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편을 완성했다. 발행만 하면 될 일이었다.
사실 어렵게 완성한 글이었다.
꺼내고 싶지 않은 깊숙한 마음을 꺼내어 따끈따끈한 글을 완성했지만, 자꾸 머뭇거리게 되었다.
내 마음정리가 아직 안된 것 같은데 이대로 글을 발행해도 되는 걸까. 오해의 소지를 주는 글은 아닐까. 내 글을 읽고 불편할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내 마음을 잘 표현한 게 맞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다 챗 지피티에게 글을 보여주며 내 복잡한 심리가 무엇일지 물었더니 심리적 요소를 네 가지로 분류해 요목조목 명쾌하게 답을 해주었다.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 개선하거나 조심할 점까지 분석해 답을 해주었다. 나보다 내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 AI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AI는 AI일 뿐.
나와 허물없이 지내는 오랜 친구에게 글을 보내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자신의 생각 몇 가지를 간단히 톡으로 전해주었다.
안 되겠다. 만나야겠어. 좀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내 글에 대해. 글 안의 내 인생에 대해.
남편과 아이들을 팽개치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는 고맙게도 열나는 딸내미를 팽개치고 와주었다. 질문하고, 답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친구의 생각을 듣고, 친구의 질문에 또 답하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악. 뭐야. 지금. 12시가 넘었잖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집중했더니 발행시간이 지나버렸다. 발행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건데. 이런. 그래. 뭐. 어차피 시간이 지났으니 좀 더 생각해 보자.
그리고는 밤새 꿈에서 공포영화를 찍었다.
잠이 깨서는 왜인지 모르게 시간이 갈수록 그 글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읽을수록 얼굴이 달아올랐다. 수정해서 올려야지가 올리지 않길 잘했다로 바뀌고 있었다. 친구야 미안하다. 마음정리가 더 필요한 것 같아.
아. 그럼 뭘 쓰지. 뭘 쓰냐고. 서투른데 좋아하는 내 모습. 없는데. 서투른 것들 잔뜩이지만 다 싫은데.
심각한 길치라서 40년 넘게 사는 이 동네 5분 거리를 아직도 네비 켜고 다니는 것도, 정리에 서툴러 늘 도둑맞은 집 모냥새도, 육아에 서툴러 인간 되려면 아직 먼 원숭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 것도... 그 외에도 엄청 많지만 좋은 거 하나 없는데. 뭘 쓰란 말이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해진 주제로 글쓰기 이젠 안 하고 싶다.
으악.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 1분 전. 또 망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쓰자. 내가 좋아하는 나의 서툰 모습.
음. 서툴러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애쓰는 마음.? (말이 되는건가?...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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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이 또 늦어져 죄송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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