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손가락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땅콩을 까먹는다. 건조하게 바싹 마른 껍질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엄지와 검지에 힘을 꽉 주면 눈과 입이 모이면서 안면에 힘이 들어간다. 잠시 숨을 멈춘다. 힘도 써야 하고 껍질이 부서지며 날리는 미세한 먼지가 코에 날아들까 봐. 그 안에 짙은 갈색의 알이 부서지지 않고 온전하면 참으로 반갑다. 곧이어 노랗게 익은 진짜 땅콩알이 나오면 바로 먹고 싶은 마음보다 모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한 알씩 그렇게 모아서 여러 알이 빈 용기에 채워지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서다. 다만 아내가 주워 먹는 속도가 더 빠르니 마음이 조금씩 분주해진다.
열 댓 개를 쉼 없이 까면서도 으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힘을 주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땅콩을 까면서 문득 밀려오는 손가락의 통증에 손을 들여다본다. 손가락 끝이 벌겋게 물들었다. 몇 알 되지 않지만 노오란 알몸으로 귀엽게 놓여있는 땅콩들이 얼른얼른 빈 용기에 쌓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통증을 쉬이 이겨낸다. 몇 번 손을 털고 나서 계속되는 손가락 노동에 제법 알들이 모인다. 아마도 아내가 땅콩으로 꽤 배를 채운 모양이다. 조금씩 쌓이지만 그래도 내가 바라는 모양에 턱없이 부족하다. 문득 투명 용기에 알이 꽉 들어찬 땅콩 제품들이 비싸다고 투덜거렸던 내가 견문이 짧았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땅콩 까는 수분의 시간 속에 조금씩 모이는 땅콩알, 그리고 그 알에 깃든 마음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생각을 다시 더듬는다. 먼저는 관계가 담겨있다. 아내가 입안으로 가져가 고소한 그 맛을 정성껏 음미하는 모습에 나는 흐뭇했고 손은 분주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노력으로 취한 노오란 땅콩알의 즐거움을 그가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그렇게 몽글한 마음이 빈 용기를 채워갈 즈음, 단단한 껍질을 부수기 위해서 벌겋게 익은 내 손가락을 그가 눈치챈 모양이다. 이후부터 땅콩이 좀 더 쌓인다. 벌게진 두 손가락이 그만 쉬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근데 아닐 수도 있다.
그 배려의 온기가 이내 스스로를 생각하는 내밀한 마음으로 옮겨진다. 정작 고통을 감수하며 까놓은 땅콩 맛은 어떨지 궁금했다. 문득 입으로 가져간 땅콩에서 적당히 기름지고 고소한 맛에 버무려진 나를 위한 아기자기한 마음이 있었다. 다만 내 입으로 가져간 땅콩은 그가 취한 땅콩보다 그 수가 현저히 적었다. 어린 시절부터 닭 다리를 찾아먹기 보다 남에게 권유하는 것이 더 편했던 나에게 새삼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다. 욕심으로 채워진 검은 속 들킬까봐, 미움살까 괜시리 집지 않았던 닭다리보다 너를 위해 열심히 까는 땅콩에서 오묘한 묘미를 알았다. 너를 향한 사랑의 반로.
나를 사랑한다는 일이 우리가 접하는 교훈과 같은 이야기마냥 흔하지만 나를 포함해 어떤 이에게는 세상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백수로 생존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서도, 스스로를 돌보고 생각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땅콩 까는 일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사실 내 입으로 들어간 땅콩의 수는 아내의 것을 절대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제법 열심히 까먹었다. 게다가 호두는 내가 배로 먹었다. 요컨대 벌겋게 변한 손가락 노동의 대가만큼 내 입도 꽤 돌봤다. 이렇게 사소한 일에서조차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면 대관절 그 누구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