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획자들과인터뷰를 진행하고 이야기를나누면서 제가 공통으로느낀 점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다앙한 분야에서 깊은 문화적 취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이든 한가지 분야에 깊이 몰두하는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쿄라는 도시야말로 이러한 기준을 층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환경과 요소 들이 갖춰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생겨난 도쿄만의 문화, 도쿄의 거리를 다니며 느껴지는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지금의 도쿄다반사를 운영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일본이 최고의 경기 호황을 누리던 시절, 그때를 회고하는 인터뷰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분야에서 무엇 이든 세상 안에 실현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한 생활 유지도 가능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자신만의 취향과 신념을 콘텐츠로 자신 있게 만들어낸 사람들의 문화적 유산이 모여, 바로 지금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신(scene)을 지탱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여러 기획자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도쿄를 살아가고 있는 사탐들의 생활을 새롭게 살펴보고, 우리가 몰랐던 도쿄의 숨은 면과 매력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p.17
그 외에 <안도프리미엄>을 창간할 때 고려하셨던 점이 있으신가요?
<안도프리미엄>을 창간할 때 저희가 정한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효율이 좋은 것보다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 '따끈따끈 새로운 것보다는 두근거리는 것', 마지막은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보다는 높은 품질의 것'이에요. 그리고 이 세가지 요소가 이미지로 표현된 홍보용 사진과 포스터를 잔뜩 만들어서 여러 전철역에 광고를 했습니다. 창간호 때 했던 프로모션이었어요. 그리고 이 세 가지 원칙 중에서도 '화려하고 호화로운 것보다는 높은 품질의 것'이 <안도프리미엄>이 목표로 하는 지점과 가까울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로움과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은 다릅니다. 유명한 브랜드 제품들을 구매한다거나 굉장히 좋은 차를 타고 세련된 집에서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요. 하지만 금전적인 윤택함만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무엇이든지 살 수 있다고 해도 막상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몰라서 고를 수 없는 것도 있어요. 글로벌 명품 브랜드라든가 누구나 알고 있는 로고나 심볼이 있는 제품이 아니더라도 상질의 물건, 즉 높은 품질의 물건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걸 자기 나름대로 골라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로 만들 수 있다면 그쪽이 더 멋지지 않을까요?
p.23
어떤 의미로는 <안도프리미엄>이 커뮤니티나 플랫폼이 된다는 느낌이네요.
네, 그런 걸 목표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커뮤니티나 플랫폼의 형태가 중심이 된 잡지의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하지만 현재 전 세게적으로 잡지의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는 시대이고, 종이로 콘텐츠를 만들어서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잡지도 변화해야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도 적응하는 등 그 이상의 영역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아직 잡지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해요. 잡지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세계관 같은 것도요. 웹사이트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잡지가 추구하는 세계과 관점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웹사이트에서는 기본적으로 기사가 하나씩 쪼개져 있는 데다, 계속 정보를 업데이트한다고 해도 인쇄된 상태의 잡지처럼 패키지의 형태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안도프리미엄>은 그 형태 안에 저희만의 관점과 시각을 담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이 지점을 계속 고민하고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p.154
다른 지역과 다른 도쿄만의 커피와 커피 신scene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아, 그리고 언제부터 스페셜티 커피의 흐름이 이렇게 도쿄에서 유행했나요?
우선은 커피 업계의 여러 전설적인 크리에이터 분들이 도쿄의 여러 장소에 커피 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킷사텐만 해도 이러한 문화적 취향이 반영된 일본 독자적인 카페 문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킷사텐마다 오너의 취향과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그 공간에서 제공되는 커피, 토스트 같은 디저트 메뉴, 대화의 내용, 음악, 신문, 자리에 앉는 방법 등 각각의 킷사텐마다 똑같은 요소를 찾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스페셜티는 언제부터 도쿄에서 유행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쿄에서는 약 50년 전부터 킬리만자로나 블루마운틴 같은 로컬 커피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서 새로운 문화나 세련된 경향을 받아들이는 토양은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옛사람들의 발자취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도쿄 커피 신이 사실 놀랄만한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p.209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생활 장소로서의 도쿄의 장단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A: 장점을 말하면 아마 후쿠오카와 비교가 되어 버릴 텐데요. 후쿠오카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장소인데요. 항상 동네와 연결된 느낌이 있다고 할까요... 외부 세계 혹은 사람과의 관계가 점점 연결되어가면서 생활을 하는 감각이 있어요. 그런 연결고리가 사라지게 되면 갑자기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고요. 그런데 도쿄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나 할까? 혼자 있는 것이 괴롭지 않은 장소라는 느낌이에요. 잘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느낌이에요(웃음).
p.253
카페와 책, 음악은 공통점이랄까 접점이 많은 것 같아요. 카페 또는 문화공간으로서 추구하신 헤이든북스의 분위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저는 하나의 장소를 만들고 오픈하는 것이 오너 자신의 특정한 미의식을 보여주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너의 취향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도로 남겨두고, 대신 그 분위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게 해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기분 좋게 대접해드릴 수 있을까?'를 찾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헤이든북스가 갤러리로서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운영하는 형태의 갤러리는 아니었어요. 어디까지나 전시를 하는 작가분과 전시를 보러 오시는 손님분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이 공간에서 더 기분 좋게 사람들을 만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운영했던 것 같아요. 손님을 거울삼아 헤이든북스 공간의 분위기를 유연하게 바꿔가면서, '현재'라는 시대와 잘 공명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헤이든북스는 서점과 카페 공간이 함께 있어서인지 북카페로 미디어에 많이 소개가 되었는데요, 저는 식음료 업장의 점장으로서 카페를 운영하려는 의지는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오랫동안 책과 잡지를 만들던 현장에 있던 경험을 살려 '공간이라는 매체'를 만든다는 의식을 했습니다. '소리 = 음악', '언어 = 책'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가와 뮤지션, 아티스트와 함께 평소 생각한 것을 실현해보는 프로젝트를 해보거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이야기하고 교류하는 하나의 문화적 공간이자 살롱으로 여기고 찾아와주셨으면 했어요.
이러한 저의 생각을 구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가 이곳에서 진행한 개인전, 전시회, 라이브 이벤트였어요. 넓지 않은 가게였지만 업라이트 피아노를 둔 것도, 평소에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악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돌발적으로 연주를 시작하는 재미있는 풍경을 눈앞에서 목격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덧붙이자면,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고유의 특색이 있고,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조용한, 하지만 자유롭게 참가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의식하며 운영을 했습니다.
p.257
요즘 서울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문화적으로 좋은 취향을 선보이려고 하는 여러 장소에 갔을 때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게 됩니다. 하야시타 씨가 생각하는 좋은 취향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걸까요?
저는 라이프스타일이란 자신의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가 만족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같네요. 자랑할 필요도 없고, 생활하는 방식을 멋지게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지 않아도 되교요, 주변에 영향을 받거나 감화되어서 무리하게 충실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취향의 라이프스타일이란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지 일부러 찾아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p.264
여행지에서도 일상에서도,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며 경험하는 인간적인 관계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 우연이 만든 교류를 즐기는 것은 평생에 한 번뿐인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고, 이를 계기로 '다음에 또 가고 싶다'라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생겨나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귀중한 교류를 나누는 친구이면서 정보원도 될 수 있고요.
무엇보다도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어떤 취향이든 자신의 머리로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비해 인공적으로 편리해진 사회와 각박한 인간관계의 세상에서 원시적인 구승전달이야말로 지금의 시대에서 정말 귀중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