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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Dec 18. 2017

권력이동 1

#40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1


   폭력은 설사 효과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저항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폭력의 희생자나 그 생존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반격하고자 노리게 된다. 그러나 폭력 또는 동물적 힘이 갖는 가장 중요한 약점은 그 완전한 비융통성에 있다. 폭력은 응징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요컨대 폭력은 저품질 권력(low-quality power)이다.

이에 반해 부는 훨씬 더 우량한 권력의 수단이다. 두둑한 돈 지갑은 훨씬 더 융통성이 있다. 부는 단지 협박하거나 처벌을 내리는 대신 정교하게 등급을 매긴 현물의 보상-보수와 뇌물 또는 현금- 을 제공해 준다. 부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는 물리력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있다. 부는 중품질 권력(medium-quality power)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고품질 권력(high-quality power)은 지식의 적용에서 나온다. 고품질 권력은 단순히 영향력을 미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기 뜻을 관철시켜 다른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능력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고품질 권력은 능률을 수반하므로 목표 달성을 위해 최소한의 권력수단을 사용한다. 지식을 사용하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계획은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심지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계획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믿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른바 정보시대에 들어서면 폭력 및 부를 지식과 구별짓는 더 한층 중요한 마지막 차이점이 드러난다. 원래 물리력과 부는 더 한층 중요한 마지막 차이점이 드러난다. 원래 물리력과 부는 모두 강자와 부자의 소유물이다. 지식은 약자와 가난한 자도 소유할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지식이 갖는 진정으로 혁명적인 특징이다.

   지식은 가장 민주적인 권력의 원천이다.




   완전한 의미에서 <권력이동>은 단순한 권력의 이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이동>은 지식, 부, 물리력의 혼합물인 권력의 본질의 급격한 변화이다.



   공장굴뚝 혁명이 일어나기 전, 우리 조상들이 땅에 얽매여 살고 있을 당시에는 전세계가 오늘날의 가장 빈곤하고 자본이 부족한 나라들 못지 않게 경제적으로 후진 상태에 있었다. 수십억 달러의 차관이나 대외원조를 제공해 줄 <선진국>도 없었다. 그렇다면 초기의 굴뚝산업을 뒷받침해 준 최초의 재산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 재산의 대부분은 직접, 간접으로 약탈, 노략질, 해적행위에서 ... 노예주인의 채찍에서 ... 토지 정복에서 ... 산적 행위 ... 강탈 ... 귀족들의 농민 협박에서 ... 군주가 자신의 무사와 장군들에게 하사한 방대한 면적의 토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붉게 물든 이 부의 연못이 여러 세대에 걸쳐 아버지에게서 아들, 손자로 전해지면서 차츰 핑크빛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눈송이처럼 희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것이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태어난 최초의 철공소, 방직공장, 해운항로, 시계공장 등에 자금을 대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 초기의 공장들에서도 폭력은 여전히 부의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이들은 기계에 족쇄를 채운 채 구타당했고, 여성 광원들은 학대받고 강간당했으며, 남자들은 몽둥이로 다스려졌다.



   지금 법인체나 기업의 공공연한 폭력이 드물어진 한 가지 이유는 그 동안 여러 해에 걸쳐 폭력을 외부에 하청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체적으로 폭력을 생산하는 대신 사실상 정부의 서비스를 매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모든 산업국가에서는 국가폭력이 민간폭력을 대체하고 있다.

어떤 정부이건 정부가 구성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도하는 첫번째 일은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군대와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도록 법적으로 허용한 집단이다.



   더구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적 기업과 정부만이 비무장 노동자에게 물리력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었다. 그러나 그 후 공산국가의 경찰은 최루탄, 소방호스 그리고 그보다 더 불길한 장비로 무장한 채 1980년대 초에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을 분쇄하려고 시도했으며, 중국은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을 학살함으로써 피노체트의 칠레와 그밖의 여러 강력한 반공국가들의 군대나 경찰과 똑같이 행동했다.



   기업이 - 그리고 심지어 정부가 - 공개적 폭력에 호소하는 빈도가 과거의 산업시대에 비해 줄어들게 된 마지막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국민을 통제하는 보다 더 능률적인 도구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 도구가 바로 돈이다.



   기업계에 아직도 권력이, 그리고 심지어 폭력이 남아 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정작 놀라운 것은 물리력을 적용하는 <방법>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옛 노예상인이나 봉건영주를 오늘날의 세계에 옮겨다 놓으면 그들은 우리가 지금 노동자들을 덜 때리면서도 더 많이 생산하고 있음을 좀처럼 믿지 못하고 깜짝 놀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관습과 법이 모두 이같은 공공연한 물리력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부문에서의 이 같은 폭력의 퇴화는 기독교적 사랑이나 너그러운 애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진상은 이렇다. 폭력이 만들어내는 저품질 권력에 1차적으로 의존하던 사회적 엘리트 집단이 산업혁명 기간 중에 돈이 만들어내는 중품질 권력으로 이행했던 것이다.

   돈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거나 총부리를 옆구리에 갖다대는 것과 같은 당장의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은 상, 벌 <양면>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융통성 있는 권력의 도구가 된다.

종전에 돈이 사회통제의 주된 도구가 될 수 없었던 것은 인류의 대다수가 아직 화폐제도에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산업화 이전 시대의 농민들은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자급자족했다. 그러나 공장이 농장을 대신하게 되자 사람들은 이제 자기 소비를 위해 식량을 지배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돈에 매달리게 되었다.

   자가생산이 아닌 화폐제도에 대한 이같은 총체적 의존은 모든 권력관계를 변형시켰다.



   요컨대 산업주의적 국민국가의 등장은 폭력의 체계적인 독점화, 폭력의 법으로의 순화, 그리고 인간의 돈에 대한 의존도를 증대시켰다. 이 세 가지 변화는 산업사회의 엘리트 집단이 자기들의 의지를 역사에 강요하는 데 있어서 공공연한 물리력 대신에 더욱 더 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것이 <권력이동>의 참 의미이다. 그것은 권력이 단순히 한 개인이나 집단에서 다른 곳에서 이전될 뿐 아니라 엘리트 집단이 지배력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폭력, 부, 지식의 혼합물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모건처럼 자본의 문호를 제한하여 이를 지배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밀큰처럼 문호개방을 위해 싸운 사람들 간의 싸움은 모든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뉴욕주립대학의 야고(Glenn Yago) 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 자본시장을 개혁하여 문호를 개방하기 위한 오랜 투쟁이 계속되어 왔다. 19세기에는 농민들이 대출을 받기 위해 싸웠으며... 그 결과 농업생산성이 증대했다. 1930년대에는 은행 신용창구에서 배척받았던 군소기업들이 구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근로자와 소비자들이 주택소유와 대학교육을 위한 신용대출을 요구했다. 신용 문호를 제한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은 수요에 응답했고 그 결과 국가는 번영했다.



   밀큰의 자본 문호개방은 또한 신설업체들이 선진경제의 핵심인 새로운 서비스 및 정보산업 부문에서 커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이것은 밀큰의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공장지대 산업도 지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전체 경제가 공장굴뚝 시대에서 벗어나 이행해 가는 시기에 사업을 했기 때문에 이 근본적인 변화를 깨닫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또한 어떤 점에서는 이 변화를 촉진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언젠가 그는 <포비스>지에서 현재의 구조 개편을 미국의 산업시대로부터의 이행과 관계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이 희귀 자원이지만 오늘의 정보사회에서는 자본이 풍족하다'고 덧붙였던 것이다.



   밀큰의 고수익성 <정크 본드>가 종래의 금융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량업체>들이 아니라 아직 기반이 확립되지 않은 신설 회사들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그에게서 도움을 받은 대부분의 회사들이 신설업체가 많을 수밖에 없는 서비스와 정보 등 고도성장 부문의 회사들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결국 밀큰은 통화주파수 분할방식 자동전화(cellular telephone), 유선 TV, 컴퓨터, 건강산업, 탁아소 등 선진 산업부문들의 개편이나 자본공급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문들은 권력이 커지면서 구식 공장굴뚝 귀족의 지배체제에 도전했다.



   금융권력은 산업시대의 시초부터 유럽에 집중되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무렵에는 금융권력이 결정적으로 북아메리카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맨해튼 섬의 남쪽 끝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경제적 우위는 거의 30년 동안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 후로는 돈이 -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권력이 - 정신없이 돌아다닌 빠찡코 구슬처럼 줄곧 전세계 여기저기를 지그재그로 옮겨 다니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는 OPEC 카르텔이 유럽ㆍ북아메리카에서 말하자면 하룻밤 사이에 수십억 달러를 빨아들인 결과 지그재그의 이동방향이 중동으로 옮겨갔다. 이 오일 달러는 즉시 뉴욕이나 취리히의 은행계정으로 옮겨간 후 다시 대규모 차관 형태로 아르헨티나ㆍ멕시코ㆍ브라질 등으로 빠져 나갔다가 곧이어 미국과 스위스의 은행으로 되돌아 갔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무역패턴이 바뀌면서 자본은 다시 도쿄로 옮겨갔다가 다시 미국의 부동산ㆍ국채 등 소유재산으로 되돌아갔다.

   자본이 이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일 때마다 세계적ㆍ국내적 차원에서 권력의 재배분이 이루어진다. 오일 달러가 중동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아랍국가들은 국제정치에서 막강한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UN에서 더 한층 고립되었다. 석유를 필요로 하고 아랍의 대외원조를 갈망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예루살렘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오일 달러가 세계 각처의 언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리야트, 아부다비, 쿠웨이트의 호텔 로비에는 서류 가방을 든 탄원자들이 우글거렸다. 세계 각지에서 몽든 세일즈맨, 은행가, 중역, 장사꾼들이 체면 불구하고 이 사람 저 사람 가짜 왕족을 붙잡고 면담과 계약 체결을 애원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에 OPEC의 단결이 와해되고 석유값이 폭락하면서 광란이 가라앉고 아랍 정치권력도 시들해졌다. 지금은 세계 최대의 은행과 기업을 대표하는 탄언자 무리들이 도쿄의 오쿠라 호텔이나 데이코쿠 호텔의 로비를 서성거리고 있다.



   이같은 엄청난 진동에 의해 극적으로 표현되고 또한 <두 10월> - 1987년과 1989년의 10월 - 과 같은 증시의 폭등과 폭락으로 점철된 세계 자본시장의 변덕이 이처럼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낡은 체제가 날이 갈수록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징조이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국민경제와 세계의 금융안정 유지를 위해 마련되었던 낡은 안정장치는 그것이 보호대상으로 삼았던 낡은 공장지대 세계와 마찬가지로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다.

생산과 유통의 범세계화는 자본이 손쉽게 국경선을 넘나들 것을 요구한다. 그러자면 각국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쌓아놓은 낡은 금융장벽과 규제를 허물어버려야 한다. 그러나 일본과 유럽에서의 단계적인 금융장벽 완화 및 제거는 부정적인 결과도 함께 초래했다.

   자본의 자유화로 누구라도 즉시 이용할 수 있는 더 한층 커다란 합동자금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금융체제의 융통성을 제고하고 지역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판돈을 키워 대규모 파산의 위험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물론 화폐는 그것이 금속형태이건 종이 형태이건 간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핵 파멸이나 기술상의 대변혁이 없다면, 전자통화는 앞으로 더욱 확산되어 대부분의 다른 대안들을 몰아낼 것이다. 그것은 전자통화가 교환을 실시간 기록작성과 결합시킴으로써 전통적 통화제도로 야기된 여러 가지 손해와 비능률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 가지 놀라운 패턴이 밝혀진다. 자본은 화폐와 함께 변화하고 있으며, 이 두가지는 사회가 중요한 변혁을 겪을 때마다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화폐의 지식내용(knowledge content)이 변화한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농업시대의 화폐는 지식내용이 제로에 가까웠다. 실제로 이 <제1물결> 통화는 유형적으고 내구적이었으며, 또한 그 가액이 겉면에 표시된 숫자가 아니라 중량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의미에서 지식 이전(pre-literate)의 통화였다.

   오늘날의 <제2물결> 통화는 인쇄된 종이로서 상품의 뒷받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종이에 인쇄된 내용이다. 통화는 상징적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유형적이다. 이 형태의 통화는 대중교육과 함께 등장한다.

   <제3물결> 통화는 날이 갈수록 전자 펄스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통화는 덧없이 사라지고 비디오 스크린에서 모니터된다. 실제로 이 통화는 비디오 현상 그 자체이다. 지구를 가로질러 깜빡거리고 번쩍이고 윙윙거리며 돌아다니는 <제3물결> 통화는 그 자체가 바로 정보 - 즉 지식의 기초이다.

   날이 갈수록 물질적 형상을 버리고 있는 자본과 화폐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변화를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완전히 유형적인 형태에서 상징적인 형태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초기호적>인 형태로 옮겨가고 있다.



   낡은 <제2물결> 공장들은 기본적으로 상호교환이 가능한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다. 이에 반해 <제3물결> 기업체들은 다양하고도 계속 변화하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은 노동자들의 상호교환 가능성이 날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고용문제가 전체적으로 거꾸로 되고 만다.

   <제2물결> 사회, 즉 공장굴뚝 사회에서는 자본지출이나 소비자 구매력이 경제를 부양하여 취업기회를 창출해 줄 수 있다. 실업자 100만 명이 있다고 할 때, 이론적으로 경제를 부양하여 100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일자리는 상호교환이 가능하거나 숙련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아 한 시간 내에 익힐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실업자가 어떤 일자리라도 채울 수 있다. 순식간에 문제가 해소된다!

   오늘날의 초기호경제에서는 사정이 그렇지 못한다. 실업의 많은 부분이 해결불능의 양상을 보이고 전통적인 케인스학파나 통화론자의 치유책이 모두 별 효과가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케인스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통해 소비자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도록 촉구했다. 소비자는 돈을 갖게 되면 달려 나와 물건을 산다. 그러면 생산업체는 시설을 확장하고 고용을 늘리게 된다. 이것으로 실업은 끝난다. 이에 반해 통화론자들은 구매력을 필요한 만큼 늘리거나 줄이기 위해 금리나 통화량을 조작하도록 촉구한다.

   오늘날의 세계경제에서는 소비자의 주머니에 돈을 쏟아부어도 그것이 해외로 유출되기 때문에 국내 경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미국인이 새로 TV세트나 콤팩트 디스크 플레이어를 구입하면 그 돈은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등으로 유출될 뿐이다. 소비자의 구매가 반드시 국내 고용을 늘려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구식 전략에는 훨씬 더 근본적인 한 가지 결함이 있다. 그것은 이 전략이 여전히 지식 아닌 통화의 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실업이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취업기회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실업을 줄일 수 없게 되었다. 실업이 양적인 문제에서 질적인 문제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설사 실업자 1명에 대해 10명 꼴로 구인광고가 나더라도, 또는 실업자는 100만 명밖에 안되는데 1000만의 취업기회가 생기더라도 그 100만 명이 신규 취업기회가 요구하는 기능 요건에 부응하는 기량 - 지식 - 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취업할 수가 없다. 지금은 이 기능이 매우 다양하고 또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들을 전처럼 손쉽게 상호교환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제는 돈과 숫자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실업자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돈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따라서 그들 수준에 맞는 공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을 필요하며 또 도덕적으로도 옳다. 그러나 초기호경제에서 실업감축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부의 배분보다는 지식의 배분에 더욱 의존해야만 한다.



   17세기의 데카르트의 저서들에 크게 의존한 산업주의 문화는 문제와 과정들을 더욱 작은 구성부분으로 쪼갤 수 있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었다. 이같은 분해적 또는 분석적 접근방법이 경제학에 적용되어 우리는 생산을 일련의 단속적 과정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을 조달하고, 원료를 획득하고, 근로자를 모집하고, 기술을 배치하고, 광고하고, 제품을 판매, 유통시키는 모든 활동이 순차적인 것으로 또는 서로 독립된 별개의 것으로 이해되었다.

   초기호경제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생산모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체계적 또는 통합적 견해에 입각한 이 모델은 생산을 더욱 더 동시적, 종합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 과정의 부분들은 전체가 아니며 또한 서로 분리될 수 도 없다.



   저지식의 산업주의 경제에서는 부가 재화의 소유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재화의 생산이 경제의 중심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에 반해 기호적, 서비스 활동은 비록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비생산적이라는 낙인이 찍혔었다. 

   자동차, 라디오, 트랙터, TV세트 등 재화의 생산은 <남성> 또는 사나이 답다고 간주되어 <실천적>, <현실적> 또는 <실제적>이라는 단어들과 관련지어졌다. 이에 반해 지식생산이나 정보교환 업무는 대체로 <관료적>이라고 멸시받았고 무기력하거나 심지어 나약한 일이라고 간주되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여러 가지 비슷한 생각이 쏟아져 나왔다. 예를 들어 <생산>은 물자, 기계 및 완력의 결합이라는 생각 ... 기업체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유형자산이라는 생각 ... 국부는 재화의 매매의 잉여에서 나온다는 생각 ... 서비스의 매매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재화의 매매를 촉진시킬 뿐이라는 생각 ... 좁은 의미의 직업교육이 아닌 대부분의 교육은 낭비라는 생각 ... 조사연구는 허황된 이야기라는 생각 ... 그리고 대학의 교양과목은 기업의 성공과 무관하며 더구나 기업의 성공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물질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자본주의의 배비츠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공산체계에도 그들의 동류가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은 그 동안 자기들의 도식에 고지식 노동을 통합시켜 보려고 나름대로 고심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분야에서 행복한 노동자들이 톱니바퀴, 공장굴뚝, 증기 기관차 등을 배경으로 검은색 근육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을 수없이 창작해 냈다. 프롤레타리아의 찬양, 그리고 프롤레타리아가 변혁의 <전위대>라는 논리는 바로 저지식 경제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생각들은 단순히 고립된 의견, 가설, 사고방식으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모든 생각은 일종의 남성우위 유물론에 바탕을 둔 자기 강화적이고 자기 변화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물질우위론은 실제로 대량생산의 이데올로기였다. 이 이데올로기는 이를 주창하는 사람이 자본주의 지도자들이건 진부한 경제학자들이건 상관없이 <파이낸셜 타임스>지가 비꼬아 논평한 것처럼 <소비에트 계획입안자들이 좋아할 물질적 제품 우위론>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공장굴뚝 경제의 기득권자들과 급속도로 등장하는 초기호경제의 기득권자들 간의 권력투쟁에서 사용되는 일종의 몽둥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우위론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품이 그 실질가치를 제품에 내재된 지식에 두고 있는 오늘날 그것은 반동적이고도 어리석은 이데올로기다. 아직까지도 물질우위론에 입각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는 스스로를 21세기의 방글라데시로 운명짓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생산이라는 개념은 지금 저지식 경제학의 학자나 이론가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과정으로서 재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모든 단계에서 가치를 구현하고 부가해주는 것이 값싼 노동이 아니라 지식, 원자재가 아니라 기호들이 될 것이다.

   부가가치의 원천에 관한 이 폭넓은 재정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은 자유시장주의와 마르크스주의 가설을 똑같이 분쇄하고, 또한 이 두 가지를 만들어낸 물질우위론의 가설을 분쇄할 것이다.

   그 결과 가치가 노동자에게서만 착취한 것이라든가 영광스러운 자본주의 기업가에 의해서 생산된다든가 하는 물질우위론적 생각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거짓되고 오도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접대원과 자본을 조달하는 투자금융업자, 키펀치 요원과 판매원, 시스템 디자이너와 통신 전문가 등이 모두 가치를 부가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소비자도 가치를 부가한다는 점이다. 가치는 전체 과정 내의 어떤 개별적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아무리 겁주는 이야기가 많이 출판되어 생산기반의 <소멸>이 가져올 끔찍한 결과를 경고하거나 <정보경제>의 개념을 비웃는다고 하더라도, 날로 증대하는 <정신노동>의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의 창출과정에 관한 새로운 개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은 강력한 변화의 수렴 - 자본과 통화자체의 변모와 함께 나타나는 생산의 변모이다. 이것들이 합쳐져 지구 상에 혁명적인 새로운 부 창출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경제에서 생산과 이윤은 지금 어쩔 수 없이 권력의 3대 원천 - 폭력, 부, 지식 - 에 의존하고 있다. 폭력은 점차 법률로 전환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자본과 통화는 지식으로 변환되어 가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도 변화하여 더욱 더 기호조작에 의존하도록 되어가고 있다. 자본, 통화 및 노동이 모두 한 방향으로 움직여감에 따라 전체 경제의 기반이 지금 변혁을 겪고 있다. 경제는 지금 공장굴뚝 시대를 지배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초기호경제로 이행해 가고 있다.



   예를 들어 통화가 <정보화>하고 정보가 <통화화(monetized)> 한 세상에서는 소비자는 물건을 살 때마다 두번 되풀이해서 값을 치르게 된다. 첫 번째로는 돈을 내고, 두 번째로는 금전적 가치가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보통 이 정보를 거저 내버린다. 그러나 소매상, 메이커, 은행, 크레디트 카드 회사들을 지금 바로 이 값진 정보를 장악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중략) 양측 변호인들이 서로 상대방에게 묻는 핵심적인 질문은 <소비자 데이터가 누구 소유냐?> 하는 것이다.

아직 법률적 해답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무도 소비자에게는 이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론적으로 소비자들이 데이터를 제공하고 받는 보상은 제도의 능률 제고에 따른 가격인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이 비용절감의 일부라도 넘겨받게 되리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으며, 또한 소비자야말로 이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기 때문에 사실 그것은 장래의 환불을 기대하고 소매상에 무이자로 <정보 대여>를 제공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자에게서 나오는 데이터가 재화 및 서비스의 설계와 생산 (그리고 유통) 과정에서 날로 더 요구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소비자는 생산공정에 기여하도록 되어가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 소비자는 자기가 구매하는 물건의 공동생산자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소비자가 이 정보를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정보를 수집하여 처리해야만 가치가 생기는 것일까?

   정보전쟁에서 발생하는 이런 낯선 질문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는 법적, 경제적 개념은 말할 것도 없고 마땅한 어휘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수십억 달러가 왔다 갔다 하고 또한 경제적, 사회적 교섭력의 미묘한 변화를 수반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명렬한 기술혁신 속도는 제조업계에 한 가지 전략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것은 스소로 표준을 발명하여 자기 업체에 적용하느냐, 또는 다른 업체의 표준에 편승하느냐, 아니면 자기 제품이 한정된 용도와 시장만을 갖는 사업상의 시베리아로 추방당하느냐 하는 선택이다.

   IBM사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중요한 원인은 초기에 컴퓨터 내부의 표준을 정하고 이를 시행할 능력을 보유했다는 데 있다. 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였다. 그러나 점차로 어떤 컴퓨터 시스템에서나 소프트웨어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른바 <응용 프로그램(application program)> 이라는 것은 회계 처리나 워드프로세싱, 프린팅, 그래픽 표시, 통신 등 구체적인 일을 시행하기 위해 기계에 명령하는 일련의 지시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모든 컴퓨터마다 어떤 종류의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이른바 <운용 프로그램(operating program)> 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메타 프로그램을 내장하게 되었다.

   컴퓨터업계를 장악하는 핵심 열쇠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이것이 없으면 기계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를 지배하는 열쇠는 <운용 시스템> 이다. 그리고 궁극적인 통제의 지렛대는 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표준에 있다. IBM사는 이 표준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업계의 초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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