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에 대하여

급여이체는 없고 카드지출만 열두 번.

by 바람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어떤 것들은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 장면은 정지화면이 아니고 1초의 동영상처럼 살아서 재생된다. 망각의 저편으로 절대 빨려 들어가지 않겠노라 애를 쓰며 꿈틀댄다. 그렇게 살아남은 기억의 편린이 이제 와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아마도 그 당시에 연결된 오감의 것과 비슷한 감각을 조우했거나 그것을 떠올릴만한 주제와 맞닥뜨렸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어떤 날들보다 여유로웠던 백수의 시간 속에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된 지 벌써 1년'이라는 상징과 맞닥뜨렸다. 유수와 같이 빠른 세월의 속도를 감탄하고 있을 즈음 망각의 늪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그 기억이 소환되었다. 마침 나는 구인광고를 보면서 다리를 떨고 있는 와중이었다. 대조적이지만 오묘하게 오버랩되는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과거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내게로 걸어왔다. 한가롭고 안절부절 못했던 그날의 기억이.


늦가을, 꽤 쌀쌀한 바람과 강한 볕이 동시에 내리쬐는 한 낮, 한적하기도 바쁘기도 했던 대학교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있었다. 뜨겁고 추웠던 날 중간고사 기간이라 바삐 움직이는 학우들, 그날의 공기는 차분했고 또 차가웠다. 이상하고 오묘한 감각사이에서 나는 어느 친했던 동문과 함께 볕을 쬐며 나란히 앉아 마음 편히 담소를 나누다 불현듯 내뱉은 고백이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항상 불안할까?' 알 수 없는 불안은 시험기간 때문만은 분명 아니었다. 나는 이미 모든 시험을 끝낸 상태였으니 말이다. 방 한 칸에 스며든 빗물이 조금씩 벽지에 젖어드는 것처럼, 마음 한 켠에 어딘가 벌어진 틈새로 스멀스멀 불안이 새어 나와 초조했다. 덜 마른 축축한 바지를 입은것마냥 벤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다리를 떠는 나를 향해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잘하고 있고 열심히 하는 것을 남들은 인정하는데 정작 너는 스스로에게 그렇지 못한 모양이야".


그때는 결코 친구의 말을 공감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형용모순의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무엇인가 맹목적으로 열심히 했지만 항상 부족했고 그 부적절한 부재감을 채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쫓기듯 다시 내달렸다. 충분히 훌륭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지만 학점, 운동, 관계 삶의 모든 것들을 재촉했고 벤치에앉아 볕을 쬐던 그 순간도 탐탁지 않았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우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나, 그 중간 어디 즈음 위치한 벌어진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불안 때문에.


백수라는 시간은 내게 선물이었다. 2022년의 한 해는 나에게 안식년이었고 코로나가 인류활동을 강제하여 자연을 돌보듯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직 나만을 위해 시간은 흐르고, 상대적으로 한참이나 느려진 세상 안에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다. 평온함 속의 불안함? 아니 정확하게는 옅은 색 정도의 초조함 정도랄까. 이는 느린 속도의 관성 때문일지 아니면 쉼표 사이에 자라난 건강한 자의식 때문이었을까?


급여이체는 없고 카드지출만 열두 번이다.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구인사이트를 보면서 다리를 떨고 있는 중이다. 중년 백수의 시간은 벤치에 걸터앉아 고심했던 시간과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게 흘러간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을 그간 터득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글쓰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벤치에 앉은 청년은 남들과 똑같이 생긴 격자무늬 종이 위에 세상을 펼쳐놓고 그 위에 눈금을 표시하여 순위로 표현되는 삶을 불안해했노라면, 백수인 중년은 아무와는 다른 종이 위에 나만의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하기 바로 전 그 설렘을 초조함으로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다만 명확하게, 논리적인 글로 구체화하기에 어려운 지금의 마음이지만, 분명한 건 이내 옅어진 불안의 농도에 반가웠고 마침 지나치는 회상은 허탈했고 쉼에 대한 위대함은 뜻밖이었며 또 새로웠노라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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