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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컹리 Jan 13. 2017

2017. 1. 8

#05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이경원이다' 라고 답하고 싶다. 사람들이 이경원 이름 석자를 들었을 때 하나의 뚜렷한 모습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는 부단히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경원은 어떤 사람인지는 지금은 정확히 정의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허나 나에게 지금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개성과 자아를 찾아갔던 지난 시절을 말해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인생동안 내가 변화하고 성장했던 이야기를 읽고 독자들은 내가 이렇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알기를 바란다.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고2 때로 돌아가야한다. 그 시절 나는 다른 고등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큰 말썽 일으키지 않았으며 성적은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학원들을 다니면서 그냥저냥 유지하였다. 딱히 앞에 나서지도 않았고 조용하게 지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나에게 새로운 충격을 준 인물이 있다. 바로 나의 어머니의 누님의 아드님 되시는 분이시다. 그는 당시 어려운 미국 이민 환경 속에서 아이비리그 진학에 성공하였다. 외가댁 8남매 중에 이모와 어머니는 태어난 순서가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친척들 사이에서도 이모네 식구와 우리 식구는 정서적으로 가까웠다. 허나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진학할 때 이모네 식구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에 나는 그동안 형을 잊고 지냈었다. 형은 아이비리그  합격 발표가 난 이후 한국을 방문하였다. 형의 초등학생 시절만을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형의 대학생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형이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 집에서 지냈다. 나는 여동생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형은 내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평소 아버지와 대화가 많지 않았던 나에게는 형 이란 존재는 단지 형 이란 이유로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또한 형은 평소에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겼기 때문에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형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처음으로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니?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니? 너의 꿈이 무엇이니?' 의 질문을 던져주었다. 단지 주변과 사회의 요구에만 따라 살았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나에게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만 말하였다. 이 형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봐준 사람은 없었다.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답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왜 이런 고민을 전에는 하지 못했을까 라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형의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대답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내 가슴 속에 하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성공한 이후 무대 위에서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듣는 관중들이 행복해하는 강연장의 모습이었다. 더 나아가 일단은 리더가 되고 싶었다. 당시 전형적으로 수학, 과학 성적이 다른 과목에 비해 월등히 높은 이과생에게 생각할 수 있는 리더 상은 스티브 잡스, 빌게이츠와 같은 CEO였다. 처음으로 나에게 CEO라는 꿈이 생겼다.


  그 후는 나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태도가 달라졌다. 또 달라진 태도에 있어서 행동이 바뀌었다. 공부를 하는데에도 나만의 이유가 생겼다. 첫 수능을 봤다. 결과적으로 아주대학교 기계공학과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대학 입시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재수를 결심했다. 왜냐하면 수원에서만 자라온 나에게는 수원에서 대학생활을 하기가 싫었다. 서울로 가고 싶었다. 수원은 나에게 좁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공부에 있어서 항상 어머니와 충돌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기 원했고, 어머니는 내가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하기를 원하셨다. 재수를 시작할 때는 서로 타협을 봐서 집 근처 새로 생긴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나는 인강을 위주로 공부하였다. 일단 학원이 집에서 가깝기도 하였고 자율학습시간이 많이 보장되어서 있어 인강을 중심으로 나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6월 모의고사에 성적이 월등하게 상승하였다. 성적 상승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 결과 학원 선생님 수업이 아닌 혼자서 계획하고 진행한 인강 공부가 성적 상승의 주 요인이었다고 판단하였다. 독학 공부에 욕심이 난 나는 부모님과 학원 선생님께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겠다고 선언하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학원을 그만두는 과정에서 많은 충돌이 있었지만 열정 하나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서울대를 목표로 생명과학2 과목도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9월달 성적이 폭망하였다. 여름의 더운 날씨와 혼자 모든 것을 부담하는 고단함을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 9월 모의고사 성적은 고3때의 수능성적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던 생명과학2 성적도 형편이 없었다. 지금껏 살면서 그때만큼 허탈함과 허무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안들었고 가슴이 텅 빈 느낌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남은 2달 동안 나의 성적을 복구하기 위하여 전에 다녔던 재수학원에 다시 들어갔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다. 공부밖에 안했다. 혼자 모든 것을 떠안다가 한번 데였더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9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3주 뒤에 추석이 찾아왔다. 추석 3일 연휴에 나는 결심을 했다.첫 3주는 열정만으로 누구나 할 수있다. 하지만 그 후 시간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이 승패를 가른다. 하필 학원도 휴강이었다. 추석 때 내가 어떻게 공부하느냐에 따라 재수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공부 이외의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수능 2주 전에 응원을 해준다고 미르 형이 우리 집에 방문하였다. 미르 형과 짧은 대화를 한 이후에 나의 재수 생활을 돌아보았다. 그 때는 수능만을 바라보고 온 신경 공부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지나온 나날을 돌이켜볼 시간이 없었다. 첫번째로는, 내가 어떤 대학교를 가든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나에게 있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진인사대천명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느꼈다. 그 다음에는 내가 목표했던 것들에 대해서 돌아보았다. 내가 SKY를 목표를 삼은 것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질문의 질문 끝에 답을 찾았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아버지와 홍익대 미대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써 그 정도 대학은 가야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수능 1주 전에는 턱관절의 인대가 늘어나 음식을 씹지 못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 잘못된 자세로 허리에 무리가 가여 허리를 구부릴 때마다 심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걱정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했다. 나의 1년 동안의 노력이 신체적인 고통 때문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수를 한 결과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였고 재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재수 때 얻은 가장 큰 경험이라면 바로 '하면 된다' 였다.


  대학교 입학 이후 나는 과연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지에 대해 고민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는 경영학을 진학하고 싶었지만 다른 과목들에 비해 수학, 과학 성적이 높았기 때문에 이과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연과학에는 관심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공대를 선택하였다. 대학교 진학 이후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문학에 대한 갈망이 커져만 갔다. 내가 왜 공대를 고르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니 엔지니어의 엘리트 과정을 밟아오신 아버지와 내가 닮았다고 막연히 생각했기에 공대를 고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동생이 오히려 아버지와 같은 연구분야에 적성이 맞았고, 나는 오히려 어머니를 닮아 감각적이고 감수성이 뛰어났다.


  3학기에 최진석 교수님의 '철학산책'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내 비전에 대한 갈망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일을 찾아 움직였다. 돌이켜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했던 이유는 만약 내가 그것을 한다면 나의 꿈의 모습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학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여 철학과 중간총회에 놀러가봤다. 가서 공짜로 저녁을 얻어먹으며 교수님과 학생들과 대화를 주고 받았다. 철학과의 분위기를 물씬 느낀 나는 철학과는 나에게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나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적 인재가 되고 싶다. 창의에 있어서는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창의는 자신의 아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것으로 끊임없이 지적으로 부지런한 결과로 나타난다. 철학과 학생들은 자신이 학습하는 지식을 배우는 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자신의 철학을 사고하는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창의를 실현하기 위한 지식으로는 철학과 내용은 나에게 맞지 않았고 그 지식의 양이 너무 과했다. 더 나아가 4학기 때는 경제학원론 과 사회학개론을 수강하였다. 정말 재미있게 공부하였다. 하루 공부를 시작하고 마칠 때까지 호기심이 멈추지 않았고 나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항상 인문학과 공학을 사이에 두고 많은 고민을 한다.


  화가 고흐는 자신의 감정을 담아 그림을 통해 세상에 내보였다. 가수 김광석은 자신의 메시지를 가사로 담아 노래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비전과 가치를 아이폰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와 같이 얘기한다면 나의 역량을 어떻게 세상에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의 역량은 인문학이 길러줄 것이고, 표현의 수단으로는 공학기술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공학은 내 가치를 세상에 내보이는 수단과 돈 버는 기술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자아실현과는 멀다.


  나에게 인문학은 꿈과 이상이고 공학은 돈과 현실의 문제이다. 평소에 나는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영화나 독서를 통해서 해소하였다. 전에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애덤 스미스를 자유 시장을 창시한 자로 그에 대해서 말하면 가격으로만 가치를 판단하는 속물적인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린다. 그렇지만 그가 국부론을 쓰기 전에 돈과 행복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하는 도덕감정론을 썼다. 아이러니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필요로 하지도 않는 더 좋은 차, 더 좋은 스마트폰, 더 비싼 집을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좋은 것을 사도 나중에 더 좋은 것을 원한다. 중학교 때는 우리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교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대학생 때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하기 떄문에 학점 경쟁을 한다. 직장에서는 더 높은 진급을 위해 경쟁한다. 경제적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끝이 없다. 허나 우리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다. 유행에 민감하고 항상 유행에 앞서는 옷을 사 입었다. 하지만 홍대를 갔더니 충격을 먹었다. 그곳에서는 모두들 그 앞선 유행에 맞춰 입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개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만의 작품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나를 예술의 소재로 하여 옷을 디자인하였다. 그 옷을 입고 다니면서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유행에 맞는 옷을 사면 3주동안은 신나게 입고 다니지만 이후에 또 새로운 유행에 맞는 옷을 찾았었다. 허나 내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다니 굳이 내가 새 옷을 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외부의 가치를 소모할 때의 행복보다 자신의 가치를 생산하는 차원의 행복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단순히 돈을 얼마나 주는 지 보다는 과연 나의 가치와 부합이 되는 지, 그 직업에서 나는 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지를 우선 순위에 두고 싶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전에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보고 감동하였다. 원망으로 전쟁이 끝이 없어보였지만 주인공이 비폭력을 주장하며 결국 자신을 희생하며 전쟁을 종결시킨다. 나우시카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에 대해 고민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말한다. 같은 차원에서 스티브 잡스는 세상의 행복을 위해 아이폰을 만든다고 말하였다. 나의 평소의 목표들을 돌아봤을 때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 원대해 보였다. 허나 깊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니  그들의 신념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CEO가 되기 전에 리더가 되고 싶었고, 리더를 생각하기 앞서 나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그렸다. 지금 생각하는 그 가치는 어머니에게 배운 따뜻함이다. 서로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소통과 교류를 하고 그 결과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를 쌓는 것. 그것이 지금 미래의 강연장에서 말하는 가치이고 내가 실현시키고 싶은 가치이다.


  지금은 공학을 내가 끝까지 가지고 갈 것인가 아니면 인문학으로 진로를 바꿀까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진로 계획에 대한 고민은 군복무를 하면서 이어나갈 생각이다. 대학 원서를 넣을 때 전자공학과를 쓴 것에 대해서 가끔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로써는 최고의 선택이며 가장 나다운 선택이었다. 물론 그 곳이 나의 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직접 부딪혀보았기 때문에 나의 본래의 길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겠지만 나는 내 인생에 있어 꿈을 우선순위로 둔다. 꿈은 나에게 있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열정이자 원동력이다.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그 원대한 꿈과 목표에 있어서 언젠가는 현실에 부딪히고 좌절을 할 것이라고. 내가 하지도 않는 걱정을 해주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다. 나는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성장한 자신을 보면 과정 자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꿈을 만들기 보다는 지키기가 더 어렵다고들 말한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은 나의 꿈과 이상을 가지고 나아갈 때 현실과 얼마나 타협할 지 균형을 맞출 지가 나의 과제이며 성공을 가르는 판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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