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 망상의 경계에서

나무, 흙, 물, 돌에 기록된 우리들의 흔적

by 바람

생각이 많은 요즘, 삶에 대한 '불평등'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해본다. 우리나라의 최근 갈등에 대한 담론들이 정치, 남녀, 세대, 민족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생산되고 있고 그 배경의 한 축은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평등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그 박탈감으로 이어지는 열등감, 그로 인해 발생되는 감정들이 분노와 불만으로 이 사회에 화수분처럼 표출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불평등의 한 면을 지리학적 차원으로 설명했다. 지구라는 행성의 광물과 자원을 누군가는 먼저 선점하고 가공해서 자본을 불린다. 어느 시점부터는 돈이 돈을 버는 규모의 경제로 거듭나 가진 자가 더 갖고 못 가진 자는 계속 못 갖는 형태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럼 불평등의 시작은 과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빨'로 정리될 수 있는 단순한 개념이었던가? 운칠기삼, 치명적으로 회의적인 설명이다. 인도의 경우 현생의 삶에 대한 불평등은 등가 교환의 법칙과 같이 전생이나 후생에 대한 보상이나 처벌로 해석한다고 들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나는 결이 다르면서 비슷한 판타지를 갖고 있다.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발생된 이 불평등조차 어떤 거대하며 필연적인 자연의 법칙으로 갈무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자연의 법칙이 나와서 말이지만, 문득 정재승 박사가 알쓸신잡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가 지금 호흡하는 공기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숨결이 묻어있다는 내용이다. 53년 동안 이순신 장군이 내뱉은 날숨의 기체 분자들이 지금 우리의 호흡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뭔가 자연의 법칙에 위대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불평등이라는 개념을 위대한 자연의 법칙으로 재해석할 수 있으며 인도인들의 신념에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논리와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이 우주와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모두 특정의 주파수와 파장으로 읽힌다. 흔히 뇌에서 나오는 에너지 혹은 파동을 주파수로 읽어 감마, 알파, 델타 등으로 정의하고 해석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행동, 생각과 감정들은 모두 그 주파수로 읽히고 구분된다. 이를 쉽게 에너지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생겨난 에너지는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관계 안에서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은 타인에게 좋은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쁜 에너지는 또 그 나름의 나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말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너지는 이순신 장군의 숨결처럼 긴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또 어딘가에 에너지로 기록되는 것이 아닐까? 모든 물질이 어떤 의미에서 에너지 파동으로 영향을 서로 주고 받는다면 인간으로부터 발생되는 에너지는 지구의 곳곳에 기억, 보존 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하거나 악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우리의 행동들은 어쩌면 나무와 돌, 공기와 물 자연의 모든 것에 기록되고 있을지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나무의 테와 같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삶의 법칙을 형성케 하는 근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계속해서 기록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확대해서 보면 전생이나 다음 생의 삶은 어쩌면 자연의 법칙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놓은 에너지와 그 기록들의 원인과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이야기가 성립되려면 먼저 전생이나 사후세계와 같은 초자연적 개념들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에너지의 기록들이 지구의 곳곳에 기억되고 운명이라는 틀을 직조하고 촘촘하게 연결된 실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말은 분명 망상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선택과 행동이 완벽하게 정해져 있다고 보는 운명론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는 본인의 생각과 행동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나쁜 에너지로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면 그 행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나 세대 간의 갈등, 남녀 갈등, 삶의 피로도가 목에 차 틈만 나면 남을 헐뜯고 싸우려고 덤벼드는 우리들 스스로가 한번 이 망상에 빠져봐도 좋겠다. 전지전능한 신이 있어서 사후에 우리에게 상과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우리의 행동이 바로 스스로에게 뒤따를 수 있다는 공상 말이다. 특히 전쟁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아프게 하고 있는 러시아의 수장 푸틴에게도 이 거대한 자연 법칙이 진심으로 적용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인해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수많은 불평등 속에서 좌절한 많은 사람들이 이 망상으로 조금은 위로받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짧은 글쓰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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