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7ㅡ지나고 보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이별

by 가득
by 신디북클럽




구토를 세 번이나 했다. 엊그제 건강검진 후 영 속이 좋지 않다. 오랜만이다. 이 느낌.


십 년 전 방과 화장실만 오가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 느낌은 뭐랄까. 소주를 한 다섯 병 먹은 다음날, 거친 파도 위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매일 계속되는 것이라 해야 하나.


방에서 배를 움켜쥐고 바닥으로 기어 내려온다. 엉금엉금 기어서 우웩 거리며 화장실로 간다. 변기에 토를 하고 세면대에 얼굴을 씻고를 여러 번 반복하다 다시 방으로. 그러다 얼마 안돼 다시 화장실로. 그렇게 하루에 수십 번씩 방과 화장실을 오가는 일이 다였던 어느 날은 기어나갈 힘이 없어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먹어도 구역질을 하면서 점점 나는 수척해져 갔다. 그러는 사이 배속 아가들의 심장소리는 점점 우렁차졌다.


어머, 이번에는 첫째가 오른쪽에 있군요. 둘째는 아래로 내려갔어요.


심장 초음파를 할 때마다 아가들은 위치를 바꾸었다. 쿵쿵 뛰는 둘의 심장소리는 크기도 속도도 달랐다. 내 안에 세 개의 심장이 뛰는 놀라운 날들이었다.


자몽을 까서 한 손에 들고 우걱우걱 씹었다. 시원한 것이 갈증해소가 되었고, 달콤한 것이 없던 입맛을 돋웠다. 신맛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임신 초기 내 아가들은 자몽이 키웠다고 해도 좋다.


"뭐라고요? 이런 xxx 같으니. 내 딸 불쌍해서 어떡해."


초음파를 보며 까만 점 같은 것이 아무래도 세 쌍둥이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엄마는 의사 앞에서 남편 욕을 해버렸다. 일주일이 흘러 다행히 그건 그냥 피가 고인 것뿐이라는 이야기에 안도했지만, 엄마는 내내 고령의 산모인 딸 걱정뿐이었고, 남편은 마냥 웃고 있었다.


두어 달을 먹지 못하니 끔찍한 변비도 찾아왔다.

입덧이 사라졌을 때는 임신당뇨가 찾아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했다.

기형아 검사에서 아이들 둘 다 다운증후군 수치가 높다고 했다.


"어랏. 폭력적인 어머니가 되시겠군요."

의사 선생님은 아들 쌍둥이란 말을 대신하여 미래를 예견해 주셨다.


배는 나날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태교고 뭐고 누워서 '왕좌의 게임'이라는 험하지만 재밌는 드라마로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매일 전쟁놀이를 하는 건가, 블록으로 칼과 방패를 만들어대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남편이랑 다투고 많이 울었던 어느 날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날이 우리 집에 남편과 나 둘만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입원준비를 해야 했다. 단발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어린 간호사가 내 손목에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았다. 드릴로 손목을 뚫는 건가 순간 부가 퍽하고 뚫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조산기로 입원을 하고 휠체어를 타며 병원생활을 했다.

당뇨식단으로 몸무게가 늘지 않는 나를 위해 엄마가 간호사 몰래 사다 주신 프렌치토스트가 눈물 나게 맛있었다. 또 몰래 가져다주신 식어버린 허니콤보치킨 두 조각의 다디단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배속 아가들의 체중을 늘리기 위해 한 달간을 더 품기로 했다. 친정엄마는 내 휠체어를 밀고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셨다. 밤마다 아기를 낳으러 다급히 가는 산모들의 진통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밤마다 돌아눕지 못하는 내 몸통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주었다.


드디어 아가들이 태어나는 날.

새벽부터 많은 준비들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양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수술실을 향하는 침대에 누웠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가들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한다면 꼭 함께 교회에 갈게요. 부처님께도 기도했다. 절에도 갈게요.


수술실 문이 열리자 나를 위한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선생님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믿음직스럽고 안심이 되었다. 수술용 침대로 몸을 옮기는데 추위 때문인지 무서움 때문인지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자 곧 잠에 들 거예요. 십, 구, 팔, 칠, 육, 오...


00아. 눈 떠. 자면 안 된대. 호흡 계속해야 한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들다 잠이 들다를 반복했다. 잠시 의식이 들었을 때 초음파 사진에서 보았던 익숙한 얼굴의 아기가 내 품에 안겨졌다. 다른 아기는 체중이 적게 나가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잠시 머무른다고 했다.


건강한 2.1kg / 2.6kg의 아가 둘이 내 몸속을 빠져나온 후 하루 만에 10kg이 빠져 있었다.

아기들이 태어나고 나는 많은 것들과 이별했다.


입덧, 임신당뇨, 풍선 같은 배, 주삿바늘, 휠체어, 변비, 지긋지긋했던 병원


그리고 새로 만난 것들은

기저귀, 젖병, 기저귀, 젖병, 기저귀, 젖병........... 그리고 천사 같은 미소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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