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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득 Dec 23. 2024

day18ㅡ슬픔

by 신디북클럽




나에게는 사랑했던 두 친구가 있었다, 우리 셋은 함께 행복했다. 열여덟 살엔가. 비록 짧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절반을 함께 했음에 놀라워했다. 나머지 인생도 서로의 자매가 되어주자고 우정을 맹세했다. 매일 나누던 우정일기 세 권을 한 명씩 나누어가졌다. 우리 사이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우정도 여느 평범한 보통날에만 지속되는 모양이었다. 몇 년 후, 각자의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의 우정은 계속되기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가짜였다고 말할 수 있겠나. 이토록 가슴이 시린데 말이다.


친구 똑순이는 나와 참 쿵짝이 잘 맞았다. 함께 있으면 흥미로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뭘 해도 지루하지 않았다. 결혼한다면 너 같은 친구와, 그럼 평생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근데, 하필이면 똑순이의 엄마와 내 엄마도 친구였다. 똑순이의 엄마는 내 엄마에게 돈을 빌렸다. 다른 이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졌다. 똑순이 집에는 빨간딱지들이 곳곳에 붙었다. 그 아이가 좋아하던 피아노에도 딱지가 붙었다. 똑순이는 울었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갈 곳이 없는 친구를 엄마께 부탁해 우리 집에 잠시 머물게 했다. 똑순이는 우리 엄마의 눈빛을 불편해했다. 우리 엄마도 울었다. 백 원, 이백 원 아껴서 자식이 갖고 싶다는 피아노도 못 사주고 억척같이 모은 큰돈이 가장 좋아했던 친구와 함께 영영 사라져 버렸다. 똑순이는 돈을 갚았다는 자신의 엄마의 말을 믿었다. 나의 엄마는 친구가 돌아오길 기다리다 가슴을 치며 포기했다. 똑순이는 나마저도 불편해했고, 그렇게 이별하게 되었다. 어느 날 똑순이의 엄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나의 엄마도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아니, 슬퍼하지 못함을 슬퍼했다.


친구 어질이는 마음이 참 넓었다. 어질이와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져 언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질이는 늘 한결같은 친구였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 마음이 한참 힘든 시기가 있었다. 집에 전화가 왔다 하면 사고 전화였다. 엄마가 뺑소니 차에 치여 병원에 9개월 입원해 계시기도 했고, 그 와중에 아빠도 두 번이나 병원에 실려가셨다. 동생도 아르바이트를 하다 천정이 무너지는 사고로 수술을 해야 했다. 이외에도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닥치는 시기에 내 마음은 바닥을 치며 깊은 우울감에 빠졌고, 심하게 삐뚤어졌다. 아마도 나는 친한 친구 어질이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내가 단단하지 못함을 깨닫지 못하고, 어질이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지다 혼자 상처를 받았다. 어질이에게 실망한 나는 어질이와의 인연을 끊어버리자는 독한 생각을 너무나 쉽게 했다. 나의 행동에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었다. 어질이에게 내 마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차단해 버렸다. 니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면 내 친구도 아니야 라고 독하고 어린 생각을 했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아픔이나 미래에 느낄 후회 따위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추웠다.




종종 온라인에서 보이는 '손절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은 내 마음을 찌른다. 오래된 절친을 단호하게 손절해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차갑고 시린 계절에 있다. 힘들겠지만, 너무 쉽게 결정하지 말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어떻겠냐고 말해주고 싶다. 그 어느 것에도 기대하지 말고 조금만 더 단단해지며 견뎌보라고. 그러다 봄이 오면 당신의 마음도 눈 녹듯 녹을 거라고.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겨울에 빠져 다른 사람의 겨울을 보지 못할 수도 있음을. 그것이 겨울이었음을 나중에야 느낀다고. 


오늘도 나는 나와 함께 우정일기를 쓰던 똑순이와 어질이를 그리워한다. 종종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이 이제는 시리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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