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
무연고 사망자가 모두 고독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독사란 사회적 고립 상태로 살던 사람이 홀로 임종 후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된 죽음을 뜻하고, 무연고 사망자란 사망한 고인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는 경우를 뜻한다. 무연고 사망자가 고독사를 했을 수도 있고, 고독사로 사망한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는 있지만 이 둘이 필연적 관계로 묶이는 것은 아니다.
가족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왜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도록 결정하는 걸까? 수많은 사회적 이유와 개인적 이유가 있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가족이 있어도 고독사로 사망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엄마가 나이 41에 시험관으로 낳은 첫 자식으로 당시 엄청난 늦둥이였다. 그 덕에 족보까지 꼬여 내가 15살 때 내 조카가 결혼을 했고, 18살에는 조카가 낳은 손주가 있어 '이모할머니'가 되었으니 가족 내에서 나는 정말 많은 염원을 받은, 엄마에게는 10여 년이라는 긴 고통의 시간 끝에 태어난 아이였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렴풋한 생각을 한 가지 하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그건 내 사주팔자에 없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나마 있는 가족 구성원하고도 성격차로 매일 마찰하며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 세상에 묻고는 했는데, 이런 내가 결혼을 한다고? 게다가 친가 외가 포함해 이혼을 하지 않은 건 우리 집과 외갓집 이모 둘 빼고 없었으며 끝내 혼자 사는 이모와 언니(꼬인 족보에 엄마랑 나이차이가 10살 안팎이었다.)가 둘이나 있었다.
가족력으로 보나 성격적으로 보나 나는 결혼을 할 수 없겠구나. 그럼 다들 말하는 '멋진 솔로 라이프'를 살겠지? 막연한 생각 끝에 엄마와 아빠에게 "나는 결혼 안 해."라고 말하고 다녔다. 엄마는 "ㅎㅎ... 그래도 해야지~" 하고 넘겼고 아빠는 "네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것도 좋지"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비혼주의를 택했다기보다 그냥 결혼이 내 팔자에 없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여기며 20대를 시작했다.
그러다 29살 무렵, 나는 문득 결혼이 엄청나게 하고 싶어졌다. 딱 한 번 보러 갔던 용한 사주집에서 서른이 넘으면 결혼해도 이혼하지 않을 운수의 시작이니 결혼은 30 넘어서하라고 한지 아마 2-3년 뒤였던 것 같다. 뒤늦긴 했어도 부모님과의 사이가 안정적이었고 몇 번의 연애와 그 무렵 이어진 다양한 고백들에 아 내가 결혼을 못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하면서 그냥 딱 결혼해서 안정적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 팝콘처럼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터졌다. 결국 휴대폰이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건지 '결정사'에서 전화도 2번이나 왔었다. 현실적 제반이고 뭐고, 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난 다 상관없으니 좋은 사람이 나타나 내가 좋다고 하면 그냥 결혼해버려야지 하고 바짝 마음도 먹은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세상을 보다 보니 나는 노부부의 외동, 엄마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는 이 넓은 세상에 '혼자'였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친가의 사촌은 삼촌의 이혼으로 교류가 뜸해진지가 15년이 넘었고 외가의 사촌도 마찬가지였다. 드라마에서 보던 멋진 이모나 기댈 수 있는 삼촌은 내게 없었고, 왜 태어났니 싶은 동생이나 어릴 때 매일 싸웠지만 크니까 절친이 되었다는 언니도 없었다. 그냥. 나는 혼자였다. 너무 귀여운 강아지 나루와 쿤이가 동생으로 있지만, 얘들은 내가 지켜야 할 작은 생명이고 벌써 나이가 15년이 된 노견이었다. 거리에서 종종 마주치는 혼자 사는 노인분들을 볼 때면 미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 관계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줄고 협소해진다는데 나는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는 것이 더 슬플 것 같았다. 아니, 그냥, 그러면 나보다 내 부모님이 더 슬퍼할 것 같았고 그게 그대로 내 무게가 될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임종 때 혼자인 게 싫었고 특히 아플 때 혼자인 건 너무 서럽고 싫은데 나이가 훌쩍 들었을 때 그러면 너무너무 외로워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 오늘 문득, 안락사로 죽으면 흔히 말하는 신은 이걸 자살로 쳐줄까 아니면 자신이 내린 은총이라고 따듯하게 맞아줄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가족에 대한 의미가 다양하고 넓게, 여러 갈래의 층위로 두툼하게 나뉘고 생기고 있는 지금 누군가에게 가족이란 내 장례를 치러줄 사람, 아픈 나를 그래도 손잡고 조금만 힘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가 고리타분할지 색다를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정말 세상에 '혼자'가 되는 경험을 언젠가로 앞두고 매일을 살아가는 나(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혼자가 아닐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세상이 많이 변하고, 생각들이 뭉치고 넓혀지고 논의가 이어지다 보니 다양한 가족 구성이 세상에 소개되고 이어지고 있다. 29에서 30, 그 무렵 진짜 결혼을 해버리고 싶어서(순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안정감에 대한 욕망) 전전긍긍 매일을 여기저기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내가 어느 순간 '결혼'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내려놓게 된 건 그 덕이었다. 가족을 가지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그렇기에 결혼이 유일한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안도가 있었다. 비록 아직도 결혼이 가족을 가지는 전통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가족 구성, 유사 가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때마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 진다. 당신은, 당신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있나요?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답니다. 가족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는 삶의 끝에서부터 시작해보아야 해요. 왜 가족이라는 게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대체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생기는지, 그 이유를 우린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겪는 죽음이라는 끝에서 시작해보아야 해요.
얼마 전 농당처럼 친구에게 "나를 너의 삶에서 평생 떼어내는 대신 50억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인스타에서 본 밸런스 게임을 물었다. 그러자 잠깐 고민하다 "50억 따위야 안 받지 뭐"라고 하길래 "다음에 누가 진짜로 50억 준다고 하면 난 괜찮으니까 그냥 받아, 알았지? 너가 언제 50억을 받겠어. 나는 너가 그래도 행복하게 살겠구나 하고 살게."라고 우슷개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잠깐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그러면 잠깐 갔다가 개명하고 다시 와야 돼, 알았지?"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 그래 그래도 내가 혼자는 아니겠구나 싶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싶고 그렇게 된다.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괜찮을 거라는 어렴풋한 확신이 마음을 잔잔히 가라앉혀준다.
아무튼. 때로 어떤 것들의 의미는 삶이라는 지금이 아닌 그 끝으로 찾아가 시작해야만 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알지 못하던 것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가족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