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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도 사랑하기로 했어, 내 팔다리

수영 에세이 30편 – 가장 고마운 건, 내 몸!

by 소문난 이작가

‘팔 동작에 집중하니까, 발이 벌어지네요.’ ‘두 번 무호흡, 한 번 호흡으로 진행하세요.’ ‘갈 때는 자유형 발차기에 평영 팔 동작, 올 때는 접영 발차기에 평영 팔 동작할게요.’ 출발선에 돌아오자마자 새로운 지시가 내려진다. 모두 귀에 떨어진 지적과 지시를 수행하려 안간힘을 쓴다. 아무리 힘들어도 군소리가 없다. 얼굴이 벌게지고 숨차하지만, 조용하고 묵묵하다. 그도 그럴 것이 메트로놈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벅찬데, 집중해야 할 부분이 수시로 바뀌니 여유를 부릴 재간이 없다. 하여, 잡생각은 그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한다.



분명, 수영장 오기 전 짧은 동선 안에서도, 샤워하는 동안에도, 어제 일을 곱씹고 오늘 할 일을 염려하며 별별 생각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수영복을 입고 물속에 들어가면 숱한 생각들이 녹아버리는지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마치 수도승복을 입고 산속 동굴에 들어와 참선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오롯이 ‘지금’에만 존재한다.



물속에선, 그간 별 관심을 두지 않던 팔과 다리, 허리와 골반, 시선과 호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체크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토록 내 몸에 관심을 둔 적이 있던가? 매일 아침, 수영 전과 후 샤워하며 몸의 구석구석과 대면하고, 영법을 구사할 때마다 몸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는 행위, 익숙하지만 낯설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살면서 제일 고마운 게 내 몸인데. 육중한 무게를 지탱하며 수십 년을 걸어 다니느라 애쓴 내 다리,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쉴 새 없이 움직여준 내 팔, 세상을 감각하게 해 준 눈 코 입 피부,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리고 그 고마운 몸이 나의 욕망에 순응해 이젠 물속에서도 부지런히 움직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꼭두새벽부터.



사실, 내 몸에 감사함을 느낀 건 얼마 안 됐다.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를 팔다리가 짧은 체형 탓으로 돌렸기에, 내 팔과 다리는 아무리 열심히 노동해도 타박만 받기 일쑤였다. 샤워실에 맨발로 서노라면 다른 이들과 키 차이와 팔다리 길이가 저절로 비교되었고, 내 눈은 뇌를 거치기도 전에 질투를 뿜어댔다. ‘좋겠다, 길어서.’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 난 친구 병문안을 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은 질투를 받았다. 골반을 다친 친구는 여전히 수영하는지 묻고는 대번 ‘좋겠다, 수영할 수 있어서.’라고 뱉었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할 말이 없었다. 팔다리가 짧아서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데, 좋긴 뭐가 좋겠냐고 상황파악 안 되는 푸념을 늘어놓을 순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순간 진심으로 수영할 수 있는 내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실력이고 뭐고 수영할 수 있다는 게, 짧은 팔다리라도 부지런히 저어가며 잘하려고 노력해 볼 수 있다는 게 새삼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개인레슨 시간은 강사님을 통해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아가게 된다. 코어가 어느 부분에 있고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허벅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손끝과 발끝은 어떤 모양으로 있어야 하는지, 몸의 어느 부분에 힘을 빼야 하는지 등 교정 사항을 들으며 움직임을 관찰하다 보면, 문득문득 내 팔뚝과 허벅지가 이렇게 생겼구나, 생경하게 쳐다보게도 되고, 어떻게 이렇게 작은 손과 발로 세상 풍파를 견뎠을까 대견스러워지기도 한다. 병문안 이후에는 더욱 내 작은 몸들에 후해졌다. 그래서 잘하지도 않던 스트레칭도 한다. 굳은 목과 어깨도 풀어주고, 허리도 펴주면서 ‘고생한다, 고맙다.’고 속삭인다.



요즘은 물속 무념무상 상태가 그저 즐겁다. 세상을 물밖에 던져버리고, 마치 명상하듯 오로지 나의 호흡과 몸에 집중하는 시간. 수시로 파리처럼 바들바들 떠는 발차기와 수평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팔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걸 인지하고 교정하려는 노력에 점수를 준다. 남들에게는 그토록 잘 보이려 노력하고, 책잡힐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검열해 대면서, 왜 나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었을까? 수영으로 내 몸에 집중하고 이해해 가면서 내 몸에 너그러워지면서 나 자신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게도 되었다.



일전에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자유 수영을 위해 샥즈에서 나온 수영용 골전도 MP3를 샀다. 물속에서 더 크게 들리는 노래를 들으며 배영을 하노라면, 참선하러 들어온 동굴이 아니라 무릉도원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반대편 벽에 닿지 않고, 망망대해에 떠서 끝없이 가고 싶다는 욕망도 일고. 물과 나와 음악만 존재하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겉으로 바뀐 건 없다. 여전히 키도 작고 팔다리도 짧고 수영 실력 향상도 더디다. 단지, 내 몸을 타박하기보다 품어주게 되면서 물속 명상이 즐거워졌다는 게 달라졌다면 달라졌을까? 짧은 게 있으니까 긴 게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작은 게 있으니까 큰 게 있는 거 아니겠는가? 모든 건 상대적이고, 단순히 다른 것뿐인 것을. 통념에 휩쓸려 내 몸을 열등하게 취급했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니, 수영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반대편 벽을 향해 짧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는 모습을 수영장 천정에서 내려본다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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