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 이맘쯤, 한창 여름이 시작되던 7월 초에 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는 당신을 그만 미워해야지"
미워한다는 건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말에 반대일까? 반대어는 뭘까? 사랑한다의 반대어는 '사랑하지 않는다'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은 '미워한다'는 말과 서로 극점을 그리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사랑한다는 감정과 미워한다는 감정이 공존할 수 있을까? 이 논의는 합당한가?
'밉다'는 말을 사전에 검색하면 '~이 거슬리지 않는다.'라고 나온다. '싫다'는 말을 검색하면 '마음에 들지 아니한다'고 나온다. 즉 밉다는 것은 상대의 무언가가 거슬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싫다는 것은 상대방이든 상대방의 무엇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와 밉다가 가지는 거리보다는 가깝고 사랑한다와 좋아한다는 거리보다는 약간 멀지도 가까울지도 모르는 거리에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본 뜻은 '관찰자가 관찰을 하기 전까지 그 결과는 확립되지 않는 이중의 상태에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즉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다는 것은, 관찰이 되어 결과가 확인 되기 전까지는 '확립되지 않은 결과'이다-고 말하는 것인데 사실 이는 모순이다. 관찰자의 존재가 결과의 필연적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찰자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고양이는 있거나 없는 결과로 존재한다. 우리는 그 결과를 살펴볼 뿐 우리가 그 상자를 염으로써 결과를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작년 이맘 누구를 미워했을까? 나 자신? 어머니? 아버지? 소원한 친구? 연인? 적어도 '그만 미워해야지'라고 썼으니 '미워하고 있음'은 확립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더이상 '미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짐은 지켜졌을까?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일기장에 쓴 그 대상을 미워하지 않고 있을까?
'미워해야지'에서 중요한 것은 '해야지'이다. 왜냐하면 '해야지'는 앞에 붙은 형용사가 무엇이든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랑해야지, 라고 한다면 사랑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고 미워해야지 한다면 미워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제 말을 더 확장해 '그만 미워해야지'라고 한다면 미워하지 못하고 있음에서 더 나아가 '미워하고 있으나 그것을 이제 그만두겠다'는 의지의 말이 된다. 결국 이러든저든 미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이맘쯤 '당신'이라는 단어를 쓰며 떠올린 상대는 나이기도, 부모님이기도, 친구이기도, 연인이기도 했다. 사실 이 앞에 누구를 붙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밉다'는 말은 사실 사랑에 근접어이고 사랑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작용 혹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필시 '밉다'는 감정을 동반한다. 그것이 '싫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몹시 아끼거나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뜻하는데, 귀중하고 아끼는데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거슬릴 수는 있다. 어떤 태도가 습관이 행동이 말이 어투가 어조가 표정이 제스쳐가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잠을 잘 때의 자세가-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의 무언가는 거슬릴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을 귀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사랑이 '나의 입맛에 완전히 들어맞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니까.
일 년 전 일기장에 '이제 당신을 그만 미워해야지'라고 쓰고 덧붙인 말은 이것이다.
오늘 일기에 당신을 그만 미워하자고 쓴 것은 진정 미워함이 아니고,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훑고
내게 쌓이는 시간들이 곱씹게 만든 것을 보니
변한 것 없이 깊어지기만한 당신의 마음이라서
이제 그만 그저 받아들여야지 했다는 것으로
혼자 꼬인 마음으로 받을 것을 받지 못하고 의심하고 엎고 밀어내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었다. 쌓여온 시간을 들여다보니 그냥 깊어지기만한 것이 당신의 마음이라서 내 마음이 당신을 미워하든 미워하지 않든 당신의 마음은 이미 '깊어져있음'으로 결정되어 있기에,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관찰자의 확립과 관계없이 결정되어 있는 마음을 의심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물음을 던지지 않기로 했음을 뜻한다. 즉 내게 오는 사랑을 여지없이 다 받아야지, 하고.
미워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든 '그것이 내 마음에 거슬리기 때문'이고 그 기준이 '내 마음'이라면 내 마음을 바꾸면 될 일인데 세상에서 어려운 것이 남의 마음 뒤집는 것보다 내 마음을 뒤집는 것이니 복장이 터지고 기분이 나쁘고 눈물이 삐죽 나오며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엄마가 딸기의 꼭지를 다 따 씻쳐 통에 싸 택배로 보내주어도, 아빠가 자신은 7년째 같은 청바지 하나를 입으면서 내게는 새 옷을 입으라 돈을 보내고 배불리 먹어라 돈을 보내주어도 내 마음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미운 거니까.
그래서 이제는 당신을 그만 미워하기로 한다. 뒤집어지지 않는 마음에 한창을 애쓸지라도 꼬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로 한다. 일 년 전에 한 다짐을 일 년만에 일 년을 기념으로 다시 해본다. 내 꼬인 마음에 당신의 구석구석을 거슬려하지 않고, 당신을 사랑하는대로 '몹시 아끼고 귀하게 여기며' 지내기로 다짐한다.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는대로 사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