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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재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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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Aug 30. 2018

나무

#96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


p.77

   프레드와 뤼세트는 서로 바싹 몸을 기대었다. 프레드는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결국 그들의 자식들도 부모를 버린 셈이었다. 그들의 사랑하는 아들딸마저도 부모를 CDPD에 넘기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프레드는 설마 그런 일이 있으랴하고 생각했다. 다른 집 자식들은 다 그래도 자기네 자식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맹문이라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그는 그런 행동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을 배척하는 운동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처음에 노인들을 지지했다. 입에 발린 소리일지언정 노인 공경의 미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노인들을 여론의 심판에 넘겨 버렸다. 한 사회학자가 텔레비전 저녁 뉴스에 나와서 사회보장의 적자는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자 노인 배척 운동의 전선에 생긴 그 돌파구를 이용하여 정치인들이 공격에 가세하였다. 그들은 의사들이 너무 쉽게 약을 처방한다고 비난하였다. 의사들이 공익은 뒷전으로 돌리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마구잡이로 노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는 갈수록 나빠지기만 했다. 학자들의 분석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폭적인 예산 삭감이 이어졌다. 먼저 정부는 인공 심장의 생산을 중단시켰다. 그다음에는 피부와 신장과 간의 대용물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동결시켰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를 통해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노년기와 극노년기의 국민들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함으로써 국가가 민심에 반하는 세금을 부과하게 하고, 프랑스 사회가 퇴보하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나라의 모든 경제 문제가 노인의 증가와 연결되어 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상한 것은, 그 담화가 75세 노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고 그의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자체가 상당 부분 첨단 의학의 보살핌 덕분에 발휘되고 있는 것임에도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담화가 있은 뒤에 70세 이상의 노인들에 대해서 약값과 치료비의 지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75세부터는 소염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80세부터는 치과 치료에 대해, 85세부터는 위장 치료에 대해, 90세부터는 진통제에 대해 환급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또 100세 이상의 노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일절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광고 제작자들은 그런 흐름에 편승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반노(反老)> 캠페인으로 정치인들의 뒤를 따랐다. 노인을 비하하고 배척하는 광고 문구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어떤 개먹이 광고에서였다. 이 광고에는 한 노인과 개가 등장한다. 노인이 개밥 그릇에 담긴 먹이를 훔치려고 하자, 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댄다. 그러면서 <폴리키, 바로 당신의 할아버지가 꿈꾸는 먹이입니다>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그즈음에 보건복지부에는 이런 말이 들어간 포스터가 나붙었다. <65세는 괜찮아요. 70세요? 손해의 시작이죠!>

   노년의 이미지는 점차 사회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와 결합되었다. 인구 과밀, 실업, 세금 등이 모두 <자기들 몫의 회전이 끝났음에도 회전목마를 떠나지 않고 있는 노인들>탓이 되어 버렸다.

   레스토랑 문에서 <70세 이상 출입 금지>라는 팻말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행여 반동분자로 몰리게 될까 봐 이제 아무도 노인들을 옹호하려 들지 않았다.





p.160  

   정신에도 천장이 있다면, 그의 천장이 갑자기 훌쩍 높아진 셈이었다. 과학자라는 사람들은 거창한 학위와 쟁쟁한 직함을 내세우면서 지식이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가르쳐 주는 데에 인색하기 십상이었다. 그는 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 줄 때마다 마치 그들이 잡고 있는 줄을 조금 늘여 주기라도 한 것처럼 겸허하게 감사를 표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의 천장이 높아지고 보니, 그 모든 지식이 한낱 감옥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줄을 조금씩 늘여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를 여전히 매어 두고 잇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박일 뿐이었다.

   우리는 줄에 매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공인된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유롭다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다.

   무릇 학문이란 자유의 행위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미리 짜놓은 틀이나 숭배의 대상이나 지배자나 선입견에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 그런 자유가 보장될 때 학문은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17은 엄격한 계급 제도의 최상층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고, 지적인 위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17은 그의 감옥이었다. 그가 남들보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수와 숫자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지극히 초보적인 지식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하나의 대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대륙의 기슭만을 겨우 밟아 보았을 뿐이었다.

   뱅상은 지평선을 응시하다가 자기의 신관복을 벗었다. 신관 겸 기사라는 신분을 더는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진리 탐구자였다. 수와 숫자의 모든 한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세계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유는 정신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수의 무한성을 즐기게 될 것이었다.



p.164

   파르밀의 사상은 느리게 전파되었다. 그것을 몽매한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것은 황무지에 밀의 씨앗을 뿌리는 것만큼이나 보람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10의 수호자들>은 백성을 무지 속에 가두어 둠으로써 이익을 얻는 모든 사람과 모든 공식 기구의 지지를 얻었다.

   11이나 12, 13,1 4, 15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살해 행위가 도처에서 자행되었다.

   뱅상은 자기가 사람들의 정신을 갑자기 고양시키려고 한 것의 반작용으로 무지와 몽매로 되돌아가려는 광신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급격히 확산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10의 수호자들>은 갈수록 자기들의 의도를 더욱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독선에 빠진 그들이 너무나 당당하게 폭력을 다반사로 휘두르는 바람에 10을 넘어서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침묵을 지키거나 후미진 곳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

   파르밀은 불의와 학살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잘 버텨 나갔다. 시민들은 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여 마법처럼 경이로운 원주율과 황금비 등을 발견했다. 그들은 무리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무한대와 무한소의 개념을 생각해 냈다.

   같은 시기에 <10의 수호자들>은 공포 정치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폭정에 굴복하였다. 공포는 호기심보다 더욱 강력한 동인이었고, 비굴함은 전염병처럼 퍼지기 쉬운 태도였다. 게다가 <10의 수호자들>은 정보 조작의 달인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들의 악행을 파르밀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기가 일쑤였다. 그들이 그렇게 왜곡을 일삼아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관의 도시에서조차 10보다 큰 수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도시의 담벼락에는 <모두가 10의 그늘 속에서 평등하다>라든가 <파르밀의 이단자들을 처단하자>라는 구호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파르밀은 마치 어떤 역병이 돌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격리되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파르밀은 지식이라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몹쓸 도시였을 것이다.

   아무도 이 도시 국가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파르밀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럼으로써 수에 관한 지식의 불씨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그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파르밀 백성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뱅상은 파르밀의 어느 거리에서 어떤 광신적인 <10의 수호자>에게 암살당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호호백발의 노인이 된 뒤의 일이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싸움에서는 천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p.170

   어느 날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은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수면과 음식에 종속된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때부터 귀스타브는 커다란 칠판에 어떤 실험과 관련된 도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일이 마무리된 뒤에는 갖가지 전자 기구를 주문했다. 그런 다음, 예전에 연구를 함께했던 동료 몇 명을 모아서 그들과 함께 이러저러한 수치를 계산하고 수정하기를 여러 차례 거듭하였다.

   귀스타브는 자기가 행하고자 하는 실험이 어떤 것인지 아내에게 설명했다.

  「문제는 육신이야. 우리 몸은 살로 둘러싸여 있고 피와 뼈로 가득 차 있어. 이 살과 피는 유지와 부양을 요구하고, 세월이 흐르면 쇠약해져. 우리는 육신을 지켜 주고 먹여 주어야 하며 병이 나면 치료를 해줘야 해. 육신은 수면과 음식을 필요로 하지. 하지만 우리의 뇌만 놓고 보면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아.」

   그녀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 뇌가 하는 활동의 대부분은 다른 기관들을 관리하는 거야. 우리 몸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일에 우리 에너지의 대부분이 허비되고 있는 셈이지.」

   「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속여. 감각 기관들이 보내는 신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세계를 해석할 보면 미망에 빠지기 십상이지. 몸은 우리 생각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것을 가로막아.

   그는 물이 담긴 유리컵을 일부러 쓰러뜨렸다. 물이 카펫 위로 흘렀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 컵과 물이 있어. 육체가 컵이라면 정신은 물이야. 컵이 없으면 물이 계속 흐르듯이, 육체가 없으면 정신은 자유로워져.

   한순간 발레리는 남편이 미쳐 버린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반박했다.

   「꼭 그렇지는 않아. 우리는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육체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뇌를 따로 떼어내어 영양액 속에 보존하면 되는 거야.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도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p.306

   어린 신들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 인간을 관리하는 나의 능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예를 들어 나는 처음에 내 백성들에게 더없이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주고자 했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처음 천 년 동안에는 전제군주제의 단계를 어느 정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카이사르의 경험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권하기 전에 로마는 공화제 사회였다. 카이사르는 황제가 되려다가 살해되었다. 그 뒤로 로마 인들은 이웃나라의 왕들보다 덩구 포악한 황제들의 지배를 받았다. 민주주의는 진보된 국민들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가장 알맞은 때를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수플레를 만드는 것과 같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으면 모든 것을 망친다. 그건 재난이다.

   내가 수업을 통해 배운 것이 또 하나 있다. 전쟁은 문명을 유지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처음에는 요새를 만들고 군사들을 잘 무장시켜서 외적의 침입에 철통같이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두 번째 천 년이 지나고 나서는 그런 정책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에너지를 전쟁 -방어적이든 공격적이든- 에 쏟다 보면 산업과 무역, 문화, 교육, 과학 기술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없게 된다. 이것은 패망의 길이다. 진보된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효율적으로 무장한 나라들을 당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초기에는 전쟁이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웃나라들과 가능한 한 일찍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긴요하다. 무역과 문화ㆍ학술 교류를 발전시킴으로써 평화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조 신의 세계를 참고해 보더라도, 호전적인 문명은 결국 모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히타이트와 바빌론이 그러했고 페르시아와 이집트와 로마가 그러했다. 이것은 중요한 교훈이다. 정복을 추구하는 나라에게는 미래가 없다. (중략)

   우리 어린 신들은 누구나 조금은 우쭐대는 경향이 있다. 그건 신의 속성이라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시조 신이 이르신 것 처럼, <서로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험담은 종교 전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스갯소리를 하고 싄소리를 칠지언정 다른 신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비슈누가 내 등을 치면서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어본 그 어떤 험담보다 고약한 말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참 재밌어. 하지만 너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니?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높은 차원의 신들이 우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게 아닐까? 마치 우리가 인간을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말이야.」

   까닭은 확실치 않지만 그는 그 말을 듣고 완전히 혼란에 빠져 버렸다. 내가 어떤 우월한 존재들의 장난감이라니!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낵 자유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어떤 존재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라니! 왝. 나는 구토를 하고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이튿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비슈누에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신들 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신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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