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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고 돌아도 안 되는 플립턴

수영 에세이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 그래, 그럴 수 있지!

by 소문난 이작가

며칠 전, 만난 친구가 덥석 물었다. ‘아직도 수영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래 하네. 이제 제법 잘하겠네.’ 못 해도 너무 못 한다고 징징대니, ‘에이, 욕심은. 몇 년째 하는데 잘하겠지.’ ‘그렇게 말하는 건, 날 두 번 죽이는 거야!’ 뼈 있는 농으로 받아치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진실이 전해졌는지 친구들은 더 따져 묻지 않았다. 그렇다. 들이는 공에 비하면 실력이 정말 더디 는다. 더듬더듬 자유형 할 때를 생각해 보라면 벽을 치고 테이프 되감기 하듯 나아가는 모습에 만족해야 할 터지만, 그렇게 털 수만은 없는 게, 친구 말처럼 수력이 제법 쌓였다. 더구나 요즘은 수력이 민망해질 정도로 플립턴에 꽉 막혀있다.



샤워를 일찍 마치고 체조 전에 들어가 20여 분 남짓 여유시간이 있으면, 벽에 붙어 플립턴 연습을 반복했다. 자유형으로 왕복하는 수친들이 웃으며 ‘또 플립턴 해요?’ 인사성 멘트를 날리고 길까지 터주지만, 턴 한 후 처박히길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물속 먹잇감을 잡는 청둥오리처럼 냅다 물구나무서기만 해댄다. 어떻게 사람들은 앞 구르기를 하는 듯하다, 몸을 주욱 펴고 우주선처럼 나아가는 걸까? 무수하게 플립턴을 보고 있자면 나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루한 몸뚱이는 앞 구르기에서 마침표를 찍고 갈 길을 잃는다. 코로 물을 잔뜩 먹고 매운 코를 킁킁거리며 괴로워하는 것도 따박따박 잊지 않고.



이론은 빠삭하다. 자유형 하며 벽에 가까이 갔을 때, 몸을 최대한 움츠려 360도 돈다. 몸을 살짝 틀어준다. 양손을 잡고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나아간다. 하지만 이론을 적용할 때 장벽이 많다. 벽에 가까이 갔을 때가 어느 정도 가까이인지 감이 서지 않고, 허벅지와 가슴이 가까워야 360도를 돌 수 있다는데 어느 정도로 얼마나 오래 움츠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몸을 살짝 틀어주기도 전에 직립보행을 하고 콜록대기 일쑤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왜 저렇게 간단한 걸 못 할까 이해가 안 되겠지만, 정작 제일 답답한 건 나다.



돌고 돌고 돌아도 되지 않는 플립턴을 무한 반복하면서, 그동안 내가 가르쳤던 숱한 제자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이렇게 쉬운 걸 왜 반복해서 알려줘도 못 알아듣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왜 딴생각을 하느냐고, 집중하면 다 알 수 있다고 보채고 어르며 짙은 한숨을 뱉곤 했는데. 지금 곱씹어보면, 그들 중 어떤 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본인도 답답하여 괴로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수영 열등아가 되어보니 절감되는 것이다.



내 입장과 그들의 상태가 포개어지니 끝없는 반성이 인다. 왜 그들의 위치로 내려가 인내심과 친절로 더디 가는 그들을 잡아주지 못했을까, 스스로 터득할 때까지 걸음을 늦춰주지 않았을까, 미지의 세계에서 헤매던 그들을 너무 닦달한 건 아니었을까. 물속에서 계속 버둥대다 보면 아주 조금씩 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오늘 아침 수영에서도 플립턴 연습을 했다. 여전히 잘되지 않는다. 조금 나아졌다면 그래도 얼추 360도 돌아야 할 거리를 짐작게 되었고, 간혹 돌아서 어정쩡하게 나아가기도 한다는 것. 내가 잡을 수 있는 동아줄은 그저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기약할 수 없는 믿음뿐이다. 나에 대한 배려와 신뢰로 견디는 게, 성공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남들처럼 플립턴을 단번에 돌았다면, 내가 그나마 자신 있어하는 스타트처럼 이유도 모른 채 금방 감을 잡았다면, 그동안 내 앞을 훑고 간 제자들을 떠올려 불러 세울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앞으로도 플립턴이 잘 될 때까지 수차례 좌절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다시금 헤아리게 되리라. 그러면 앞으로 만날 제자들에게는 더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웅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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