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

Day14

by 이지선


복도 끝에 문이 있다. 아니다, 세 개다.


첫 번째 문은 유리. 건너편은 병원이다.

환자들은 웃고 있고, 직원들은 평화롭다.

그러나 그 안에 나는 없다. 낯선 의사가 내 자리에 앉아 있다.

— 내가 사라져도 세계는 굴러간다. 내가 없어도 병원은 존재한다.

내가 지켜온 자리가 결국 나만의 자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두 번째 문은 나무. 문틈 사이로 따뜻한 빛이 흘러나온다.

손잡이에 닿자 온기가 전해진다. 아이들 웃음소리, 피아노 소리.

— 이 평화가 정말 내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래 갈망해온 환상일까?

익숙하면서도 낯선 장면, 손을 뻗는 순간 흩어져버릴 것 같은 안식.


세 번째 문은 거울. 내 얼굴이 비친다.

그러나 매 순간 달라진다. 젊은 나, 늙은 나, 웃는 나, 우는 나.

의사인 나, 의사가 아닌 나, 엄마인 나, 홀로 선 나.

— 나는 누구인가?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실제의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 거울 속 얼굴이 바뀔 때마다, 스스로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이동하는 그림자일 뿐인가.


"선택해야 해."

뒤돌아보니 내가 서 있다. 아니, 우리가 서 있다. 지금까지 꿈에서 만난 모든 나. 날개 달린 나, 기사였던 나, 사막을 걸었던 나, 부엌에서 요리하던 나.

"하나만 선택할 수 있어."

"왜?"

"그게 규칙이야."


규칙. 누가 정한 규칙인가.

자아를 셋 중 하나로 좁히라는 강요는, 삶이 내게 내린 무언의 압박과 닮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인간은 언제나 복수의 문을 동시에 짊어진 채 살아간다는 것을.


복도가 늘어난다. 문은 멀어진다. 닿지 않는다.

"빨리!"

모두가 외친다.

나는 멈춘다.

"선택하지 않으면?"

침묵.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야."

그 순간,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바람이 분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 집의 따뜻함, 무한한 가능성이 하나의 공간에서 뒤섞인다.

나는 그 경계에 선다. 문지방을 밟고.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않은 채.

— 그 또한 나의 삶이다. 규칙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지켜낸 자유.


현실

오후 3시. 진료실 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환자가 인사한다. 나는 늘 그랬듯 웃으며 답한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사실은 익숙한 얼굴이다. 수년째 내원하는 환자.


하지만 접수에서 아프다고 메모해줘도 처음에 '아픔'을 묻던 날과 달리 언제나 '안녕'을 인사한다.

그게 진료의 시작이니까. 내겐 반복일지라도, 환자에게는 오늘이 처음이니까.


컴퓨터 화면에 차트가 뜬다. 약의 이름, 수치, 부작용, 보험 조건.

머릿속에서는 선택이 이어진다. 줄일지, 늘릴지, 바꿀지. 어떤 선택이든 그 무게는 결국 내 몫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히 설명한다.

환자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도록, 두려움이 번지지 않도록.

겉은 늘 단정하지만, 속에서는 매번 금이 간다.

그 금을 감춘 채, 다시 웃는다. 다시, 처음처럼.


경계 노트

모든 문은 동시에 열려 있다.

닫힌 문 뒤에서도, 또 다른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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