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 – 누구든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관계가 늘어나면서 호칭을 붙이는 게 매번 어렵다. 때론 호칭을 요리조리 피해 대화를 이어가지만, 부지불식간에 호칭을 붙여야만 문맥이 매끄러워지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만만하게 선택하는 호칭이 ‘선생님’인데, 수영장에서 친분을 쌓은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면 어색해하고 부담스러워한다. ‘내가 왜 자기 선생님이야? 언니라고 불러.’ 수친들은 대개 ‘언니’, ‘오빠’ 혹은 이름을 부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언니, 오빠’나 이름을 부를 만큼 개인적 친분이 두텁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쉽게 입에 붙지 않는다. 물론, 매일 새벽마다 함께 수영하니 가족이나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사이이긴 한데, 개인사도 전혀 모르고 고민을 나누거나 경조사를 함께 하는 사이가 아니니, 직장동료보다 더 거리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호칭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노력하거나, 무대포로 ‘선생님’을 붙이는 사이 어디쯤에서 어정쩡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여전히 ‘선생님’은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거리감을 숨기는 묘책의 호칭으로 생각되기에.
그런데 이상한 건, 정작 나이 많은 수친들은 ‘선생님’ 호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반해, 그들 나이에 반을 접어야 할 만큼 젊은 강사들과는 ‘선생님’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개념에서 파생한 호칭으로 이해되기 때문인데. 특히 내가 노력해도 되지 않는 드릴이나 영법을 돌고래처럼 선보일 때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더욱 단단하게 들러붙는다. 부력을 조절하는 부레를 가진 사람들처럼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저절로 뿜어져 나오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한 능력에 대한 부러움, 그 부러움이 ‘선생님’이란 호칭을 조금도 아깝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수영으로 엮이지 않고, 다른 사회의 장에서 만났으면 절대 형성되지 않았을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몇 번의 영법 본보기만으로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 건, 같은 반끼리 처음으로 회식한 날이었다. 수영 강사님을 가운데 앉히고 같이 강습받는 회원들이 주욱 둘러앉아 있었는데, 마치 여느 회사 회식처럼 팀장님을 위시해서 사원들이 모여있는 모습이었다. 수영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수모와 수경을 쓰지 않아 머리 스타일과 얼굴이 드러나니, 매일 보는 사람들인데도 생경했다. 무엇보다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수영 강사님은 수영장 안에서보다 더 앳되어 보였고, 숫자로도 제일 어렸다. 그럼에도 함대를 이끄는 제독처럼 모두를 지휘하고, 모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니, 수영장 밖에선 낯설게 느껴졌다. 질문은 끝이 없었다. 회원들은 봇물 터진 듯, 푸념과 의문과 호기심을 전리품처럼 늘어놓았다. 강사님은 ‘선생님’ 답게 푸념에는 위로를, 의문과 호기심에는 이해 가능한 답을 제시하며 모든 대화를 챙겼다.
수영 ‘선생님’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1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도 할아버지와 바다 수영을 7km씩 했다고 한다. 각종 대회에 나가 두각을 나타내고, 대학 전공도 수영, 졸업 이후에도 줄곧 수영을 지도했다 하니, 수영을 빼고는 논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수상구조 자격증은 물론이고 프리다이빙 자격증에 서핑도 즐기니, 물과 함께 한 시간이 수만 시간은 넘을 듯하다. 길고 긴 물속 인생을 듣다 보니, 강습에서 보여주는 본보기들이 꽤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능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이 단순히 강습비를 내고, 강습받는 위치에서 자연스럽게 부르는 호칭이 아닌, 그의 삶의 궤적에 대한 존중으로 마땅한 호칭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스승의 개념으로 ‘선생님’이란 호칭을 얻기 위해선,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공들인 시간이 있음을 확인하는 회식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분야에 상관없이, 갈고닦는데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에 비례해서 누구든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어떤 이는 40년의 노하우로 ‘파김치 담기’ 스승이 될 수 있고, 어떤 이는 10년 연구로 ‘로봇 조립’ 스승이 될 수 있다.
하여, 매달 수영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귀한 월급 일부를 떼어 아낌없이 바치고 있다. 여전히 스승의 시범에 감탄하면서. 하지만 이젠 예전처럼 그 시범과 비슷해지지 않은 내 모습에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 수영 천재가 아닌 이상, 수십 년 물속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어찌 단번에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