다고 치켜세워주기도 했다. 참 별거 아닌 칭찬인데도 초등학생처럼 우쭐해졌다. 수영이 만만하게 느껴지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스타트하는 금요일이 되면 새벽부터 좋은 수경을 챙기며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수영장을 향했다.
양손을 뻗어 귀 뒤에 붙이고, 무릎을 살짝 구부려준 뒤, 오른쪽 발가락에 힘을 주면서 양발을 떼고 날면서 장딴지에 힘주면, 여지없이 두 다리가 붙으며 물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그리곤 물속에서 돌핀킥을 차며 물 위로 다시 떠 오를 때쯤 되면 이미 깃발을 지나간 후였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강사님이 지시한 영법을 돌핀킥에 이어 바로 수행할 때다. 스타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물속에서 직립보행한 후 다시 수영을 이어가거나, 배치기로 수경이 벗겨진 불상사를 수습한 후 다시 팔을 젓는 일 없이, 스타트에서 돌핀킥으로 돌핀킥에서 바로 수영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완수했다는 뿌듯함. 그 뿌듯함은 매번 날 흥분시켰다.
그런 칭찬과 흥분이 누적될 때마다 내가 이렇게 얄팍하구나를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칭찬이 좋은 거라는 게 새삼스러워졌다. 수많은 구멍 중에 유일하게 건진 쓸모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걸 실감하며. 그리곤 새로운 자책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왜 그리 칭찬에 인색했던 거지. 현실을 직면시켜 줄 필요가 있다며 남의 상처를 후벼 파는 짓거리를 왜 하고 다닌 거지.
하여, 새해에는 잔 다르크의 창 같은 날카로움보다 부처님 귓불 같은 부드러움으로 살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누구나 춤출 수 있게 만드는 칭찬을 아낌없이 뿌리면서. 수영 영법도 스타트만큼 잘할 수 있는 날을 기약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