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감기에 걸렸단 말씀에 해장국을 들고 나섰다. 얼큰하고 따뜻한 국물을 들이켜면 찬기운이 쑥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차를 타고 다니면서부터 웬만한 거리는 걷지 않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오늘은 한번 걸어볼까. 아빠 한 그릇, 엄마 한 그릇, 두 그릇을 들고 나섰다. 날씨는 춥고, 해장국은 무거웠다. 오랜만에 걷게 된 30분 거리의 길이 멀게 느껴진다.이어폰을 낀다. 음악을 크게 켠다. 귀가 음악을 듣는데 갑자기 내 눈이낭만 렌즈를 장착했다. 진작에 음악을 많이 듣고 살걸 싶다.
어릴 때, 동생 손을 잡고 엄마가 오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정류장을 지나니 안경집이 보인다. 가게를 새로 오픈한 젊은 사장님이 웃을 때 보이는 하얀 이와 눈가주름에 가슴 설레던 때가 있었다. 어느새 환갑이 되신 사장님이 여전히 친절한 미소와 함께 통유리창 밖으로 목례를 한다. 조금 더 걸으니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아니 이제는 내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나온다. 이곳이 엄마가 너희만 할 때 살던 곳이야. 너희는 엄마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단다. 아이들은 새로 이사와 낯선 곳을 다행히도 반가워했다.
학교를 지나니 온통 공사판이다. 동네는 모두 허물어져 포클레인만이 붉은 흙을 밟고 다닌다. 원래 있던 길이 사라지고 시청 쪽으로 원래 길이 나 있었던 냥 비탈길이 뻗어 있다. 모든 걸 함께했던 사랑했던 친구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김건모의 신곡 '잘못된 만남'을 입 아프게 부르며 매일 오가던 길이 영영 사라졌다. 그 길을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은데. 후회가 된다. 지루한 일상이 먼 훗날 어느 날에는 특별하게 된다는 것을 일찍이 알지 못했다.
시청을 지난다. 바로 옆 시민운동장이 리모델링되며 공영주차장이 크게 들어섰다. 시민운동장은 벚꽃 명소라철만 되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으로 소개팅이란 걸 했던 때에 소개팅남과 이곳 벚꽃나무 아래를 거닐었다. 남자의 팔근육과 눈빛이 낯설고 간지러워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벚꽃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나는 많은 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이야기들을 참으로 진지하게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 예쁜 벚꽃나무들을 다 베어내 버렸다. 대신 조금 더 넓어진 공간에서 나의 아이들이 야구를 하고 공을 차니 그래 내가 봐주기로 하자.
이 도시에는 크고 작은 도서관이 열개가 넘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허허벌판에 건물 몇 개만 있던 시절에 친구들과 처음으로 갔던 도서관은 시청 바로 옆 작은 시민회관이었다. 처음으로 생긴 도서관에 들어가겠다고 줄지어섰던 때가 떠오른다. 학생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낙서만 하나 보았다. 책상 위에, 휴게실 벽에, 화장실 벽에. 라면은 역시 '도시락'이지 하며 컵라면을 뜯었다. 실없이 배꼽 잡고 웃고 떠들다 공부는 하나도 못했던 건 부모님께 영원히 비밀이다.
조금 지나니 남동생이 처음 분가해 살았던 작은 집이 나온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도시가 변해가고 있는데 이곳은 여전하구나 싶다. 서연아 하고 부르면 5살 작고 어여쁜 조카아이가 창문을 빼꼼 열어 와 고모다 하고 반겨줄 것만 같다. 스물한 살 나보다 키 큰 아가씨가 된 조카가 이 집 앞에선 낯설기만 하다. 길가에 함께 시켜 먹던 피자가게도 칼국수맛집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참 많은 것들이 달라져버렸다. 분가를 안 했으면 네 동생이 잘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 엄마는 지금도 한 번씩 말씀하신다.
드디어 시장이다. 시장은 내 아이들의 놀이터로 여느 아쿠아리움이 부럽지 않았다. 미꾸라지, 게, 낙지, 오징어, 문어, 전복, 물고기들에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은 아이들이 다섯 살 때에 장을 보다가 호기심쟁이 1호가 사라진적이 있었다. 당황한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2호는 엄마를 놓칠세라 울면서 쫓아왔다. 구급차가 지나갈 때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시장에서 모세의 기적을 보았다. 북적이던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고, 상인들은 줄지어 파도타기 하듯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애기 저 앞으로 갔어요. 저 쪽에 뻥튀기 아저씨가 데리고 있어요. 아이들이 여섯 살에 마지막으로 갔던 시장을 아홉 살에 훌쩍 커서 갔더니 와 그 애기들이 이렇게 많이 컸네 하고 시장 사람들이 기억하고 반가워했다. 우리 쌍둥이가 지나가면 예쁘다며 조그만 손에 천 원씩을 쥐어주던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감사했다.
시장 건너편에서 아빠를 만났다. 이어폰을 귀에서 빼냈다. 고개를 돌려 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를 몰래 닦았다. 엄마는 아이들이 어릴 때 다니던 이비인후과에 가셨단다. 의사 선생님 머리가 조금 더 벗어지셨는지 묻고 싶었다. 아빠를 따라 집에 가는 길, 어느새 새로 짓는 단지가 우뚝 선 것이 보였다. 시끄럽지 않았냐고 물으니 언제 이렇게 올라갔는 줄도 모른단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들은 여전히 활기를 띤다. 건너편 철거를 앞두고 숨이 멎었던 집들이 사라지고 높이 아파트가 올라섰다. 오래된 도시가 새로운 도시로 변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집에 들어서니 15년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그림 수업에서 그렸던 해바라기가 벽에 걸려있다. 혹시나 안드시고 버릴세라 엄청 맛있다고 꼭 드시라고 강조하며 해장국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