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한량
누구나 마음속에 이상적인 꿈 하나씩을 품고 살 것이다.
나에게도 나만의 낭만이 있다.
꿈속의 나는 작지만 아담하고 정겨운 시골집에서 마당의 텃밭을 가꾸며 넓고 조용한 자연 속에서 산다. 뒤로는 밤나무가 있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둥근 돌멩이들이 투명하게 보이는 강이 흐른다. 시골 마당 한 구석에는 닭장이 있어, 아침에는 계란 프라이를 해 먹기 위해 신선한 달걀 하나씩을 꺼낸다. 차마 못 꺼내먹은 달걀에서 깨어난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도망 다니다 엄마닭 날개 아래로 숨는다.
마루 아래에서 단잠을 자던 강아지는 아침마다 나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한다. 동네 개울가에서 수영도 곧잘 한다. 따뜻한 햇살아래서 꾸벅꾸벅 졸던 고양이 두 마리는 인기척 소리에 앞발로 세수를 하고 기지개를 켠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로운 고양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른해진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에 펼쳐진 구름은 바람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로 흘러간다. 어느 날은 뭉게구름이 되어, 어느 날은 양떼구름이 되어. 멍하니 구름을 보고 있자니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저어기 구름사이 오묘한 빛깔 어딘가에는 다른 세상이 있을 것만 같다. 옛날 사람들은 구름멍을 하며 저어기 하늘 구름 속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고 생각했으려나. 구름멍은 불멍, 비멍, 물멍, 별멍, 꽃멍에 버금간다.
흰나비 두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다 꽃밭에 앉는다. 마당 작은 텃밭 옆에는 나의 소중한 정원도 있다. 정원에는 색색깔의 다양한 꽃들이 서로 곱디고움을 뽐내는 중이다. 꿀벌이 윙하고 날아다닌다.
내가 심어놓은 나무 몇 그루에는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길 준비하는 중이다. 작은 사과와 복숭아가 처음 달렸을 때의 그 신비함이라니. 아기가 태어났을 때만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텃밭을 일구고, 열매나무를 심으며 알게 된다. 작은 오이와 수박이 태어나 줄기에 가냘프게 달려있을 때의 그 귀여움, 호박이 쑥쑥 자라날 때의 그 뿌듯함, 빨간 딸기가 어서 커서 내 입에 쏙 들어가길 기다릴 때 입가에 솟구치는 침샘.
마당 한 귀퉁이에 자란 쑥과 냉이 달래로 된장국도 끓이고 무침도 해 먹을 때, 부추와 파를 한 다발 캐어 밀가루 쓱 뿌려 부침을 해 먹을 때, 저쪽 귀퉁이에 스멀스멀 자라난 돌나물과 미나리에 고추장 넣고 슥슥 비며 비빔밥을 해 먹을 때 어느 나라 미슐랭 레스토랑 음식도 부럽지 않다. 거기에 막걸리 한잔 함께 하면 신선이 따로 없다. 뽕나무에서 오디를 한 바구니 또독또독 따서 입술 벌게지며 먹으면 얼마나 몸에 좋은 간식거리인지, 다른 디저트는 필요가 없다.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나는 드디어 옷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으며, 대충 편한 옷을 걸치고, 마당 평상에 아무렇게나 누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다. 나는 게으른 한량이니까.
조금 있다 더워지면 저기 냇가에 가서 몸이나 담그고, 다슬기나 잡아와야지. 오늘 저녁 메뉴는 다슬기국이다. 좀 더 많이 잡히면 장에 가서 팔아 고기로 바꿔와야겠다. 그럼 내일 저녁메뉴는 삼겹살. 동네친구들 불러 함께 저녁별 보며 화로에 불붙여 솥뚜껑에 삼겹살이나 구워 먹어야지.
누군가 나를 보며 묻겠지. 왜 일을 하지 않아요?
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할 테다.
" 훗. 나는 일을 조금만 해요. 일을 많이 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서요."
feat. 드라마 눈물의 여왕. 영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