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보다는 크고, 머그컵보다는 작은 것이, 컵도 아닌 주제에 컵 받힘을 갖고 있고, 주전자처럼 뚜껑을 갖고 있으면서, 물이 나오는 수구도 없고, 손잡이도 없어 좌로 돌려보나, 우로 돌려보나, 심지어 위에서 바라봐도 좌우가 똑 대칭하는 것이 어찌나 예쁘고 내 마음에 쏙 드는지 모르겠다. 바로 다기 중 하나인 '개완'이다.
이 개완이라고 부르는 물건이 언젠가부터 하나 꼭 갖고 싶었는데, 드디어 구하게 되었다.
개완의 역할은 거름망을 담은 표일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가름망이 없고, 뚜껑을 살짝 비스듬하게 열어 찻잎들을 걸러 따르는 형태의 물건이다. 물론 크기가 크지 않아, 용량이 적어 표일배보다 여러 번 우려내야 하지만 그만큼 표일배보다는 짧은 시간을 우려내도 되는 것 같기에 단점이 지금 같은 바쁜 사회의 나처럼 혼자 차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뜨거운 것을 잘 못 만지는 심각한 '고양이 손'이라는 것이다. 백반집이나
국밥집의 은색 밥그릇의 뚜껑조차 열 때도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떠는 그런 인간이다.
개완은 거의 대다수가 자기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당연히 차를 우려내다 보면, 개완은 열을 받아 뜨거워진다.
그런 상태의 개완의 뚜껑을 비스듬히 열어 따르기란, 내게 있어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물이 나오는 수구가 없다 보니 조심스럽게 따라내다 보면, 물이 개완의 외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처음에 그 점을 몰라 뜨거운 물이 개완을 타고 허벅지로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놀라 쏟을 뻔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 있어, 사실 나 같은 입문자가 접근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다기 일 수도 있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굳이 갖고, 사용해 보고 싶었던 것은 좀 있어 보이기도 하고, 예쁘기 때문이다.
참으로 초심자다운 이유가 아닐 수 없지만 사실이다. 누군가는 혼자 차를 즐기는데 예쁘고, 있어 보이는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말은 혼자 즐기기 때문에 오롯이 나를 위해 모든 격식과 형식을 생략 없이 차리는 것이야 말로 혼자 즐기는 진정한 묘미임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어쩌면 이런 점에 있어 형식이나 격식이 많은 차생활이 내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나에게도 누군가에게 차를 대접해 주고 싶은 날도, 생각도 있다.
언제가는 개완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날이 온다면, 폼나고 멋지게 차를 누군가에게 대접해 보고 싶다.
<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