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에세이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 할 수 있을 때, 감사히 해라!
일단 무엇이든 시작하면 결석이 없는 스타일이다. 만약 돈을 지급했다면, 더욱 그러하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제설작업이 되지 않아 길이 미끄러워도, 수영은 간다. 잠을 설쳐 새벽에 잠들어도, 여러 일정으로 밤늦게 귀가해 잠이 부족해도,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무거운 몸을 이고 지고 수영을 간다. 만약 출석률에 비례해 실력이 느는 거라면, 지금쯤 1번 주자에 서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뒤의, 뒤의, 한참 뒤의 뒤.
4일 강습, 1일 레슨, 1일 자유 수영. 이렇게 주 6일을 꼬박꼬박 가면 수영도 일어나자마자 물을 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어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끊임없이 자신을 어르고 달래고 칭찬해 줘야 겨우겨우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다른 운동도 많은데, 굳이 번거로운 수영을 해야 하나? 얼마나 건강해지려고 꼭두새벽부터 수영장을 다니나? 수영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는 건 아닌가? 시도 때도 없이 쓸데없는 질문들이 전투복으로 챙겨 입은 ‘성실’을 공격해 댄다. 그럴 때마다 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 뭉개고 갔다. 수영 에세이를 쓰는 것도, 계속 수영하게 만들려는 속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성실한 듯 보이지만 꾸역꾸역 새벽 수영 생활을 이어갔는데,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터져 열흘째 수영장을 못 가고 있다. 맞다, 이건 엄연히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다. 얼굴에 생긴 기미가 신경 쓰여 피부과에 갔다가, 상담실장의 권유로 패키지를 예약했다. 주말 수영 후, 피부과 치료를 받으면 될 것으로 셈하고 덜컥 비용을 지급했는데, 아뿔싸! 내 셈은 그야말로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첫 치료에서 기미 치료와 더불어 점을 뺀다 했는데, 침대에서 일어났을 땐 누더기처럼 족히 20개 넘는 스티커가 얼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의사는 일주일 동안 스티커(듀오덤)를 붙여야 한다며, 수영은 열흘 후에나 가능하다 했다. 이럴 수가! 분명 상담실장이 삼 사일 이후 수영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분명 상담할 때 수영과 병행해도 되냐고, 수도 없이 질문했는데. 열흘간 수영 금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처방하다니, 망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레이저 치료가 10회 남아있다는 것. 그 흔한 상술에 넘어간 건가?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피부과 치료를 시작한 것이 몹시 후회됐다. 어쩌랴? 감염될 테면 되라지, 호기롭게 스티커를 떼고 수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얼굴에 덕지덕지 방수 스티커를 덧대 핼러윈 분장으로 입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당분간 결석하는 수밖에.
금단 현상은 바로 나타났다. 수영을 가지 않아도 새벽 5시 언저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침대에 누운 채, ‘수친들은 지금쯤 샤워를 하겠구나, 지금쯤 체조를 시작했겠네, 오늘은 핀데이니 더 재밌겠다, 샤워하고 나왔을 시간이네……’ 수영장 스케줄을 읊어댔다. 그러다 알고리즘에 둥둥 떠다니던 수영 유튜브를 클릭하고. 스티커 없이 깔끔한 얼굴로 팔다리를 젓고 있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봤다. 이토록 수영에 집착하리라 예상 못 했는데, 막상 의지에 상관없이 수영장을 못 가게 되니, 가고 싶은 욕구가 차고도 넘쳐 온종일 주변에 둥둥 떠다닌다.
요즘은 그저 아무 일 없이 수영할 수 있다는 게,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새벽 수영 다니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언젠가는 신체상의 이유로 하고 싶어도 정말 할 수 없는 때가 올 텐데. 그때는 수영할 수 있었을 때가 얼마나 그립겠는가? 오지도 않은 미래까지 끌어다 붙이며 복에 겨운 줄 모르고, 잦은 변명과 푸념을 일삼았던 과거의 나를 타박한다. 수영을 안 가니, 늦게 자도 되고 늦게 일어나도 되는 자유를 얻었는데, 하나도 기쁘지 않다. 오히려 일찍 일어나 수영하고 개운했던 때가 그립고, 피곤해서 푹 잤던 게 훨씬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수영을 못하니, 어찌 이리 좋은 것만 기억나는지.
생각해 보면 다 그랬던 것 같다. 있을 땐, 귀한 줄 모르다가, 없어지고 나면 비로소 소중한 줄 알고.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닫고. 하긴, 당연한 게 어디 있겠는가? 현재의 평안이 수많은 기적과 행운이 겹쳐져야 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번번이 새로운 것처럼 인식해 대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지. 그러니 이제 다시 수영하게 되면 ‘성실’이란 전투복을 입고, 쓸데없는 질문들은 죄다 흔적도 없이 씹어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야겠다. 내가 억수로 운이 좋아 수영장까지 가게 됐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