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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 너마저

수영 에세이 스물네 번째 이야기 – 얕잡아 볼 게 없다!

by 소문난 이작가 Jan 21. 2025

 

   네 가지 영법을 다 배우고 나니, 배영이 가장 만만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천정을 보며 누워서 팔을 저으니, 일단 물속에 빠져 죽을 듯 가쁘게 호흡하는 수고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고강도 수업이 끝나갈 때쯤, 하고 싶은 영법으로 마지막 완주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면, 줄곧 배영을 택했다. 혼자 자유 수영을 할 때도, 운동은 좀 더 해야 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면 배영으로 시간을 메꿨다. 특히, 핀데이에 일찍 수영장에 들어서면 오리발을 신고 배영으로 시작점에 가는 루틴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행복이었다. 샤워를 일찍 마쳐 비어있는 라인에 누워 오리발과 함께 다리를 젓노라면 아주 잠시 무릉도원에 온 착각까지 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편안함을 선사했던 배영의 배신이 시작된 건, 개인레슨으로 자유형이 얼추 완성된 후부터였다. 강사님이 다음 시간부터 배영을 시작할 테니 오리발도 가져오라 했다. 배영을 배우는데 오리발까지 끼고 한다니, 있지도 않았던 시름까지 덜어지면서, 레슨이 아닌 물놀이가 될 것 같은 기대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터질 것 같던 기대가 꺼지는 데는 5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배영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 그동안 내가 했던 배영은 뭐였나? 천정을 보면서 팔다리를 열심히 젓다 보면 분명 반대편 벽에 닿았는데… 동네 개울에서 족보도 없는 영법을 배영이랍시고 열심히 해, 들러붙은 습관을 고치는데 배의 시간이 든다는 계산서를 받았다. 동작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쓸만한 게 없었고, 하나를 고치려면 다른 하나가 어그러지는 기이한 모습만 이어졌다. 롤링을 제대로 하면 시선이 고정되지 않거나, 팔을 제대로 구부려 물을 밀면 롤링이 과도해지는 형국. 위쪽을 펴면 아래쪽이, 오른쪽을 펴면 왼쪽이, 어떻게 해도 계속 찌그러졌다. 강사님이 화를 안 내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혼자 할 때는 배영이 이리 섬세한 영법인 줄 몰랐다. 하긴 그래서 얕잡아 볼 수 있었나 보다. 무엇이든 얕잡아 본다는 건, 그걸 잘 모를 때 가능한 일이니. 세상에 얕잡아 볼만한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얕잡아 보는 순간, 경계를 늦추게 되고 사고가 터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통찰과 실천은 별개로 논다. 생각과 행동은 참으로 친해지기 힘들다. 

 


   강사님은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듯 다양한 드릴을 사용했다. 드릴을 수행할 때마다 오래 묵은 각질이 일어나듯 고착된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리고 어깨통증으로 고생했던 것이 비단 자유형 자세 때문만이 아니라, 배영 자세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일었다. 물 잡는 과정에서 롤링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어깨 가동범위보다 더 뒤쪽으로 돌려 물을 잡으니 어깨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코어 근육은 약해 발차기가 되지 않고 청둥오리처럼 물속에 잠긴 채 물속에서만 버둥거리는 것도 문제였다. 자유형은 다운 킥이고 배영은 업 킥이라는데, 팔 저으며 물 위에 떠 있는 것도 힘든데, 발까지 수면으로 업 킥을 하라니 죽을 맛이었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흐르던 배영이 엔진을 풀가동해야 움직이는 수동 변속기 다마스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마스를 운용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자유 수영 시간도 배영 드릴 반복 연습으로 채우고 있다. 한계령처럼 구불구불, 이 고개를 언제쯤 넘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배영이 자유형만큼이나 오래 걸릴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상급반 수친이 위로를 건넨다. ‘배영이 그래. 배영이 어려워. 하면 할수록 어려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의례적인 말이었는데,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 다 아는구나. 배영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구나. 내가 잘 몰라서 쉽게 봤구나.’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경계할 필요는 없지만, 함부로 얕잡아봐선 안 된다는 흔한 통찰이 배영 연습과 함께 새록새록하다. 더불어 수영하는 내내 절대 오만해질 수 없겠다는 각성도 일고. 모든 영법을 이탈리아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체화시켜 가야겠다는 다짐도 들고. 그래서 요즘은 코어 근육을 기를 요량으로 고등학교 체력단련 때나 했던 윗몸일으키기를 소환해 왔다. 배영이 교정되면 복근이 생길 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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