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던가?
천천히 걷다 보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는 사실이 와닿는 요즘이다. 어느 쪽으로든 심하게 쏠려있던 감각기관의 세계가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랄까. 나는 지금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바쁘게 생활하던 직장생활의 쳇바퀴에서 내려와 교육의 영역을 걷는 길은 상대적으로 많이 느리다. 보폭도 적당하며 걷는 시간도 내가 원하는 만큼 적절하다. 원래 내 안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새롭게 열어 그 안에 담기는 많은 것들을 음미하며 지낼 수 있게 된 이유다. 오늘 담은 주제는 '밥'이다.
현재의 직장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고 있노라면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시침과 분침이 하늘을 향해 겹치는 시간을 소망했고 그 시간의 밥굽는 냄새가 선명한 설렘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무슨 반찬일까, 좀 더 많은 양의 불고기가 내 식판 위에 오르기를 바랐던 천진난만한 즐거움, 점심시간을 알리는 스피커와 멜로디의 음표와 선율을 똑똑히 상상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밥이 보이는 하루를 걸을 수 있었던 시간이 그때였다.
바쁜 쳇바퀴 위에서 잠시 내려올 수 있는 점심시간마저 워킹런치로 대체하기 일쑤였던 일전의 직장생활은 밥이 보이지 않았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던가?'되뇌면서 한숨을 쉬고 이어나간 업무와 그 일터의 기억에서 식사는 단지 먹을 때가 되어 먹는 의무적인 행위로 기억된다.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던 감각기관에서조차 그 당시의 밥냄새는 모두 다 획일적이다. 제육 아니면 돈까스 정도가 위장에 내려앉아 소화가 되지 않은 채 무거운 그날의 몸과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는 정도로 점심을 기억한다.
점심을 감각하는 시간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내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12시 정각에 만나는 오늘의 메뉴는 무엇일까 상상하며 뛰쳐나가는 시간, 무겁지 않은 출근이라는 내일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만드는 건 다음 날의 밥이 분명하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우리의 삶에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점심의 의미를 나는 그렇게 음미했다. 점심이 보이는 시간을 걷고 있다는 건 분명 지금 내가 건강하게 일하고 있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