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득 Dec 18. 2024

day13ㅡ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나타나는 습관

by 신디북클럽



어릴 때엔 불안한 마음이 들면 기도를 했다. 비록 빵과 요구르트를 받으러 교회에 다녔을지라도 목사님이 두 팔을 쭈욱 뻗고 그윽한 목소리로 기도를 해주시면 정말 은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마음이 몹시 불안했던 어느날 하나님 제발 들어주세요 하며 간절하게 했던 어린 나의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 크게 실망했던 이후로는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면 마치 걱정 인형에 걱정을 맡기듯 내 불안을 일기장이 다 가져가버리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타고난건지 환경적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만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안이 크다. 천장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이 집 무너지는 거 아닌가. 지진이 나면 이 많은 고층 아파트들은 어쩌지 싶고. 아파트 비상벨 소리가 들리면 진짜 불이 나면 어떻게 피해야 할지 걱정된다.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만 들으면 전쟁때문에, 아빠나 남편이 장거리 운전을 하면 사고가 날까 불안하다. 심장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함과 초조함을 느낀다.


그러니, 코로나 때는 어떠했겠는가. 중국에서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부터 겁을 먹었다. 그 바이러스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불안에 떨다가 한국에서마저 한 명 한 명 전염되기 시작했을 때는 듣고 있던 강의도 혼자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드롭해 버렸다. 코로나 유행 초반 다니던 직장에서는 혼자만 유난스럽게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다 같이 모이는 회의시간에 음료도 먹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조심하라고 유난을 떨었다.


나의 아이들은 그런 나의 불안을 온몸으로 떠안았다. 당시 6세였던 1호는 어린이집에서 점심이다 밥 먹자 소리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매일 선생님께서 식사 문제로 전화를 하셨다. 워낙 밥을 안 먹는 아이기도 해서 그저 밥 먹기가 싫어 그런 줄 알았는데 아이는 나중에 코로나가 무서웠다고 말했다. 어린이집도 문을 닫았을 때, 부모님은 아이들을 시골로 한달간 데려가셨고, 2호는 그때부터 틱을 시작했다. 원래 불안이 많은 기질이었던 2호의 불안은 그 해에 폭발하듯 했다.


그렇게 불안할 때의 나의 나쁜 습관은 주위 사람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나의 남편은 나의 불안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의 남편은 감정이 없는 건지, 공감 능력이 없는 건지, 위기의식이 없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감정이 파동을 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쭉 한결같이 무심할 뿐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봐 불안의 극치를 달렸던 나는 남편의 걱정 없는 편안한 얼굴이 보기 싫게 느껴졌다. 남편이 나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나의 불안에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이 미웠다.


그런데, 남편이 심장수술을 했던 그때에 나는 느꼈다. 남편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래 그런 기질의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느꼈던 가족에 대한 무심함은 자신에게도 똑같았다. 남편은 극한 상황에서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별거 아니라는 듯 허허 웃으며 나의 불안을 낮춰주었다. 남편이 나와 함께 불안해했으면 나는 힘든 시기를 잘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순간순간을 잘 견디면서 나의 불안을 잡아주었기에 나는 마음을 다 잡고 일도 하고, 아이들도 잘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습관. 이젠 고쳐야 할 것을 안다. 이제 남편에게 나와 공감해줄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불안한 상황에서 남편이 우직하게 지켜주리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남편에 대한 미움이 어느새 존경하는 마음으로 변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