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3
물속이다. 처음부터 물속이었다.
숨을 참지 않아도 된다. 아가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물이 폐 속으로 들어와도 죽지 않는다.
차갑고 무거운 액체가 기관지를 타고 흐른다. 이상하게도 편안하다.
빛이 위에서 부서진다. 수면이 저 멀리 보이지만 올라가고 싶지 않다. 여기가 내 자리인 것 같다. 물고기들이 스쳐 지나간다. 비늘에서 작은 종소리가 난다. 딸랑, 딸랑.
바닥이 보인다. 진흙이 아니다. 거울이다. 거대한 거울이 바닥 전체를 덮고 있다. 내 얼굴이 비친다. 아니다. 엄마의 얼굴이다. 젊은 시절, 병원 가운을 입은 엄마.
거울에 손을 댄다. 차갑다. 엄마가 나를 올려다본다. 입을 연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 모양을 읽을 수 있다.
"미안하다."
거울이 깨진다. 조각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각 조각마다 다른 시간이 비친다.
의대생 시절의 나, 레지던트 시절의 나, 첫 개업하던 날의 나, 아이를 낳던 날의 나.
조각들이 회전하며 빛을 반사한다. 눈이 부시다.
더 깊은 곳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검고 무거운 덩어리. 가까이 오자 형체가 드러난다. 내가 묻어둔 것들이다.
포기한 박사학위. 거절한 대학병원 자리.
치료가 완성되지 않은 환자들.
그것들이 물속에서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치 진공포장된 것처럼.
손을 뻗는다. 만지려는 순간, 모든 것이 흩어진다. 검은 먼지가 되어 물속에 퍼진다. 물이 탁해진다.
숨이 막힌다. 이제야 물속이라는 걸 자각한다.
위를 본다. 수면이 너무 멀다.
누군가 손을 내민다. 물 밖에서. 잡으려 하지만 닿지 않는다.
가라앉는다.
더 깊이.
더 깊이.
바닥인 줄 알았던 곳에 또 다른 물이 있다.
그곳에도 내가 있다.
무한히 반복되는 물속의 나.
나는 심해에 있다.
새벽 3시. 잠이 안 온다.
남편의 고른 숨소리. 부러울 정도로 평화롭다. 살며시 일어나 거실로 나간다.
물 한 잔.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물속 꿈이 떠오른다.
핸드폰을 켠다. 병원 계좌를 확인한다. 열심히는 하는데, 자꾸 비어간다.
직원 한 명이 사직서를 냈다. 임신했다고. 축하할 일인데, 먼저 걱정이 든다. 대체 인력을 어떻게 구하지.
진단도 치료도 어려운 환자는 새벽에도 나늘 따라온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지 묻는 환자와
평생 이길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나.
나도 모른다.
평생이 얼마나 긴지.
창밖이 조금씩 밝아온다. 또 하루가 시작된다.
커피를 내린다. 진하게.
오늘도 버틸걸 안다.
우리는 모두 물속에 있다.
어떤 사람은 수면 가까이, 어떤 사람은 심해에.
숨 쉬는 법을 잊은 채 괜찮은 척한다.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소중한 것들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