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 내가 부동산에 관심있는 엄마를 만났다면 지금 집이랑 땅을 보러 다니고 있을테고, 백화점을 다니는 엄마를 만났다면 쇼핑이나 갔을텐데. 아우. 힘들어 죽겠네."
마늘을 심을 흙구멍을 파내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궁시렁 대는 무뚝뚝한 딸내미다. 가을도 가고 소설[小雪]도 지났는데 땅이 아깝다고 또 엄마는 뭘 심으신단다. 분명 오늘 밤도 온몸이 아프다고 끙끙 대실텐데 이렇게 자꾸 일을 만들어서 하시는 엄마가 속상하다.
"여봐라. 여기 마늘 심은게 이렇게 싹이 났지 모냐. 너무 신기하지 않냐? 이걸 보니 남은 땅이 아까워서 그냥 둘 수가 있어야지. 저짝은 양파, 저짝은 파, 여기가 마늘이여. "
내 보기엔 영 셋다 똑같이 생기기만 했다. 마늘은 내년에나 난다고 하는데 이걸 왜 벌써 심는거지.
아빠 고향에 놀고 있는 땅이 아까워 그 당시 유행이던 매실나무를 200그루를 심었다. 작은 묘목을 심었는데 그것들이 하늘을 향해 쑥쑥 자랐다. 그 옆에 작은 농막을 지은지도 어언 십년이 훌쩍 넘었다.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게 하라며 부모님은 마당도 만들어 놓으셨다. 그런데 말이 마당이지, 저쪽부터 옥수수, 깨, 땅콩, 고추 요런 것들이 점점 마당을 침범한다. 노는 땅이 아깝다는 할머니의 욕심에 아이들은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가 없다.
야구를 한다고 공을 치면 풀숲으로 들어가 잃어버리기 일쑤고, 축구를 하려면 작물 망친다고 안된단다. 곤충 찾기에 시들해진 나이의 아이들은 하릴없이 삽질이나 해서 마당에 구덩이를 파놓고, 성격 급한 할머니는 바닥도 보지 않고 다니시다 빠지시곤긴 잔소리를 한바탕 하신다.
매실나무는 손이 안간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한 주만 지나도 쑥쑥 자라있는 풀도 베어주어야 하고, 하늘 끝까지 닿을만큼 자라나는 가지도 잘라주어야 한다. 그뿐인가. 거름도 나무마다 일일이 주고 농약도 시기마다 해주어야 한다.
엄마는 매실만 키우면 뭐하냐고, 다른 것들도 크고 있어야 재미가 있어 가신다며 이것저것 안키우는 게 없으시다. 고추를 심고 키우고 말리고 빻아 고추장을 만드시고, 깨를 심고 타작을 해서 참기름도 만드신다. 직접 키운 배추, 무, 파, 생강, 마늘로 김장도 하시고, 메주 만들어 된장, 간장을 만드시기도 하신다.
덕분에 몇 배로 많아진 일 때문에 함께 더욱 자주 가야 하는 시골에서 나는 투덜거리기 일쑤다.
ㅡ아빠가 시골가면 그냥 놀다 오랬는데. 우린 언제 쉬냐구.
한번도 시골에 일하러는 오지 않는 남동생이 사다놓은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가 에헴 하고 쳐다보는듯 하다. 주말 짧은 동안에 정신없이 일하고 올라오는 길은 쉬어빠진 파김치가 따로없다. 아빠는 시골에 오면 하늘 한번 보고 막걸리 한잔 드시고 숲 한번 보고 막걸리 한잔 드시는데. 나도 아빠처럼 그렇게 하늘이랑 구름만 보며 쉬다 오고 싶단 말이다.
무뚝뚝한 딸내미의 투덜댐에도 아랑곳않는 엄마는 봄이 되면 또 말씀하실테다.
ㅡ아유, 저거 감자랑 고추 심어야하는데 누가 하지? 고랑도 파고 비닐도 쳐야는데.
그러면 나는 또,
ㅡ아우. 못살아. 감자 그냥 사먹자니까.
하면서 못이기는척 따라가겠고.
그리고는 한참 일하는 엄마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믹스커피 타드리며 같이 앉아 아따, 참. 맛있다 하고있겠지.나는 여전히 부동산 다니고 백화점 쇼핑하는 엄마 타령하며 호미질 하고, 엄마는 못 들은 척 작물들만 쓰다듬을테고.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그 날의 햇빛, 흙냄새, 엄마 목소리 가슴에 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