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인의 권유와 선물로 우연하게 그리고 갑자기 차(茶)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차(茶)에 대한 내가 가진 지식과 인식 수준은 좀 쓰거나 고소한 건강에 좋은 혹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물 정도였다.
회사나 사회생활 중,잦은 미팅으로 커피를 많이 마신 날이면, 커피 대신 마시는 녹차 티백 정도, 항상 사내 탕비실에 녹차와 둥글래 차 티백이 구비되어 있지만, 도통 줄지 않는 인기 없는, 조금 올드한 느낌?
처음 차를 우릴 때조차도 그냥 건강에 좋은 거니까, 또 기왕 좋은 차라고 하니까 마셔보면 어딘가에 좋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홍삼 같은 건강 음료를 선물 받았다는 느낌? 정말 추호도 내가 차를 즐기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선물 받은 내용은 고수 보이차 4종(백차, 홍차, 숙차, 생차) 그리고 찻잔과 공표배, 거름망이었다.
선물해 준 지인(선생님이라고 하겠다.)과 함께 첫차를 우려 마시기로 했다.
처음 선생님과 함께 마셔 볼 차는 '고수 숙차'였다. (여기서 고수는 아주 오래 산 고목을 얘기한다.)
숙차는 보이차로 잘 알려진 차였다. 숙차를 3번 우려 마시고, 그 후 찻잎으로 끓여서 마시기로 하였다. 차를 그저 티백으로나 마시던 나에게 있어서 차를 우려내는 과정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전부를 알지는 못하지만 간략하게 준비과정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마실 찻잎(보통 덩어리 져 있다.)을 우려마실만큼 때어, 우리기 쉬운 크기로 부순다(훼괴 라고 한다)
다음 차를 우리기 앞서, 찻잎을 깨우고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살짝 우려내어 버리는 과정(세차라고 한다)
위 세차 과정 중에서는 세차물로 마실 찻잔 및 다기들을 대펴놓는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진짜 마실차를 우려낼 준비가 끝난 것이다. 아마도 이 준비 과정 역시 마시는 차의 종류에 따라 다르리라 생각된다.
물론 풀어써서 좀 더 장황해 보일 순 있지만, 그저 뜨거운 물에 티백을 몇 번 넣고 툭툭 털어 마시던 나에게
굉장히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이 과정들이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짧게나마 차를 마시면서 느낀 점은 바로 '느림의 미학'이다. 차를 한다는 것은 일 차원적인
맛(taste)이 아니라, 이 차를 마시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이야 '느림의 미학'이니 말하지만, 첫 차를 마시던 날 나는 그런 건 전혀 몰랐다.
그냥 정수기 온수로 보이숙차를 우리려고 하는가 하면, 차를 끓여 마실 때는, 찻잎들을 커피포트에 넣는 기행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평소 회사 생활이나, 주변인들에게 느긋하지만 깐깐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 편인데, 어디까지나 그건 회사나 사회생활 내에서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차를 우려내는 입장에서 나는 서투르고, 급하고, 덜렁대고 '끓는 물이 다 같지'라는 생각으로 커피포트에
찻잎을 투하하는 독단적인 기행까지 보여줬다. 물론 처음 차를 우려내는 초보자이니 만큼 그럴 수 있겠지만,
아마 초보자 중에서도 상위 10% 내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겪고도 용케 아직 내가 차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은 차의 향과 맛이 내 예상을 아득하게 넘어, 너무 향기롭고 맛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차에 대한 전문가도 서적도 많다. 아직 반년도 되지 않은 내가 차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 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초보자의 느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믿기에, 또한 나는 차를 마시고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생활패턴, 사고방식 등, 제법 많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
이런 부분들을 나누고 싶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차를 마셔보고 나누고 싶다.