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은밀한 버릇이 있다. 핸드폰으로 녹음 어플을 켜는 것이다.
덕분에 내 핸드폰에는 많은 목소리가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가족과 가장 가까운 몇몇 친구와의 대화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기억을 하고 싶은데, 기억을 못하는 것은 너무나 서글픈 일이다.
특히나 무척이나 신이 나거나, 인생에 있어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진지한 상황이었을 때는, 분명 그랬음에도 기억이 나지 않을때에는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핸드폰에는 내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담겨있다. 차안에서, 잠자리에서, 둘이 놀거나, 싸울때에도 나는 녹음 기능을 켠다. 핸드폰에는 아이들이 네 다섯살에 짧은 말투로 차안에서 트롯트를 부르는 목소리가 담겨있고, 여섯살에는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이야기 하는 목소리, 일곱 살에는 한글을 떠듬떠듬 읽는 목소리, 여덟 살에는 당근마켓에 오십만원에 둘다 팔아버리겠다는 화난 아빠 말에 잘못 했다고 우는 목소리, 아홉 살에는 흥부가를 부르는 목소리, 열 살에는 서로 자기가 모태솔로라고 누구누구가 사귄다고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뿐인가. 아이들에게 본인 목소리를 녹음하는 것을 들킨 이후로 아이들은 시시때때로 본인들도 녹음을 시도하여, 내가 화가나 호랑이처럼 으르렁 대는 목소리, 아빠와 한바탕 싸우는 목소리까지 중간중간 녹음 되어있다.
핸드폰에는 부모님의 목소리도 담겨있다. 칠순이 훨씬 넘은 부모님의 연세는 조금이라도 젊은 부모님의 목소리를 담고 싶게 한다. 오래전에 엄마를 잃은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었다. "너희는 부모님 영상 많이 찍어드려. 돌아가시고 나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데, 영상을 많이 못 찍어 놓은게 그렇게 한이 되더라."
그때 이후로 나는 부모님을 기억으로 남겨놓기 위해 애를 쓴다. 영상도 좋고, 나와의 대화인 통화 목소리를 녹음해놓는 것도 특별한 일이다. 부모님의 목소리는 내게 뭔가를 부탁하기도, 두분이 싸운 이야기, 걱정되는 일이나 그날 있던 즐거운 일을 신이나서 말씀하시기도 한다.
가끔씩 아이들을 집에 두고, 남편과 둘이 산책을 할 때에도 녹음을 한다. 나는 남편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고, 내 목소리는 한껏 친절해진다. 남편은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 남편은 수다쟁이가 되어 남편의 목소리로 세상이 가득하다.
수십년을 지내며 모든것을 허물없이 이야기 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도 있다. 우리는 같은 나이로 동시대를 함께 오랫동안 살아왔고, 가족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었기에, 우리들의 목소리가 담긴 대화에는 우리의 인생이 담겨있다. 많은 시간, 많은 이야기들 만나기만 하면 기본 두 세시간씩 떠들었던 우리가 했던 대화, 그 대화들에는 우리의 삶과 생각이 응축되어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지난날들의 이야기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남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기에. 우리만의 진지하고 깊은 대화를 공중으로 날려버리지 않고 목소리로 담고 싶었다.
나중에 내가 너무 할일 없이 심심해질 때 한번씩 들어보며 낄낄대고 싶다. 우리가 이랬다고 너희가 이랬다고 들려주고 싶다.
별것 아닌 일들에 특별한 일인것 마냥 웃고, 신기해하고, 울기도 하고 했던 일들과 인생에 몇 번 안되는 특별했던 순간들. 그것들을 잊지 않고 싶다. 아니 그때의 내 삶 가까이에서 내 삶을 빛내주었던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다. 내가 행복했음을 잊지 않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