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노인에의한, 노년을위한

'늙는다'는 두려움과 '늙어가는 시간'을 위한 끄적임

by 바람

아파트 단지들이 빼곡히 모여사는 경기도 어느 동네의 거리는 조용하다. 소란스러운 밤과 달리 이곳은 해가 중천에 뜬 훤한 낮에 유독 나이 들고 느려진다. 도시로 일 나간 젊은 이들이 떠나고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만 남아 이 낮을 한산하게 살아가는 이유다. 젊지도 않았지만 늙지도 않은 경계에서 서있는 중년의 내게 이 풍광이 낯설지 않지만 다른 차원의 의미로 낯설었다. 1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는 동안 이른 오후의 거리를 머리가 흰 익숙한 어른들과 공유했다. 그 공유된 시공간에 이질적인 내 젊음이라는 시간이 늙어가는 것에 대한 개념을 사유케 했다. 늙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늙고 싶은지에 대해서.


내가 사는 아파트 5층의 할머니는 오늘도 외출을 하시나 보다. 장 보러 나서는 길에 또 그와 마주쳤다. 가끔 뵙기도 했고 어르신에 대한 의무적 반사신경에 큰 목례로 인사를 드렸다. 역시 그날도 엘리베이터 1평 남짓한 공간에 어색함이 돌았다. 혹시나 할머니가 저번처럼 무슨 말을 걸어올까 입꼬리를 약간 올리고, 눈 맞출까 머리 꼭대기 빨간 층수표시에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허리가 굽어서 표정을 잘 볼 수 없었지만 아마 할머니께서도 나와 같이 어정쩡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계셨던 것 같다. 예상과 달리 할머니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시는 것 외에 별말씀이 없으셨다. 지난번 엘리베이터에서의 만남은 아파트 입구의 계단이 너무 버거웠는지 한참이나 가쁜 숨을 몰아 쉬셨다. 그 와중에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기다려준 내게 고마움을 느끼셨는지 내 젊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그 시절이 너무너무 그립다며, 진심으로 내 젊음에 찬사의 눈길을 보내셨더랬다. 오늘 보니 그는 말을 아끼고 매우 겸손한, 매너 있는 할머니셨다.


오늘처럼 볕이 좋은 날에는 유독 지팡이를 집은 노인분들이 더 눈에 띈다. 듬성한 머리지만 말쑥하게 운동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 옆에는 머리가 전부 깨끗이 하얗고 귀여운 할머니가 계셨다. 깔끔한 옷차림의 할아버지들은 대개 할머니가 계시더라. 다정하게 의지하며 걷는 노인 내외를 보며 '저분들처럼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아내에게 얘기했던 우리 앞 날의 몽글진 표상이었다. 손 맞잡은 그 옆을 빠르게 지나치면서 불현듯 걱정이 스쳤다. 사실 누구에게 의지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외로워 보이는 노년이 길거리에 더 흔했기 때문이다.


4차선 차도를 건너기 위해 들어선 지하도의 컴컴한 계단을 내려서니 지하통로를 비추는 블록거울을 통해 얼핏 검은 실루엣을 보았다. 한낮의 눈부신 햇살로 한 껏 쪼여놓은 동공 때문에 그늘진 지하도가 더 으슥했다. 섬뜩함을 지우기 위해 두 눈을 찡그리고 거울을 다시 살폈다. 지하도 저 편으로 누군가 이미 멈칫 멈칫 불편하게 걷고 있었다. 초췌함이 묻어나는 빵모자를 푹 눌러쓰고 날씨에 맞지 않은 두꺼운 패딩 위로 왠지 모를 추위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그날따라 지팡이에 기대어 절뚝거리며 걷는 그 할아버지의 불편함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아내야 할 앞 날 어딘가에 분명 있을 그 불편함 말이다.


백수인만큼 신중하게 또 열심히 가성비를 따지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촘촘하게 현재만을 골몰했던 마트에서의 시간을 지나 집 앞 근린공원을 지나 칠 때즈음 이었다. 잊혔던 먼 훗날의 미래, '노년'의 관념들이 내 마음을 다시 꼬집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10km 정도 떨어진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올 때는 이미 두 세시간 훌쩍 지난 시간이었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공원에 나와 계셨던 모양이다. 그것도 홀로.


그의 어깨와 팔이 공원의 운동 기구와 함께 어렵게 돌아가고 있었다. 굽은 허리를 간신히 피고, 운전대처럼 생긴 동그란 원판의 손잡이를 쪼글한 오른손에 꼭 쥐고 묵묵히 기구를 돌리시는 뒷모습에 나는 괜한 애처로움을 느꼈다. 정작 할머니의 표정은 담담했는데도 말이다. 일면식 없는 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비슷한 얼굴이다. 공원의 노인분들은 그저 노년의 수레바퀴를 각자 열심히 돌리고 계셨을 뿐이었다.


언젠가 나도 불편해지고 아플 것이고 혼자일 것이다. 더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는 그 노년에 대해서 충분히 사유하지 않으면 나는 불행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마주 한다. 홀로 외롭게 걷는 뒤안길의 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지금의 생동하는 젊음 위에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은 상상조차 가늠이 어려운 그것들을 내밀하게 고민해 볼 심산이다. 분명한 건 그 시간을 묵묵히 담아내면서 솔직하게 젊음을 예찬하며, 말 수는 적지만 행동에서 묻어나는 매너를 젊은이들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구체적이고 멋진 노년을 내가 꿈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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