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재 Part 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컹리 Apr 20. 2018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7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이렇게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만다. 나는 이렇게도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나는 벌써 몇백 번이나 자칫 그녀의 목에 매달릴 뻔했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눈앞에서 얼씬거리고 있는데, 손을 뻗칠 수가 없을 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 신만이 알 것이다. 손을 내밀고 붙잡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어린애들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손을 내밀고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12월 6일

   그녀의 모습이 내게서 영 떠나질 않는다! 자나깨나 그녀의 그림자가 내 마음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이마 속으로 마음의 시력이 집중되어,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난다. 바로 이곳에 말이다. 자네에게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눈을 감으면 그것이 나타난다. 바다처럼 심연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애 앞에 내 속에 깃들이고 내 이마 속을 꽉 채운다.

   반신이라고 찬양받는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힘을 가장 필요로 하는 그 순간에 하필이면 힘이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기뻐서 날뛸 때나, 슬픔에 잠겨서 가라앉을 때나, 무한한 자의 충일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기를 바라는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은 덜미를 잡힌 채 무디고 냉철한 의식 속으로 끌려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도 얌전하게 계시면, 선물을 받으실 거예요. 조그만 양초나 다른 뭔가를요」「얌전한 태도를 취하다니 어떻게 하는 겁니까?」하고 그는 물었습니다.「어떻게 하면 되지요? 대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로테!」「목요일 저녁이」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크리스마스 이브지요. 그날 저녁에 아이들이 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오십니다. 그때 모두 선물을 받게 돼요. 그때 선생님도 오세요. 그러나 그전에는 안돼요」베르테르는 그 말에 찔끔하였습니다.「제발 부탁이에요. 다른 도리가 없어요. 제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주세요. 이대로는 안 돼요. 이렇게 그냥 계속될 수는 없어요」그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리고, 방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이대로는 안 돼요」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베르테르의 말투로 미뤄보아 그가 빠져 들어간 무서운 상태를 알아차린 로테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질문을 걸어서 그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좋아요, 로테!」하고 그는 소리쳤습니다.「앞으론 두 번 다시 당신을 만나지 않겠습니다!」「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지요?」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베르테르 씨, 당신은 우리와 만나실 수 있고 또 만나주셔야만 해요. 다만 그 정도를 적당히 해주시라는 거예요. 아아, 어째서 당신은 무엇이든 한번 손댄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그 정열과 격렬한 성격을 지니고 태어나신 건가요! 제발 부탁이에요」하면서 로테는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적당히 해주세요! 선생님과 정신과 학식, 그리고 재능, 그런 것들이 선생님에게 많은 즐거움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남자답게 되어주세요. 당신을 딱하게 여기며 동정하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는 저 같은 여자를 향한 그 슬픈 애착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주세요」베르테르는 이를 갈며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로테는 여전히 베르테르의 손을 붙잡을 채로 있었습니다. 로테는 여전히 베르테르의 손을 붙잡은 채로 있었습니다.「잠시나마 마음을 가랁히세요, 베르테르 씨!」하고 그녀는 말했습니다.「당신은 자신을 속이고 자진해서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하필이면 무엇 때문에 저를, 베르테르 씨! 다른 사람의 소유인 저를? 저는 두렵습니다. 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선생님에게 그런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더욱 두려워지는 거예요」베르테르는 잡혀 있던 자기 손을 로테의 손에서 빼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로테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훌륭하십니다!」하고 베르테르는 외쳤습니다.「아주 물 샐틈 없이 현명합니다. 알베르트가 아마 그런 대사를 만들어낸 모양이지요. 정치적이군요. 아주 정치적인데요!」「그 정도 말은 누구라고 할 수 있어요」하고 로테는 대꾸했습니다.「이 넓은 세상에서 선생님의 소원을 이뤄드릴 여자가 한 사람도 없을 리가 있겠어요? 마음먹고 열심히 찾아보세요. 틀림없이 찾아내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벌써 오래전부터 선생님을 위해서나 우리를 위해서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요즘 선생님은 자신을 좁은 곳으로 몰아넣고 스스로 결박당하시는 형편이니 말이에요.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보세요! 여행을 하시면 기분도 좀 풀리실 거예요! 훌륭한 사랑의 상대자를 찾아내 가지고 돌아오세요. 그래서 우리 함께 진정한 우정의 행복을 누리면 얼마나 좋겠어요」



   자아, 로테,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차갑고 무서운 술잔을 손에 들어 죽음의 도취를 다 마셔버리렵니다. 당신이 이 잔을 내게 손수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냉정하게, 이렇게 담담하게 죽음의 철문을 두드립니다!

   로테! 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이 몸을 바치는 행복을 누려봤으면 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생활에 평화와 기쁨을 다시 찾게 해드릴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 미련도 없이 기꺼이 용감하게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아, 가까운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써 친구들에게 백 배의 새로운 생을 북돋아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소수의 숭고한 사람에게만 부여된 일입니다.

   로테! 당신이 손을 대서 만져서, 거룩하고 정결해진 이 옷을 입은 채로 나는 묻히고 싶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아버지께도 부탁드렸습니다. 내 영혼은 벌써 관 위를 떠돌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 주머니 속을 뒤지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이 분홍색 리본은 내가 처음으로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이 가슴에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어린애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아아, 어린애들에게 천 번이라도 키스를 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불쌍한 친구의 운명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정말 귀여운 어린애들이니까요! 그 아이들은 언제나 내 주위에 몰려 있었습니다. 아아, 나는 얼마나 당신과 긴밀하게 맺어져 있었던가요! 첫 순간부터 나는 당신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리본은 나와 함께 묻어주십시오. 당신은 내 생일날에 그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 것들을, 나는 얼마나 갈망하여 모아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아, 이 길이 나를 이리로 이끌어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진정해 주십시오!

   탄환은 재어놓았습니다. 지금 열두시를 치고 있습니다. 자, 그럼 됐습니다. 로테! 로테! 안녕,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