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눈이 시원해질 만큼 빛나는 무엇인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

by 바람

'햇빛이나 달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네이버에 검색한 윤슬의 뜻이 모호한 면이 있어 매력적이다. 모호함은 내가 살아가는 직장, 사회, 관계 그 세상에서 항상 경계의 대상이지만 유독 나는 그 모호함에 매력을 느낀다. 반짝이는 빛 물결을 감각하는 그 순간의 감정도 뭔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함이 있다. 활자로 보다 구체화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햇빛이 쨍한 어느 날의 물가에도 윤슬이 있지만 내가 감각하는 윤슬은 태양아래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올봄, 분홍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거리에서 목도하기도 했으며, 사무실 창밖에서 내다본 여름산의 한 장면에도 그들은 있었다.


쌩하고 지나치는 차도의 경계석에 옹기종기 수북이 모여있는 분홍들은 지나가는 것들의 가벼운 바람에도 앞으로 옆으로 데구루루 춤사위를 뽐낸다. 그들이 빠르게 구르며 내보이는 흰 속살은 앞면에 쨍한 분홍색과 대비를 이루며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내게는 윤슬이었다.


청록이 완연한 6월이다. 사무실 창문을 꽉 채운, 초록색이 꽉 찬 뒷산의 자태는 특히 여름의 출근과 퇴근 중에 감각할 수 있는 나만의 낙이다. 10분 일찍 출근해서 산멍을 때리고 있노라니, 저 멀리서 무엇인가 반짝인다. 가까이 가보지 않았지만 추측건대 플라타너스 나무가 아닌가 싶다. 그 큰 산 언저리 어딘가, 유난히 작은 바람에도 파르를 떨리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이 흰 속살을 내보이는 모습이 내게는 또한 윤슬이었다.


종합해 보자면 속살을 내보이는 그들에게서 나는 윤슬을 본다.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면 그 흰 속살이 햇살을 받아 더 눈부시게 보이는 것이다. 문득 우리도 그런가 싶다. 보이고 싶지 않은 속내와 속살이 드러날 때 그 이가 오히려 더욱 빛나 보일 때가 있다. 자신은 빛나고 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분명 그 의도되지 않는 순수한 윤슬을 본다고 생각한다. 그 오묘한 감각이 바로 인연의 시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시간, 특정한 환경이나 대상은 모호하지만 그 빛은 그 무엇보다 선명하다. 눈이 시원해질 만큼 빛나는 무엇인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윤슬을 통해 어림짐작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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